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기다림의 시간
열차는 승용차나 버스보다 더 여행을 하는 느낌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집 나간 작은 오빠 만나러 가시던 어머니 따라 함께 탔던 서울행 완행열차나, 고등학교 때 친구와 둘이서 다녀왔던 목포 기차여행, 아이들 대학 보내고 지인과 둘이서 홀가분함과 아쉬움을 털어버리러 갔던 부산 기차여행, 그런 기억들 때문일까요.
승용차가 생긴 이후로는 기차 탈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암환자가 되기 전까지는요.
서울의 대학병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3개월에 한 번씩 KTX를 타고 가 검사를 받고, 일주일 후에 주치의 선생님 만나 검사 결과를 들으러 다시 상경합니다. 벌써 열 차례, 스무 번이나 서울을 오가고 있습니다.
암의 절제도, 이식도 아니고, 대동맥 방사선 색전술 시술을 받은 탓에, 치료는 비교적 쉽게 끝났지만, 다른 환자들보다 더 자주 검사를 받아야 하는 과정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래서 3개월마다 일주일 간격으로 두 번씩 서울을 다녀와야 합니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말을 예순 넘어 3개월마다 실천하고 있는 중입니다. 어떤 분은 그 수고로움을 걱정하시는데, 사실 지방에 살면서 서울 갈 일이 얼마나 자주 있나요. 이런 기회에 그렇게 자주 서울 출입을 하게 되다니 나름 출세한 겁니다.
암튼 병원 스케줄에 따라 움직여야 하니 내가 가고 싶은 날이나 시간을 선택할 수가 없습니다. 대부분은 3개월 후의 일정을 병원이 지정해 준 날짜와 시간 그대로 따르지요. 감히 어떻게 내 맘대로 하겠습니까. 조절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되면 1주일 후 의사 선생님 진료 날까지 틀어지고, 그러면 다시 시간을 봐야 하는데 거기다가 내 스케줄까지 넣어서 조정해 주라 하기가 미안할 지경이에요.
어차피 치료와 회복을 최우선적으로 하기로 결정한 일이니, 어지간하면 병원스케줄에 맞춰 움직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날은 오전 9시에 진료를 받기도 합니다. 서울에서 오전 9시 진료라니요. 그 시간에 맞추려면, 광주송정역에서 새벽 5시 37분, 첫차를 타야 합니다. 새벽 첫차를 타고 용산역에 도착해 다시 지하철을 갈아타고 오전 9시 진료. 저는 이미 하루치의 몸을 다 쓰고 난 후입니다. 흔히 하루 일정의 시작 시간이지만, 나에게는 그 끝에 가까운 시간인 거지요.
그런데 선생님을 만나 결과를 듣는 시간은 불과 10여분 남짓.
“아, 좋은데요. 별 이상 없습니다. 새로 생긴 결절 없고요. 염증 수치도 좋아요. 약은 잘 먹고 있지요? 좋아요. 그럼 우리는 3개월 후에 다시 만나죠.”
끝.
사실 짧은 진료시간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이야기가 길어지니까요. 그러니 그 긴 시간 새벽같이 일어나, (사실은 잠들지 못하고서) 함평 → 광주송정 → 용산역 → 혜화역을 거쳐 오며
‘좋다고 하겠지. 별 이상 증세가 없었잖아’
‘아니, 이번에 자주 머리가 무거웠던 같아. 뭔가 변화가 생긴 거 아닐까?’
제멋대로 왔다 갔다 하는 생각들. 잠을 설쳤지만 피곤마저 쫓아버리던 불안. 그런 것들이 일시에 안개 걷히듯 사라지는 시간입니다. 그게 불과 10분이든 그보다 짧든 말이지요.
그리고는 다시 3개월 후의 스케줄을 잡습니다. 진료 일주일 전 검사는 사실 더 끔찍합니다. 일단 검사를 위해 8시간 전부터 금식을 합니다. 그리고 똑같은 과정을 거쳐 병원으로 이동하지요. 보통 오전 검사를 위해 전날 저녁 9시부터 금식을 했는데, 오전에 첫 번째 검사 마치고, 두 번째 검사가 6시간 후에 잡힌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 거의 20시간 정도를 금식하고서 이동하고, 그 복잡한 병원 안에서 기다리다 검사를 마치고 나면 비로소 진짜 환자가 된 심정입니다.
마취도 없이 입 속으로 관을 넣어 들여다보는 동안 관이 내 몸 안에서 왔다 갔다 움직이는 것이 다 느껴집니다. 본능적으로 뱉어내려는 구역질과 찔끔찔끔 흘러나오는 침과 눈물. 기계 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온몸으로 퍼져 나가던 주입된 약물 냄새. 무엇보다도 인간으로서 느끼는 무력감으로 진이 다 빠지지요.
그러나 그보다 더 끔찍한 무력감으로 나를 몰아가는 것은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입니다. 사실 다른 날과 다를 것 없이 보내는 날들입니다. 다른 날과 똑같이 먹고, 운동하고 그렇게 보내는 시간인데도, 갈비뼈 아래쪽이 부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운동하는데 유난히 숨이 차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직은 아무것도 결론 내려진 것이 없고, 그렇다고 내가 더 어찌할 것도 없는 일주일. 이 일주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견뎌야 하는 시간입니다.
지난주 입춘이 지났는데, 오늘은 대설주의보로 때 아닌 설국이 연출되었습니다. 지난주 창문 밖 볕이 얼마나 포근하고 간질거리는지 겨우내 방안에 들여놓았던 화분들을 내놓아 햇볕을 좀 쐐줄까 고민 고민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아직은 아니지, 하고서요. 아니나 다를까 오늘 눈보라 치는 한겨울로 변하는 걸 보면서 가만히 혼자 웃습니다.
정원에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기다리는 시간이 있습니다. 바로 지금 같은 때입니다. 봄이 오려고 간질간질하는 지금 같은 때. 어제 그제는 봄날이었다가, 오늘은 한 겨울로 되돌아가는 때. 씨앗을 묻기에도, 삽질을 하기에도, 물을 주기에도 아직은 때가 아닌 때. 그저 하늘을 쳐다보고 기온만 살피며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이즈음 정원지기의 지나친 관심은 자칫 꽃샘추위에 귀한 화초들에게 치명상을 입히기 십상이지요. 그저 가만히 기다리는 일이 참 힘들 때도 있습니다. 봄이 오기 전 며칠. 정원도 몸도, 아직은 그냥 그대로 두어야 하는 날들이 있습니다.
나는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