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3년 만 살기로 했습니다.

by 낮은자리 수니


“우리의 치료 목표는 당신의 생명을 2~3년 연장시키는 것입니다. 만약 치료를 하지 않는다면 몇 달이 될지 장담할 수 없고요. 치료가 끝나도 완치라고 할 수는 없어요.”

치료 계획 단계에서 주치의 선생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의사 선생님은 매우 안타까운 표정으로, 환자와 가족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표정으로 나누는 대화던데, 말씀하시는 선생님도 감정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표정이셨고, 나 역시도 덤덤했습니다.


“생각했던 거보다 시간이 많네.”

진료실을 나오며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남편은 주치의 선생님의 무감각한 표현을 좀 서운해했습니다. 유감각한 표현을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습니까만.


사실 주치의 선생님이 2~3일, 혹은 2~3개월이라고 했다면, 저도 좀 당황했을 것 같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주변을 정리하고 하는 시간으로 좀 빠듯하겠다 싶은 생각도 들고요.

그러나 만약 선생님이 ‘당신의 생명을 20~30년 연장시키는 것입니다.’라고 했다면? 20~30년 후라니. 그럼 80~90세를 말하는데, 그건 평균적인 장수 나이 아닌가. 저는 남은 그 수십 년을 살기 위해서 지금까지와 다르지 않게 또 계획을 세우고, 노력하고 때로 경쟁하며, 살아갈 것 아닌가. 그 긴 시간 동안 또 언제 생길지 모르는 암을 의식하며 전전긍긍할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그 긴 시간 동안 점차 운동이고 식단, 스트레스 관리도 엉망이 되어갈 것입니다. 그건 너무나 잔인한 시간인 셈입니다.


그런데 2~3년이라면? 그 정도의 시간이면 난 최선을 다해서, 암환자로서 열심히 살아갈 자신이 있습니다. 차분히 주변 정리도 해 나갈 것이고, 그래도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 한 두 가지는 해 볼 시간으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물론 3년 후 나는 죽고야 말 거야. 하는 그런 비관적인 생각은 아닙니다. 죽음에 이르는 이벤트야말로 얼마나 다양합니까. 교통사고를 비롯해 느닷없이 닥치는 사고들로 인한 죽음, 코로나 19처럼 대유행에 의한 감염증, 또 치명적인 질병 등. 죽음은 늘상 우리 가까이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내 마지막 이벤트는 암이 될 확률이 높아진 것일 뿐입니다.


어쩌면 암이라는 질병은 죽음으로 가는 방법으로 꽤 괜찮은 측면도 있습니다. 어느 날 아무런 준비도 없었는데 느닷없이 죽음에 이른다면, 혹시 그런 속에서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다면 참 허망할 듯싶어요. 자신도 남아있는 가족들도. 그런데 암은 어느 정도 죽음의 시점을 예측할 수 있는 질병입니다. 물론 의사 선생님의 선고가 다 꼭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만, 어쨌든 어떤 경로를 거쳐 죽게 될 거라는 걸 알 수 있지요. 그만큼의 ‘시한’도 있는 거고요. 그래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할 시간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두려움과 비관이 끼어들겠지만, 서서히 준비해 간다는 측면에서 나쁘지만은 않지요.

누구에게나 유한한 삶. 삶은 얼마나 오래인지 하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방법의 문제라는 말이 실감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3년만 살기로 했습니다. 그 만만한 시간을 만만하게 즐기며 살기로.

그러다 3년 후 죽지 않으면?

그러면 또 3년쯤 만만하게 살아가는 거지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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