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정원에

'혀'보다 '몸'을 생각하다.

by 낮은자리 수니


봄의 정원에서 맨 처음 자리를 잡고 꽃을 피우는 것은 땅에 딱 달라붙어 있는 겨울 난 풀들입니다. 흔히 잡초라고도 하지만, 사실은 광대나물, 냉이, 곰방부리로 불리는 별꽃나물 등 맛좋은 들나물들입니다. 또 꽃으로 보기에도 너무나 앙증맞고 예쁜 야생화들입니다.


봄 제초작업이 즐거운 것은 이런 나물들을 수확하는 재미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곡우 전 나물은 뭐를 먹어도 된다’고 하십니다. 겨울 나면서 독이 없고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향도 진해서 훌륭한 나물 반찬이 됩니다. 갖가지 나물 반찬으로 한상 차려놓으면 임금님 수랏상 부럽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이런 나물 반찬을 해 놓고 맛있다며 맛나게 잡수면, 한 젓가락 먹어 보고는 금세 계란 후라이로 젓가락이 옮겨갑니다. 달달한 볶음요리나, 매운 조림을 즐겨 먹었지요. 입에 달달한 거, 매운 떡볶이, 차가운 아이스 커피, 피자나, 치킨의 끌리는 맛은 자석처럼 우리를 끌어당깁니다.




정원지기는 정원 꽃들의 입맛에 맞춰, 양분을 주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요즘은 식물에 맞는 비료들이 많습니다. 색을 선명하게 하거나, 이파리를 윤택하게 해주거나, 키를 조절해주는 다양한 비료들을 이용하여 정원을 가꿉니다.

그러나 훌륭한 정원지기는 비료를 사용하는데 좀더 신중합니다. 정원의 핵심은 토양입니다. 정원의 흙이 건강하게 살아있어야, 무슨 꽃을 심든 꽃들이 잘 자라게 되지요. 흙 속에 지렁이는 물론, 여러 미생물들이 잘 자라고 있어야, 혹시 오염된 꽃들을 사와도 금세 치유되어 잘 자라는데, 각종 비료들로 땅심을 잃어버리면, 한 해 꽃은 예쁘게 봤을지 모르지만, 해가 갈수록 원인모를 병으로 꽃들이 시들어가는 것을 보게 될 것이 뻔합니다.




몸으로 보면 달달하고, 튀긴 음식들은 마치 정원의 비료와도 같습니다. 혀가 원하는 음식이지요. 혀에 착 감기는, 혀에 알싸한, 목넘김이 좋은.... 그런 이유들로 얼마나 쉽게 음식들을 선택했는지 모릅니다. 정원의 비료가 땅심을 망치듯, 혀가 원하는 것들로 몸이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암환자가 되고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맛있는 것을 먹는 일과 나를 살리는 것을 먹는 일은 꼭 같은 방향으로 향하지는 않는다는 것을요. 그래서 제일 먼저 내가 먹어왔던 것을 짚어봤습니다. 결국 내가 먹는 것이 나를 규정하였을 테고, 그것이 암이 자랄 수 있는 몸으로 만들었을 테니까요. 육식 보다는 채식을, 탄산음료 보다는 생수를 더 선호하던 나는 나름 좋은 식습관을 가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선호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가 만들어 온 음식 페러다임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는 없었습니다. 도처에 있는 맛있는 빵집은 탄수화물과 설탕의 과잉 섭취를 부추기고, 식사가 애매할 때 가볍게 먹기 좋은 배달음식은 가볍게 한 끼를 해결하게 해 주지만, 그 대부분은 지방 섭취로 기울어지기 쉽습니다. 외식 후 당연한 코스로 연결되는 카페에는 거의 모든 음료가 설탕이 과하게 들어가 있거나, 얼음을 둥둥 띄워놓아 너무 차갑거나, 카페인 음료들입니다. 사회에 함께 살면서 그런 생활 문화 속에서 건강한 음식을 찾아 먹는 일은 꽤나 많이 신경을 써야하는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색을 선명하게 하는, 향을 더 진하게 하는 비료는 당장 꽃을 보기에는 좋지만, 흙에 꼭 필요한 양분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니 흙에 피해를 줄 지도 모릅니다. 정원지기는 냄새나고 투박해 보여도 흙을 살리는 퇴비를 사용합니다. 정원은 한 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 여러 식물들을 위해 관리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혀는 맛을 느끼고, 식욕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지만, 입을 통해 먹는 음식은 내 온 몸에 영양을 공급하는 일을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이치를 무심히 지나쳐왔습니다.


오늘 점심은 텃밭에서 겨울을 난 나물을 뜯어 무치고, 청국장을 끓여 볼 생각입니다. 혀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라는 정원이 필요로 하는 것들로 따뜻한 한 끼를 먹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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