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중헌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낙화’ 중 일부
정원의 식물들은 계절 속에서 차례로 피어나듯 차례로 퇴장을 합니다. 되돌아가는 식물들은 꽃잎조차 나름의 아름다움을 연출하며 돌아갑니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가야 할 때”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가야 할 때를 안다면 조금 더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디자인하며 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암환자가 되고 나서야 드는 생각이었습니다.
다행히(?) 가야 할 때가 나름 정해진 입장에서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남아 있는 짧은 길을 내다보며 여러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발병 후 ‘암환자 동생’을 위한 언니(언니가 무려 네 명, 우리는 다섯 자매이다.)들의 과한 관심 속에 우리는 평균 2달에 한 번씩 만나 시끌벅적 보낸 시간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희망찬 미래를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주로 지난 추억들을 주구장창 이야기했습니다. 어린 시절 함께 부대꼈던 시간과 공유했던 공간을.
우리들의 이야기는 과거의 먼지 묻은 기억이 아니라, 서로에게 깊은 위로이며 반짝이는 에너지가 되었습니다. 자매들의 모임에 자매처럼 참석하던 큰언니의 둘째 아들인 조카는 옆에서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나 그다음 어떤 이야기 나오는지 다 알아. 벌써 99번은 들었어.’ 그런 말을 할 정도입니다.
어렸을 적 고구마 삶아 먹던 이야기, 돌아가신 부모님 이야기, 동네 사람 누구 이야기...... 큰언니의 83년, 막내인 나의 64년, 그 겹치는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배꼽을 잡고 웃을 이야기, 수 백 번은 들었을 테지만 여전히 모두의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 안타까운 이야기.... 해도 해도 처음 하고, 처음 듣는 것처럼 다들 떠들다가 헤어지곤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이 논픽션이야말로 어떤 픽션 보다 더 감동적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거기다가 그 이야기는 우리나라 근 현대사를 아우르는 시간에 걸쳐 있어서 역사교과서에 다름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가족들인데도 또 조금씩 다른 시간에 따른 경험의 편린들을 맞춰보며 감탄을 하기도 하고 신기해하기도 했습니다. (큰언니는 1945년 생, 우리나라가 해방되던 해입니다. 그 후로 6명이 더 태어나서 함께 자랐습니다.)
“우리 자서전을 만들자.”
제가 구상하고 있는 청소년 소설이 산으로 갔다가 바다로 갔다가 하늘로 갔다가, 안갯속으로 사라지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말도 안 되는 허구에 매달릴 일이 아니라 이 절실한 리얼 다큐를 글로 써 볼 요량을 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언니들은 매우 곤란해했습니다.
내가 글재주도 없는데 어떻게 쓰겠느냐.
뭐 내놓은 것도 없는 인생 아니냐.
누가 본다고 책까지 쓰느냐.
안 하고 싶은 이유는 늘 100 가지쯤 쉽게 나옵니다. 그리고 그건 대체로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조카들이 인터뷰를 하면 쉽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조카들은 한창 바쁘게 사는 나이들이어서 직접 써보라는 것은 부담이 될 거고, 그러나 인터뷰야 직접 만나지 않고도 전화로 가능하지 않는가. 거기다가 요즘 첨단 기기들은 녹취와 한글 파일 만들기가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이니, 기기의 힘을 빌려보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자 다들 좋겠다는 분위기로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암환자인 막내의 제안을 쉽게 거절하지 못한 이유가 컸지요. 암환자가 되어 자매들 사이에서는 좀 깡패가 되어 있는 셈이었습니다.
그렇게 합의가 되자 일은 일사천리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반응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를 했던 조카들의 반응이었습니다.
그동안 엄마를 너무 몰랐다.
지금 현재 나의 삶, 내 사회적 위치가 아빠 발걸음을 따른 거라는 걸 알았다.
엄마에게도 꿈에 부풀었던 소녀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다.
엄마의 이야기가 제 딸들에게도 귀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울, 부산, 광주, 순천, 멀리 영국에 사는 조카까지 인터뷰를 한 조카들의 반응은 놀라웠습니다. 이 작업은 단순한 인터뷰가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기억을 기록하는 일을 넘어서는 일이었습니다, 기록을 위해 나눈 과거에 대한 대화가 새로운 소통의 물길을 열고 있었습니다.
처음 자매들끼리 횡으로 1 세대들끼리 나누던 대화가, 2세대들로 이어지는 종으로 변하고, 다시 비슷한 일을 하고 있던 2 세대들끼리 횡의 소통으로 확장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대야에 떠 놓은 물에 한 방울 물감을 떨어뜨리자 온 대야 물이 서서히 퍼져 물들 듯이 번져갔습니다.
서로 이름만 들어봤을 뿐, 잘 모르던 이종 사촌들이 함께 모이는 sns방을 만들어 대화를 나누고, 출판 기념회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이지요.
거기에다 작업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던 지난여름, 아주 오랜만에 먼 지역에 살고 있던 작은 오빠가 두 딸과 사위를 데리고 고향 쪽으로 휴가를 오셨습니다. 지역이 멀어 집안 대사에서나 한 번씩 만나다가 아주 오랜만에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책 만드는 일이 화제가 되었지요. 뜻밖에도 작은 오빠는 나이 드니 뭔가 옛날 생각이 많이 나더라며 합류하고 싶어 해서 여섯 남매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출판사에 의뢰하지 않고, 자가 출판 플랫폼을 이용해서 직접 작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처음 해보는 편집과 출판과정의 고비고비에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다행히 런던에서 출판사에 근무하는 조카의 도움을 받고, 수많은 메일이 런던과 전남 함평을 오간 끝에 “솔찬히 잘 살으셨오”라는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가족 공동의 자서전이 만들어지고, 2세들이 기금을 거출하여 출판기념 북토크 행사를 열게 되었습니다. 책 출간 과정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는데, 출판 기념회를 준비하면서 보니, 행사 기획과 진행하는 일을 업무적으로 해 온 조카가 있어서, 아주 근사한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은 3세대에 걸친 40여 명이 한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이제 세 살짜리부터 스무 살이 넘은 3세대, 30대에서 50에 이르는 2세대, 그러니까 세 살부터 여든 살까지 한자리에 모인 그야말로 기쁨의 웃음과 감격의 눈물로 하나가 되는 자리였습니다.
이제 중학교 2학년이 되는 셋째 언니의 손녀는 외할머니의 부모님, 저로서는 외증조부모님부터 시작된 이 놀라운 자리의 스토리를 엮은 영상을 보면서 내내 눈물을 훔치다가, 자신보다 3~4배는 더 오래 살아오신 어른들의 이야기가 ‘아주 슬프고도 아름다웠다’는 소감을 말해서 모두를 감동시켰습니다.
그러니까 암환자가 되어 갑자기 내 삶을 새판으로 짜며, 우선순위가 재편되었고, 또 터무니없이 자매들이 자주 만나게 되어 수다를 떨다가 우리는 공동 저자로 책을 한 권 출간하게 된 것입니다. 책의 출간은 이 일의 서막이었을 뿐, 정말로 감동적이고 의미 있는 일은 그 과정에서 보여준 씨실 날실 같은 가족이라는 끈끈한 연대의 확인과 위로와 사랑이었습니다.
돌아가야 할 때를 분명히 알고 생각하면, 선택의 기준이 많이 선명해집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긴 인생을 생각하여, 늘 복잡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뭣이 중헌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