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진 않아야겠다.
대학이라는 일반적인 경로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고졸 취업을 선택한 입장에서 과잠을 입고 활보하는 대학생들이 부러워서 쓰는 글은 절대로 아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대학 번화가 근처에 과잠을 입고 돌아다니는 신입생들을 보기가 힘들다. 2,3년 전만 하더라도 3월, 4월 같은 학기 초가 되면 대문짝 하게 큰 글씨로 새겨진 대학교 로고, 공짜로 줘도 입을 것 같지 않은 디자인의 옷을 입고 무리 지어 거리를 활보하는 신입생들을 보기가 참 쉬웠다. 그런데 그렇게 좋아라 입고 다니던 대학교 로고가 박힌 과잠을 1년만 지나도 꺼내 보지도 않은 채로 옷장 한 구석에 처박아둔다.
나는 대학을 다녀보지는 않지만 과잠을 입는 이유를 대충이나마 알 것 같다. '나 이 학교 다닌다. 부럽지?', '이 정도 대학이면 나쁘지 않잖아 그렇지?' 등 자신의 대학 입시 결과물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뽐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다가 1년도 되지 않아 과잠을 장롱 속에 처박는 이유는 대학이라는 곳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원하던 대학교 입학한 것이 인생의 전부인 것 같지만, 대학을 다니다 보면 이 대학이란 것 말고도 더 추구해야 할 가치와 정체성이 더 많다. 신입생 때는 대학 입학, 대학교 신입생이라는 정체성이 자신의 모든 것을 대변하지만, 살아가면서 그 색깔은 점점 옅어진다. 자격증, 어학 성적, 스펙을 따고, 먹고살기 위한 취업을 먼저 해야 한다. 취업 준비를 하며, 자신과 동일시했던 대학교라는 곳에서 얻을 수 있는 소속감, 입시에 성공했다는 성취감 등에 대해 크게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마이스터고를 진학해서 고등학교 3년 내내 취업만을 바라보았다. 거의 마지막이었다시피 한 공기업 시험에 합격하여 지금까지 회사를 다니고 있다. 20살 때, 나는 머릿속부터 발가락뼈 안에 있는 골수까지 전부 '공기업 직장인'이라는 정체성으로 다 채워져 있었다.
나는 회사에 입사하고 대학생 1학년들이 겪는 신입생 뽕과 비슷한 입사 뽕을 맞았다. 근데 그 입사 뽕의 효과는 미미했다. 3개월도 되지 않아 약기운이 모두 빠지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고 미디어나 매체에서 보던 그런 회사 생활과는 거리가 있었다. 살면서 겪어 보지 못한 신기하고 다양한 악성 민원인들과 주로 상대를 했다. 가끔씩은 남들이 꺼리는 더러운 작업도 도맡아 하면서 '공기업이 별게 아니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때 우연히 직장인 익명 어플인, '블라인드'라는 어플을 알게 되었다. 블라인드는 회사 소속만을 공개한 익명의 직장인들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직장인 전용 플랫폼이다. 그 어플에서 나는 내 회사가 누군가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길 원했다. 나의 소속인 우리 회사가 좋은 평가를 받으면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세상은 넓고 좋은 회사는 많았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공기업과 대기업 복지를 뺨치는 연봉을 주는 공기업 직장인들이 세상 천지였다. 그들과 비교하면서 끝도 없이 나 스스로를 갈아먹었다. 내 노력의 결과물보다 더 좋은 결과물이 즐비했다. 나를 자랑스럽게 규정하고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은 단 하나, '공기업 직장인'인데 나보다 나은 '공기업 직장인'이 즐비하다고 생각하면 암울했다.
'공기업 직장인'이라는 정체성 외에 내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 따윈 없었다. '공기업 직장인'이라는 성취가 곧 나르 규정하고 표현하는 모든 수단을 내포한 존재였다. 나는 나를 지켜야 했다. 내가 이룬 성취, 공기업 직장인이란 타이틀이 곧 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내 회사를 비난하고, 낮게 평가하는 꼴을 못 봤다. 그것은 곧 내가 이룬 성취가 부정당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1년에 가까운 시간을 블라인드에서 우리 회사를 비하하는 사람들과 싸우고, 다른 회사와 비교하면서 우리 회사가 가진 장점에 대해 어필하며 우리 회사도 나름 괜찮은 회사라고, 나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 사람이라 스스로 만족하려 했다. 어느 날과 마찬가지로 남들과 키보드 배틀을 하고 있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회사에 대해 100퍼센트 만족하는 사람도 없고, 자신이 회사에 불만이 있으면 이직 준비를 하면 될 것이며, 그렇게 이직하더라도 남들과 비교를 계속하다 보면 끝도 없을 것이라고 느꼈다. 그저 내가 재직하는 회사가 자신을 규정하는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 사회적 위치와 소속감을 부여하는 유일한 존재이기에 이렇게 내가 과몰입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그 생각을 깨우치고 난 뒤, 나는 그 즉시 블라인드 어플을 삭제했다.
공기업 직원이라는 정체성 말고도 새롭고 다르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과 성취들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고, 보다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자격증을 취득하고 책을 읽고 헬스를 하기 시작했다. 방에서 나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컴퓨터 게임을 지우고 새로운 취미를 가졌다. 그저 공기업 취업이라는 단편적인 목표가 아닌 삶의 가치관을 재정립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성과가 쌓이고 쌓이고, 나를 표현하고 규정할 수 있는 정체성들이 늘어가면서 공기업 직장인이라는 나를 규정했던 그 단어의 색깔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공기업 직원이라는 것에 더 이상 자부심을 갖지 않는다. 그저 돈벌이 수단에 불과한 직장에 과몰입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5년 후, 10년 후의 미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나가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겪는 도중, 기사 자격증 실기 시험 정보를 얻기 위해 한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곳은 매우 기형적인 구조를 가졌다. 정보를 얻으려는 목적인 인원이 30퍼센트이고, 나머지는 70프로는 모두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정보를 제공하는 이들이 제공받길 원하는 사람보다 많은 게 이상하다.
자격증 취득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이들은 자신이 딴 자격증에 너무나 과몰입을 한 상태였다. 다른 자격증과 비교하며 자신이 취득한 자격증이 넘사벽 수준이라며 스스로의 성취에 대해서 서로 물고 빨아주는 형태였다. 자신이 딴 자격증 외의 것들은 취급도 해주지 않는 것들이라며, 이 자격증을 따지 않는 것이 바보라고 다른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들을 놀려댔다.
물론 시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 대부분도 단순 정보를 제공해준다기보단 자신의 성취에 대해 남들의 부러움을 사고 싶어 했다.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그 자격증을 취득한 것 마냥 굴었다. 웬만한 4년제 대학 졸업할 때 취득하는 게 당연시되는 자격증인데 말이다. 그 사람들을 보면서 과거의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나도 그들과 큰 차이가 없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과거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누군가는 날 보면서 '회사에 취업한 것 가지고 과몰입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게 뻔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자신을 규정하는 데에 있어 단 하나의 틀에 묶여있고, 고여 있으면 과몰입하게 되는 것 같다. 사람이란 존재는 흘러가고 건너가야 한다. 단 한 곳의 소속 말고, 여러 곳에서 활동해야 하고, 단 하나의 성취에 얽매여 있으면 안 된다. 자신이 이룬 성취에 푹 빠져 과몰입해서는 안된다. 과몰입한 그 대상이 당신을 잡아먹는다.
유난히 고졸로 입사한 사람들이 이런 일을 자주 겪는 것 같다. 내 주위에도 이런 친구들이 몇몇 있었다. 아직도 그들은 그 늪에 못 빠져나오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대학교를 졸업한 직장인들은 그러한 과정을 겪어왔지만, 고졸로 어린 나이에 입사한 직장인들은 이런 경험이 없다. 그래서 유독 회사라는 소속에 과몰입을 하는 어린 직장인들이 많아 보인다.
나는 그때의 시간을 낭비했다고도 느껴지지만, 돌이켜보면 낭비했다고 느꼈던 그 경험도 현재의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좋고, 나쁨이 결정된다.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시간은 절대로 없다. 그때 당시에는 방황의 종착지에 도착했을 때, 지금까지 내가 무엇을 한 건지 스스로를 자책했지만, 지금의 내가 가진 생각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데 도움을 주는 담금질의 과정'이었던 것 같다.
자신을 규정할 수 있는 수단을 다양화하고 이룬 성취에 과몰입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