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하면 용감하다

by 낮은자리 수니


옛말에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옛말 틀린 게 하나 없다고, 몰라서 용감하게 행동한 경험쯤은 다들 있을 것입니다.

암환자가 되고 나서 공부를 시작했지요. 암이 뭔지, 왜 내 몸 속에서 자라게 되었는지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암세포의 속성과 성장, 특징들을 대략적으로라도 확인해 보고 나서 든 생각이 이것이었습니다.

‘무식해서 용감했구나’





저는 태생적으로 건강체로 태어났다고 믿고 살아왔습니다. 감기라도 심하게 걸려 한 번쯤은 결석을 해보고 싶었지만, 도무지 감기에도 걸리지 않고, 며칠 씩 밤을 새도 끄떡없었습니다. 소화불량으로 고생해 본적도 없었기 때문에 저는 건강 하나는 타고났구나 생각한 거지요.

그저 몸은 정신을 담는 도구 정도로 여기고, 정신적인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몸을 함부로 대했습니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일 욕심도 많아 내게 주어진 일은 죽을 둥 살 둥 밤을 새워 해냈습니다. 실력이 뛰어나지 않으니 나름 스트레스도 컸을 것이고,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들이며 그렇게 해내는 데서 오는 성취감에 취해, 물마시듯 커피를 마셔가며, 밤을 새우곤 했습니다.



제게 음식은 그저 살기 위해 먹는 연료 정도라여겼습니다. 미식가도 아니고, 음식이 크게 즐거움을 주는 대상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배고프면 자동차에 주유하듯이 음식을 먹는 정도였으니까요. 그렇다고 아무거나 막 먹지는 않았습니다. 인스턴트 식품을 좋아하지 않아 그 흔한 라면도 잘 먹지 않고, 탄산음료도 마시지 않았고, 고기도 어쩌다 다함께 먹을 때를 제외하고 찾아 먹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 몸이 살아가기 위한 에너지로서 음식이란 개념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게 내 몸에 대해 학대에 가까운 대우를 하며 사는 동안 보이지 않는 몸 속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지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지금 당장 어디가 아프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건강체로 태어났다고 굳게 믿고 있었으니까요. 그런 믿음이 얼마나 무식한 것이었는지 암환자가 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사실 저의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50대 초반에 돌아가셨으니, 가족력이 있었지만 그걸 크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태어나길 건강체로 태어났다는 믿음이 있었으니까요. 또 저희 자매들 중 반은 b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이니, 저도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았지만, 따로 검사를 받거나 치료를 할 생각은 하지도 않았습니다. 특별히 피곤하지도, 어디가 아프지도 않으니 괜찮겠지, 나는 워낙 건강하게 태어났으니... 얼마나 용감한가요? 바로 무식했기 때문입니다. 몰랐기 때문입니다.





더닝-크루거 효과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습니다. "실력이 부족할수록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실력이 높을수록 자신을 과소평가한다"는 이론이지요. 암에 대해서 제가 딱 그랬습니다. 너무 몰라서, 무식해서, 저 자신을 건강체로 태어났다고 과대평가를 했던 것이지요.

아무리 태생적으로 건강하다 해도, 저의 경우로 보면 몸을 60년이 넘도록 사용해 왔습니다. 만약 몸이 기계이기라도 하다면 진즉에 닳아 없어지거나, 수많은 부품을 교체해 연명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비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신체는 알아서 자기를 돌보는 면역력도 있고, 치유력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주인이 무지하여 돌보지 않으면, 어느 순간 그 임계점을 넘어 스스로 회복하는 힘을 잃어버리고 급기야 크게 고장이 나버리고 맙니다. 그것은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누구에게 의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제라도 내 몸에 대해 잘 알고, 스스로 살피고 돌보고 하는 것이 마땅한 일임을 너무 늦게 알았다 싶지만, 또 이제라도 알아서 챙기며 살게 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몰라서 용감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알아서 겁쟁이가 되는 편이 훨씬 현명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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