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확한 행동의 이유 설정하기
훈련소 훈련과 조기 전역으로 집에 먼저 와있는 기간을 제외한 1년 4개월 동안, 약 80권의 책을 읽고, 자격증 공부도 했다. 산업기사와 기사 1개씩 필기시험에 합격했고, 기사 실기 시험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산업기사 실기 공부는 군대 전역하고 해야겠단 생각을 했지만, 역시.. 전역 한 뒤에 바로 공부한다는 것은 어지간히 어려운 일은 아니다.
운동도 꾸준히 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날이 추워져서 잘하지는 못 하지만 일주일에 3번 이상은 20분씩 달리기를 했고, 웨이트 트레이닝은 지금도 꾸준히 하고 있다. 근육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살을 뚫고 나오려고 한다. 블로그도 시작하고, 매일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테드 영상이나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며 매일 하루 1개씩 내용을 정리했다. 보기만 해서는 머릿속에 깊게 안 박혀서 필기하며 공부하듯이 영상을 봤다. 하여튼 이것저것 되게 많이, 열심히 살았다.
군대에서 개인 공부를 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일과 시간 중에는 책을 읽는 것조차도 허용되지 않고, 일과가 끝난 후, 핸드폰을 사용해야 하는 개인 정비 시간이 돼서야 공부를 할 수 있다. 평일에는 보통 18시에 휴대폰을 받는다. 휴대폰을 제출 시간은 21시이다. 휴대폰 사용시간은 상당히 부족하다. 그래도 나는 휴대폰 사용시간 중 1시간은 독서를 했고, 30분은 달리기를 했다. 나머지 시간에 휴대폰을 사용했다.
선임들과 간부들은 취업도 한 애가 뭐 이리 열심히 사냐고 그런다.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해놓고, 왜 그리 악을 쓰면서 자기 계발을 하냐는 것이다. 매일 22시부터 24시까지 야간에 공부 연등을 했고, 주말이면 평소에 부족한 잠을 자다가 오전 11시에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거나 내 할 일들을 했다. 군생활 동안 야간 연등을 가지 않은 경우는 한 손에 꼽을 정도이다. 이렇게 군 복무하며 자기 계발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뭐든지 이유가 명확해야 한다. 과거에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당연히 타당하고 합리적인 행동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먹었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우리는 과거 필요하다고 느꼈던 자신 스스로를 부정하기 시작한다. 과거 자신의 했던 생각을 대체하기 위해서 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개인의 의지 차이, 환경 차이도 있긴 하지만, 처음 마음먹었던 행동의 이유가 명확하지 않아서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유가 단단하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책을 읽는 것은 그리 힘든 것은 아니었다. 독서를 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세상을 넓은 시야와 식견을 가지기.' 어렸을 때부터 너무 책을 읽지 않은 죄책감도 있었고, 조금씩 발전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유튜브를 아무 생각 없이 보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운동의 이유도 충분했고, 매일 꾸준히 하는 게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자격증이 복병이었다.
자격증 취득의 이유는 불충분했다. 그냥 회사에서 필요할 것 같으니까 따려고 했다. 대학생들이야 전공 공부를 하고 나서 기사 시험에 응시하기에 그렇게 어렵지 않게 취득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나는 애초에 그 분야에 대한 아주아주 얕은 지식만 가지고 있는 비전공자나 다름이 없는 수준이었다. 최근 들어서 합격률도 그리 높지 않았다. 문제 더럽게 낸다고 소문난 자격증이다.
필기시험은 할만했는데, 실기 시험이 문제였다. 2주 정도 공부를 하다가,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해도 안 될뿐더러 발전이 없었다. 흥미가 안 생기니 집중도 안되고, 멍 때리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전역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라 전역하고 나서 뭐 할지에 대한 딴생각만 했다.
'대학생들도 군대 갔다 와서 4학년 돼서야 기사시험 치면 25, 26살에 따는데 지금은 너무 이른 것 같은데...?', '어차피 승진하려면 아직 한참 남았는데 천천히 따도 되지 않을까?', '안정적인 공기업인데 뭐하러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재미도 없는 공부할 시간에 그냥 좋은 책 몇 권 더 읽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하지 않을 이유만 다시 찾고 있었다.
이미 시험 접수는 해놨고, 책도 다 사놨는데 어쩔 수가 없었다. 어차피 시험을 봐야 했다. 이유를 명확하게 재설정하기로 마음먹고 따야 할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다. 군대에서는 할 수 없고, 밖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군대에서도 할 수 있고, 밖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나는 바깥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작곡에 관심이 있어서 전역 후, 학원을 다니거나 레슨 받을 생각이 있었다. 작곡은 군대에서 하지 못한다. 개인 컴퓨터와 키보드나 스피커 같은 장치가 있어야 하는데, 군대에서는 그렇지 않다. 유튜브에도 관심이 있었다. 고졸 취업을 하며 경험한 이야기에 대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유튜브도 군대에서 밖에 하지 못한다. 동영상 촬영 자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격증 공부는 군대에서도 할 수 있고, 밖에서도 할 수 있다. 자격증 취득은 고졸 전형으로 나 같은 둔재를 뽑아준 회사에 대한 작은 예의의 표시다. 대졸 취준생들은 고졸보다 높은 경쟁률에다가 기본으로 기사 자격증은 2개씩 취득한다. 기술직이라는 사람이 기사 자격증 하나 없는 거 모양 빠지는 일이다. 어차피 따야 하는 거, 전역하고 밖에 나가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에 집중하기 위해서 군대 안에 있을 때 해결해놓자는 강력한 이유가 생성되었다.
명확한 이유가 생기니까 그때부터 어렵고 힘들어도 공부가 할만해졌다. 공부에 집중도 되고, 몰입도 되기 시작했다. 나는 이때 경험 이후로 어떠한 일을 시도할 때, 가장 먼저 '왜 내가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 이유가 불명확하면 중간에 포기하기 쉽다. '남들이 다 하니까', '해야 할 것 같으니까'같은 이유들은 중간에 자신의 행동에 의문을 가지기 십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