1만 시간 동안 눈치 보면 생기는 일
입사를 하고 1년 정도 지났을 무렵, 부서에서 망년회 겸 퇴직자 송별 회식을 했다.
"김주임아, 일로 와바라."
같은 팀에서 근무했던 나와 40살 가까이 차이가 나고, 4주 뒤면 집에 갈 과장님이 나를 불렀다. 그리고선 내 손을 잡으며 갑자기 큰 목소리로 "다들 주목"이라고 크게 말씀하셨다. 마지막 인사를 하는 듯했다.
"그동안 우리 부서원들 참 고마웠다. 나는 이제 집에 갈 사람이지만 마지막 부탁이 있다. 여기 있는 김주임 좀 잘 챙겨줘라. 김주임 덕분에 내 마지막 회사 생활이 참 즐거웠다."라고 말씀을 하셨다. 지금 글을 쓰는 와중에도 그때 생각을 하면 가슴이 울컥한다.
모든 부서원들은 박수를 쳐줬다. 서먹했던 다른 팀의 나이 지긋한 과장님들에게 술을 건네받았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며, 나에게 말 한마디씩 거들었다. 나는 내가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회사 생활을 정말 잘하고 있는 줄 알았다. 아니 실제로 잘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뭔가 단단히 잘못되고 있었다.
19살 겨울에 나는 회사에 입사했다. 고등학교 졸업하기도 전이었다. 요즘은 모르겠지만 내가 막 회사에 입사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고졸 직원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있을 때였다. 우리 회사는 고졸 직원들을 대체로 첫 부서 발령을 현장의 교대근무를 하는 부서에 보내게 되는데, 현장 부서의 평균 나이가 40살 정도였다. 대부분이 나이 차이가 꽤 나는 어르신들이었고, 극소수의 2,30대 직원이 있을 뿐이었다. 기존 직원들은 어린 고졸 신입 직원들이 사회생활 경험도 전무하고, 눈치도 잘 못 보니 꽤나 답답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좀 달랐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주위로 부터 '너 진짜 19살 맞냐? 29살 아니냐?', '민중 좀 줘봐라.', '너는 고졸로 입사한 애 같지가 않다.', '학력 위조 아니냐?'란 말을 마르고 닳도록 들었다. 이건 전부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아버지의 트레이닝 덕분이었다.
아버지는 주변의 모임이나 각종 행사가 있을 때면 나를 데리고 가셨다. 아버지는 밖에서 '호인'이셨다. 성격도 쾌활하고, 사람과 술을 좋아하시는 분이었다. 사람을 상대하는 법을 잘 알고 계시는 분이셨다. 그런 모습을 아버지는 내가 배우기를 바랐었나 보다. 자연스럽게 나는 아버지의 대인관계 능력을 배웠다.
밖에서는 아버지의 대인관계 능력을 배웠지만, 집 안에서는 '눈치 보는 법'을 배웠다. 아버지는 날 것 100%의 경상도 토박이 상남자시다. 한 가정의 가장, 한 여자의 남편,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가져야 할 여러 가지 능력치 중 '가부장', '권위적' 스탯을 몰빵 하신 분이다. 물론 지금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집과 큰 차이가 없는 분이지만 말이다.
한 집안을 책임지고 이끈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이 있지만, 집 안에서는 모든 것이 자기 마음대로 이뤄져야 했다. 밖에서, 회사에서 어떤 좋지 않은 일이 있었을 때는 아버지 표정과 태도에서 모든 것이 묻어 나왔다. 모든 가족 구성원들은 아버지의 눈치를 봤다. 집안의 공기의 온도는 아버지의 기분에 따라 달라졌다. 기분 좋을 때는 한 없이 좋다가도, 아닐 땐 아니었다.
조심했지만,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혼나지 않고 아버지의 기분을 맞추는 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었다. 말콤 글래드웰의 책, '아웃라이어'에서는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이론이 나온다. 아웃라이어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고 논란이 있지만, '1만 시간의 법칙'은 한 분야에 1만 시간 이상의 시간을 투자하면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유년 시절부터 '눈치 보기' 분야에 1만 시간 이상 종사할 수 있었다. '눈치 보기의 전문가'가 되었다. 어떻게 하면 '최대한 혼을 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아버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을까?', '기분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눈에 덜 띄고, 덜 혼나려면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등의 생각을 매일 2,3시간씩 아버지가 퇴근을 하시거나, 집에 있을 때 고민했다.
조기 학습의 결과로, 나는 최대한 기존 권위에 수긍하여, 의문을 가지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냥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하지 않았다. 권위 있는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신뢰하고, 내가 속해 있는 조직 내에 나보다 높은 직급과 권위를 가진 사람에게 어떠한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그들의 눈치를 살피며 원하는 결과물을 적재적소에 내놓았다. 어떤 것을 하면 좋아할지 눈에 훤히 보였다. 아버지 눈치 보는 것보다 회사생활이 더 쉬웠다.
그래서 곧 퇴직을 앞둔 과장님이 모든 부서원들이 있는 자리에 그런 말을 한 게 아닐까? 자신의 아들보다 훨씬 어린 신입 사원이 누구보다 자신의 기분을 잘 헤아려 줬으니 말이다. 퇴직을 하고 나서도 1,2년 동안은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았다. 이 모든 게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사회생활 조기교육을 받은 덕분인 것 같다.
더 열심히 눈치 보고 그들에게 맞춰주는 회사 생활을 했다. 주위 사람들의 평가로 인해 나란 사람의 가치가 결정되는 삶을 살았다. 나란 사람의 주관은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과 잘 지내려고 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사회생활 잘하는 고졸 직원'이라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무리했다. 사실 그거 말고는 딱히 나를 규정할 수 있는 정체성이란 게 없었다. 맘에도 없는 사람들과 술자리에 자주 나갔다. 재미도 없지만 그냥 갔다.
군대를 가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군대는 권위의 끝판왕이다. 의문 가지지 않고, 하라는 거, 시키는 거만 잘하면 큰 무리가 없다. 군대에서도 회사 생활이랑 똑같이 행동했다. 간부들, 선임들은 좋아라 했다. '역시 사회생활하다가 온 애가 다르다.'라는 말에 나는 기분이 좋았다. '역시 나는 단체 생활에 소질 있구나.'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되었다.
간부의 부당한 지시에도 나는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저 군대라서 하라니까, 시키니까 했다. 그런데 동기들과 후임들은 부당하다고 생각을 했나 보다. '이걸 왜 우리가 하냐?, 부당하다.'라는 의견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고, 부당한 지시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있어 군대 내 감찰부서에 고발을 하는 와중에도 '이래도 되나, 정말 이렇게 해도 되나'라는 생각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기존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가 인생에서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통해서 나는 지금까지의 인생 전반에 걸친 내 삶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권위 있는 사람, 기존에 있떤 가치에 의문을 가지지 않는 행위,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하는 눈치 보는 행동, 주변인들의 나에 대한 평가가 내 삶의 최고 가치가 되는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고졸 같지 않은 직원'이 될 수 있었던 이유, 내가 '군생활을 남들보다 잘하는 이유' 등 모든 사회생활 경험에 대해 곰곰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생각을 하다 보니까, '아버지의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성격'이 그 원인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눈치를 보지 않는다. 모두와 잘 지내려고 하지 않는다. 남들의 나에 대한 평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는 요소이다. 기존 권위에 도전하고, 질문하고, 나의 생각을 과감하게 피력한다. 맘에도 없는 술자리를 찾아가지 않는다. 추석, 설이면 직장 상사에게 안부 전화하지도 않는다. 정말 고맙고,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만 연락을 한다. 남들의 평가가 아니라, 내가 이룬 성취에 따라 나의 가치가 정해진다.
송별회 당시에는 '내가 회사생활을 그렇게 잘했었구나.' 하는 생각에 울컥했다면, 지금은 '내가 그토록 남의 눈치 보는 삶을 살았었구나.'라는 생각에 울컥한다.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지금은 아무 일 없는 듯이 잘 지낸다. 아무 일이 없던 사람보다 나는 더 강해졌다. 나란 사람에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고, 누구도 경험하지 못 한 나만의 이야기로 글도 쓸 수 있게 되었다.
나란 사람을 더 잘 알기 위해서는,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해야 한다. 그 내면의 목소리를 이끌어내 주기 위해서는 다양한 활동, 여러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면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만약 군대에서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내 동기이고, 후임이었다면 나는 지금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지 못한 채로, 남들 눈치나 보며 그들이 원하는 행동만을 하고 살고 있었을 것이다.
고졸로 입사한 모든 이들이 자신이 고졸이라서 너무 눈치보지 않고, 자신만의 주관과 기준을 가지고 회사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