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찾기 위한 질문
“내가 무슨 잘못을 해서 이런 벌을 받을까요?”
“나는 술, 담배도 안하는데 왜 나한테 이런 병이....”
“왜 하필 나에게 암이 생겼을까요?”
제가 만나본 많은 암환자들은 암을 처음 만났을 때 비슷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합니다. 누구나 무슨 일이 잘못되면 그 원인을 찾아보려고 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저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왜 도대체 내 몸에 이런 암덩어리가 생긴 거지?
암환자가 되고 몇 달 동안은 이 병원, 저 병원을 순례하느라 시간을 보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제일 가까운 대학병원에 갔고, 담당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서울의 더 큰 대학병원과 대형 종합병원도 찾게 되었습니다. 많은 피가 몸에서 뽑혀 나와 검사실로 보내졌고, tv에서 봤던 여러 기계들 속으로 들어가 온갖 검사를 받고 치료까지 받는 정신없는 시간이 거의 석 달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그때는 의사 선생님들이 하라는 대로 하느라고 무슨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모두가 하는,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과정인가보다 하고 시키는 대로 표준 치료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막상 표준 치료가 끝나고 나서부터가 시작이었습니다. 병원에서의 화학적 치료는 제가 아는 영역도 아니고, 제 몸이기는 하지만 의사선생님이 주도하시고 저는 따라가기만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사실은 제가 할 일이라는 게 없었지요. 그리고 그 과정이 끝나고 나서는 마치 끈이 떨어진 연처럼 허공에 떠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넌 도대체 뭐니?”
밖에서 침투한 바이러스나 병균이 아닌, 내 몸 안에서 자라났다는, 그리고 앞으로도 또 자라날 수 있다는 암. ‘넌 대체 뭐니? 너에 대해 좀 알고 싶어.’
그래서 책을 샀습니다. 암환자가 되었다고 의사가 될 필요는 없지만(그것은 전문 의사선생님이 다 하실 것이므로) 도대체 내 몸에서 일부처럼 살아온, 또 언제든 그리할 암이 무엇인지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그것이 암환자로서 권리이면서 의무 아니겠는가 하면서요.
여기서 암이란 이런 것이다, 하는 의학적인 설명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게 많이 알지도 못하고요. 그러나 암과 싸우든지, 다스리며 함께 살아가든지 뭘 하더라도 최소한 어떤 원리로 암이 생성되고 없어지는가는 알아야 어떻게든 대응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책을 읽고 제가 이해한 바로는 암은 하나님이 내린 벌도 아니고, 내가 어떤 큰 잘못을 해서 생기는 질병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 습관이나 환경, 유전적 문제들이 있기는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병이지요.
설령 내 몸을 잘 간수하지 못한 원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크게 자책하고 스트레스가 될 정도로 후회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내 몸에서 암이 생겼고, 또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 지금 당장의 현안 문제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자책에 빠져 있을 일이 아닙니다. 후회가 이미 닥친 일을 되돌려놓지는 않으니까요. 이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찾아가야할 시간이지요.
굳이 크리스찬이 아니더라도 성경 속에 나오는 “욥”이라는 인물을 알 것입니다. 불행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욥. 인간에게 닥칠 수 있는 모든 불행이 차례로 그에게 닥치지요.
저는 발병 후 차분히 욥기를 필사해 보았습니다. 도대체 그 불행을 그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하는지를 보고 싶었습니다.
욥의 상황에 대해 욥의 친구들이 분석한 원인들, 욥의 답변들, 그러다가 쏟아지는 욥의 한탄 등. 서로 상반된 주장들인데도 이상하게도 양측의 말이 똑같이 다 이해가 되는 아이러니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는 과정을 거쳐 제가 알고 싶었던 것은 그래서 욥은 도대체 자신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절규하는 욥에게 하나님은 생뚱맞게도 모든 것이 시작되던 태초에 대해, 그 섭리에 대해 긴 설명을 합니다. 그 설명을 따라가다 보니, 저는 한낮 아주 작은 자연의 일부분인 인간 저 자신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개미처럼 작아지는 것과 동시에, 자연의 일부로서 노을처럼 거대해지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내게 일어난 불행이라면 불행인 이 질병이 그 위대한 질서 앞에서는 사실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지요.
물론 그러한 깨달음이 제 몸을 물리적으로 바꿔주지는 않았습니다. 달라진 것은 오직 제 마음뿐이었습니다.
암 투병에서 제가 생각하는 1순위는 자신의 병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라는 생각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성경 속에서 그 답을 얻어 평안해 졌는데요, 각자 나름의 방법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종교이든 명상이든.... 그리고 암이라는 존재에 대해 아는 것도 스스로를 편하게 만드는 방법이었습니다.
암은 벌도 아니고, 재수 없어 걸리는 것도 아니고, 나의 큰 잘못으로 걸리는 것도 아닙니다. 잘 몰라서, 모른 채로 살아와서 걸린 것입니다. 누구도 암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애쓰며 살지는 않지 않으니까요. 물론 건강하고자 더 신경 쓰고 노력해 온 사람에게는 그 확률이 줄어들겠지만, 저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훨씬 받아들이기 쉬웠습니다. 그리고 암에 대해 알고 나니 훨씬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기왕에 생긴 암은 대부분 병원에서 화학적 표준 치료로 어렵지 않게 끝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닌 것이 언제든 또다시 전이나 재발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원의 잡초를 깨끗하게 제거했다고 해도 또 새로운 잡초가 생겨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정원지기는 부지런히 자신의 정원에서 잡초를 뽑아내지요.
그것은 누가 대신해줄 수 없는 영역입니다. 암환자 자신이 자신 몸의 면역력을 키워 나가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암세포가 다시 자리 잡지 못하도록 그런 토양의 몸을 만드는 것이 1차적 표준 치료 후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그것이 표준 치료 이후, 비로소 내가 다시 내 몸의 주도권을 되찾는 시간인거지요.
저는 암을 이겨야 할 적으로 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대신 보이지 않는 암에게 묻기로 했지요.
“넌 도대체 뭐니?”
그 질문은 두려움이 아니라 이해로 이어졌고, 이해는 한걸음 더 나아가 태도로 나아갔습니다. 즉, 암과 싸우기보다 암이 다시 머물지 못하도록 내 영혼과 더불어 몸의 삶을 살아가려는 태도입니다. 그것이 암환자가 된 이후, 내 스스로에게 내린 가장 조용한 결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