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 된다

by 낮은자리 수니


많은 환자들은, 특히 암환자들은 발병과 함께 본인이나 가족들의 생활이 달라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좋은 환경을 찾아 과감히 산속 깊숙하게 들어가기도 하고, 바닷가 한적한 곳이나 공기 좋은 시골로 거처를 옮기기도 합니다.


생활 습관을 바꾸고, 식단을 바꾸고, 운동시간을 늘리는 등 건강 관리에 집중하게 되지요. 사실 암의 화학적 표준 치료는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암에 취약해진 몸에 언제 또다시 재발할지 몰라 이제부터 암의 존재를 의식하면서 관리를 해간다고 봐야 합니다. 매우 바람직한 태도이지요. 간혹은 별거 아닌 듯이 무시하거나, 애써 외면하거나, 어쩔 수 없이 환경을 바꿀 수 없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발병 후 많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직 하면 ‘암선고’라고 하겠습니까.




저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본병원에서의 시술은 2박 3일 입원으로 쉽게 금방 끝났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의 무서운 선고에 비해 좀 싱거운 치료였지요. 선생님은 시술이 매우 잘 되었음을 알려주시고, 3개월 후 결과를 보자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퇴원 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른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지, 주의해야 할 음식이나 행동들이 있는지 물어보자 뭐든 평소와 다르지 않게 잘 먹고 약 잘 먹고, 엉뚱한 민간요법 이런 거 함부로 하지 말라는 주의를 주시고 끝.


그런데, 말은 굉장히 쉽고 단순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별로 복잡하지 않은 시술을 했다고는 하지만, 2~3개월 이 병원 저 병원 검사받느라 몸무게가 거의 8kg 정도가 빠졌고, 기력도 쇠약해지고, 마음도 많이 약해진 상태였지요.


그런 상태로 가정주부로 돌아가 살림하며 건강도 돌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병원에 입원하고 싶지도 않고, 그야말로 갈팡질팡 어찌할 바를 모르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가까이에 경험이 있는 사람도 없고 참 막연했지요.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암요양 전문 병원이 있다는 걸 알고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전문 암환자(?)가 되었지요. 여러 종류의 각기 다른 상태의 환자들이 모여 있어, 교류를 하며 서로 정보도 나누고, 위로를 받으며, 안도를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환자 맞춤 식사와 운동, 여러 면역치료 등을 병행해서 암전문 요양병원은 암치료 후 회복 환자들에게 꽤 괜찮은 곳이었습니다.




암환자라는 교집합을 빼면 모두가 다 각기 다른 위치에서 사회의 일원으로 자기의 역할을 하며 잘 지냈던 사람들입니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퇴직 후 좀 쉬려 하다가,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며 열심히 젊음을 만끽하다가,

아직은 돌봐야 하는 아이들이 셋이나 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암환자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 사연 또한 같은 사람이 없습니다.


어느 날 병원 내 찜질방에 누워 옆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성악가 환우 이야기가 나왔고 그이의 노래를 듣고 감동했다는 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세상에! 같은 환우의 노래라니. 노래를 부르는 사람에게도, 그걸 듣는 사람에게도 그런 감동이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분은 시낭송 하시는 환우가 입원해 있다고 하셨고, 옆에서 함께 찜질하시던 분은 한춤 공연단에서 활동하시다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랬습니다. 여기 암전문 요양병원에 모이기 전까지 모두가 자신의 영역에서 열심히 보람 있게 전문가로서 살아오신 분들입니다. 몸은 비록 환자복 안에 싸여 있지만, 아직은 항암으로 머리가 빠지고, 손발이 부르트고 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각기 다른 모습으로 멋있게 살아가던 분들입니다.




“그럴게 아니라, 이렇게 재주 많으신 분들과 함께 연말 송년 파티라도 하면 어때요?”

제 버릇 개 못주는 성격 발동입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함께 했던 분들이 호응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즉석에서 송년 파티를 기획했지요. 병원 측에서 작은 파티를 허락해 주고, 장소만 마련해 준다면 비록 환자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다음 날 회진 오신 병원장님께 건의를 해 봤습니다.

“좋습니다. 대신, 저도 한 곡 부르겠습니다.”

오! 멋쟁이 원장님.


그리하여, 드디어 병원 운동실에 마련된 작지만 아늑하고 멋진 무대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기로운 밤(병원명이 ‘슬기로운 재활병원’이어서 생긴 타이틀) 송년 음악회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아직 투병 중이지만 수준 높은 성악가의 노래와 림프부종으로 손과 다리가 코끼리처럼 부어오른 낭송가의 시낭송, 아직도 항암 주사를 맞으면 일주일씩 기함하는 살풀이 대상 수상자의 한춤, 퇴직 후 문화센터에서 하모니카 색소폰 강사를 하시다 오신 교장선생님 연주, 그리고 병원장님의 수준 높은 뮤지컬 ost, 협찬 출연해 주신 이웃 산부인과 원장님의 트롯 등.


한 겨울 여러 환자들로 가득한 병원에서 뜨거운 열정이 불타올랐습니다. 속에서 들끓었을 끼를 누르고 병과 싸우며,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을까? 두려웠을 환우님들. 같은 입장의 환우들에게 보여준 멋진 공연은 그 어떤 무대보다 벅차다는 소감은 눈물겨웠습니다. 모두가 참여한 2부에서는 모두가 환자임을 잊어버린 흥겨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두고두고 몇 날을 그날 밤의 흥분으로 들뜨곤 했었지요.




어느 날 느닷없이 암환자가 되어, 암환자로서 고통을 견뎌내고 있거나, 좋은 예후로 면역관리를 하고 있거나, 일상에서 병원생활로 옮겨와 계신 분들입니다. 아파 고통스럽거나, 두렵거나, 외롭거나, 억울하거나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감정에 휩싸여 지내는 암 전문 병원 생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됩니다. 똑 같이 하루 24시간, 1년 12달은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또 거기에 맞춰 살아갈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