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끝낼 때가 됐다는데요.

너무 가까이도, 너무 멀지도 않게

by 낮은자리 수니


굳이 어린 시절까지 소환하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벗어나는 소풍은 언제나 설레고 신나는 일입니다. 소풍이 설레는 것은 아무래도 변화 없는 일상에서의 일탈이어서 이지 않을까요?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자유.


그러나 소풍은 언젠가는 그 소풍을 끝내고 다시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돌아갈 곳이 없는 소풍은 소풍이 아닙니다. 끝나지 않는 소풍, 그것은 방랑입니다. 그때까지 나를 지치게 하던 일상, 나를 옭아매는 것 같았던 곳,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으므로 소풍은 더없이 소중하고, 또 신날 수 있는 것입니다.

암의 존재 확인과 동시에 좀 바쁘게 돌아가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의료대란 속에서 전공의들이 파업을 하고 의사 가운을 벗어던진 바로 그때였습니다. 여기저기 전화해서 나의 암을 치료해 줄 수 있는지 스케줄을 잡아야 했습니다. 대부분의 전공의들이 빠져버린 대학병원들은 큰 혼란에 빠져 있어서 일정 잡는 일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나는 나의 목숨이 달렸지만, 또 의료인 입장에서도 밥줄이 달렸으니 내 사정만 봐달라고 할 수도 떼를 쓸 수도 없는 입장이지요. 병원들은 기본적으로 3~4개월 심하면 6개월 후의 일정을 잡아주었습니다.

후우~~ 병도 시기를 보고 나야 하는구나.


또 당연히 내 개인적인 일정도 꼬일 수밖에 없었지요. 그중에 하필 어렵게 잡은 시술 일정과 겹치는 일정이 있었습니다. 그냥 나만 빠지면 되는 일정이었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하필 내가 누구를 픽업해 모시고 같이 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는 아직 시술도 하기 전이라 누구에게 말하기가 좀 어정쩡해서 부담스럽던 시점이었지요. 그런데 약속을 못 지키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드려 설명해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말로 둘러댈 수도 있었으나 어차피 알게 될 일, 나중에 알게 되면 서운해하실 거 같아 그냥 그대로 말씀드렸습니다.


“선생님, 모레 일정을 같이 못하겠어요. 병원에 가야 해서요.”

“어디가 아픈가요?”

“네, 이제 소풍 끝낼 때가 되었다는데요.”

“아, 그래요? 그럼 먼저 잘 가시오. 이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지 않았오?”

의외의 빠른 답변에 제가 오히려 당황스러웠습니다.

병명이 뭐냐? 그래서 지금 상태가 어쩌냐? 치료는 어떻게 진행되느냐? 그 병원보다는 이 병원이 더 나은데 왜 그리 정했냐? 그래도 수술을 하는 것이 더 좋다고 하더라. 내 지인도 그 병에 걸렸는데... 등등 의례 되돌아오던 질문이나 의견이 일절 없습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그러게요.”

머쓱해서 애매한 대답을 내놨습니다. 이어지는 선생님 말씀.

“소풍이 재밌다고 얼마나 재밌을랍디여. 때 되믄 돌아가는 거제.”

내가 들은 가장 유쾌하고 멋진 반응이었습니다.


어릴 적 동네 고샅에서 아이들과 뛰어노는 일이 하루의 전부였던 시절. 놀다가 저녁 어스름 무렵이면 가족들의 불러들이는 소리에 따라 아이들은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다고 놀이가 금방 파하지는 않습니다. 빠지면 빠지는 대로 남아있는 아이들은 또 신나게 놀다가 내 이름이 불리면 ‘안녕’하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나요? 그렇게 신나던 친구들과 하루가 끝나곤 했었지요.


태어난 순서대로 가는 것이 아니다. 인명은 재천이어서 그때를 누구도 모른다. 등 여러 말들이 있지만, 결국 어떤 식으로든 끝나는 지점이 있지요. 그건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그런가 하면 통화하게 된 어떤 분의 경우

“암이라고요? 아이고. 그거 암에 걸리면 결국 죽던데... 아이고...”

그분은 ‘아이고’를 연발하십니다. (사모님을 암으로 먼저 보내신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나...


“박사님, 사람은 누구나 죽어요. 우리 모두 결국은 죽어요. 저 괜찮아요.”

무슨 선문답 같은 말을 주절주절하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도 걱정이 많으신 그분은 수시로 전화해서 병세와 컨디션을 물어보시고, 죽음을 염려하셨습니다. 그 관심이 고마우면서도 전화를 끊고 나면 한없이 기력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또, 암이 재발하여 수술을 마쳤는데, 다른 곳에서 또 원발 암이 생성되어 상황이 좋지 않았던 둘째 형님은 나의 발병에 무척이나 안타까워하셨습니다. 본인이 겪어 봤기 때문에 더 그러셨을 것입니다. 여러 위로의 말들과 선배 환자로서 경험들을 알려주시고, 여러 당부의 말들도 잊지 않고 자주 해 주셨습니다.


그러던 중에 시댁 가족 모임이 있었습니다. 아직 저의 병에 익숙하지 않은 때인 데다가 가족 중에 두 사람이나 암에 걸린 상황에서 가족 모임이라니. 그리고 내가 그 당사자라니... 그 자리가 편하지만은 않았지요.


형님은 이미 부축을 받아야 할 만큼 상태가 좋지 않으셨습니다. 차후 내가 보이게 될 모습이었지요. 저는 이미 마음의 평정을 잃고 있었습니다. 누굴 위로할 여력도, 위로를 받아들일 여유도 없어진 상태였던 거지요.

“자네는 안 죽겠네. 자네는 안 죽겠어.”


형님은 제 손을 잡고 간절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간절함이, 본인의 생에 대한 절망을 전제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야말로 울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형님도 좋아지실 거예요. 우리 함께 잘 이겨내 봐요.’ 머릿속에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실상 그런 말이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그러기에는 이미 나에 대한 연민으로 오히려 화가 나 있었지요.


“누구나 다 죽어요. 왜 안 죽겠어요.”

불쑥 튀어나온 투정 같은 말. 주워 담을 수 없는 말. 그 후로도 문득문득 떠올라 가슴을 꽉 막히게 하는 말. 나는 그 말 때문에 형님의 장례식장에서 내내 혼자 괴로웠습니다. 지금도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대부분은 어느 날 갑자기 암환자가 됩니다. 누구도 예상하고 준비하고 있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그렇게 암환자가 되고 보면, 갑자기 이승에서 다른 세계로 이주한 듯한 묘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변의 수많은 사례를 들어가며 위로하고, 좋은 병원과 의사 선생님을 소개하기도 하고, 대체의학, 민간요법 등 수많은 좋은 정보를 알려주십니다. 그러니 영락없이 울타리 없는 다른 세계에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암환자가 되기 전까지 함께 했던 일에 관해, 지인이 소식을 전해주면서 의견을 물어온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해주었습니다.

“자네는 이승에 사는 사람이고, 나는 이제 암계에 사는 사람이야. 이승의 일은 이승에 사는 사람들이 해. 나는 이제 자네들과는 다른 세계를 살아.”


그러니 그 다름을 그냥 그대로 봐줄 일입니다. 너무 지나친 관심, 연민, 충고 등 다 접어두고, 나와 조금 다른 상황에 있는 사람이다. 그 정도로 과하지도 무관심하지도 않을 정도의 관심만 가질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