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보내는 신호
한 때 라벤더에 빠져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상쾌하고 은은한 향, 신비로운 보라, 무리 지어 피어 있으면 절로 기분 좋아지는 라벤더. 봄 화원에 가면 라벤더를 비롯한 허브를 사 나르고 정원 여기저기에 허브의 자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색이나 향도 좋지만, 라벤더는 쓸데도 아주 많습니다. 정원에서 꽃을 실컷 보다가 몇 개씩 따서 차로 마시면 코 끝에 스미는 향이 그만입니다. 바람에 끊어진 가지나. 너무 뭉쳐 있는 녀석들은 가지를 잘라 말려서 방안에 두거나, 자동차 안에 두면 은은한 향이 머리를 맑게 합니다. 침대 머리맡에 두면 잠도 잘 오지요.
그렇게 정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이제 막 꽃망울을 터트리기 직전이면 정원지기의 발길은 절로 그쪽을 향하게 됩니다. 라벤더의 영토로 가면서 괜히 코를 킁킁 거리기도 합니다. 벌써 꽃이 피어 향이 나는지 기대하면서요.
그러던 어느 날 라벤더 한 그루가 시들어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어, 무슨 일이지? 물이 부족한가.’ 부랴부랴 물부터 뿌려줍니다. 시들어 있는 녀석에게 특별히 더 많이 주는 건 인지상정입니다. ‘미안해 내가 좀 무심했지?’ 사과도 하면서요.
그런데 다음날 보니 뭉텅 마치 원형 탈모라도 걸린 듯 몇 그루가 더 시들어있습니다. ‘물이 아닌가!’ 어제는 멀쩡하던 옆에 있는 것까지 시들어 있는 걸 보면 물 부족이 아닌 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병인가 하고 화원에 물었더니, 몇 가지 벌레와 균을 없애는 친환경 약을 줘서 가져다 뿌려줬지요.
어디가 아프다고 말이라도 하면 좋을 텐데, 말 못 하는 식물이니 정원지 기는 참 답답합니다. 원인을 알면 어떻게 대처를 할 텐데, 속수무책 시들어가는 걸 보면서 무력감에 빠지기도 하지요. 약을 뿌리고 나서도 시들어가는 녀석들이 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라벤더의 구역으로 가는 일이 두려워질 지경입니다. 도대체 물을 줘도, 약을 줘도 안 되니, 뽑아낼 수도 없고요. 시간이 가면 괜찮아지겠지, 내일이면 살아날 거야, 막연한 기대로 며칠이 지났습니다.
그날도 속절없이 물을 주고 있는데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갑자기 라벤더 한그루가 땅 아래로 쓰윽~ 꺼지는 겁니다. 마치 땅 속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쓱 잡아 내리는 것처럼.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습니다.
땅 속으로 꺼진 시들어버린 라벤더를 뽑아 올렸지요. 맥없이 달랑 들려 올라오는 라벤더. 시든 라벤더를 위로 들어 올리고 나서야 원인을 알았습니다. 꽃나무 아래 흙이 텅 비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뿌리가 떠 있어 바짝 마르고 시들 수밖에요. 어이가 없었지요. 도대체 왜 땅 속이 텅 비어 있다는 말인가요. 라벤더가 뿌리박고 있던 흙이 어디로 사라졌다는 말인가요?
범인은 두더지였습니다. 유독 라벤더 영역만을 집중적으로 파헤친 두더지 때문에 이미 삼분의 일 정도를 잃고 나서야 원인을 알고서 참 기가 막혔던 기억이 있습니다. 왜 나는 땅 속을 들여다볼 생각조차 못했을까요?
나는 늘 위에서만 내려다보던 사람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봤습니다. 땅 위에서 아무렇지도 않으면 다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뿌리가 지탱해 주고, 잎을 키우고,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습니다.
몸도 그렇습니다. 생각해 보면 몸은 오래전부터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습니다. 라벤더가 시들어가며 문제가 있다고, 어서 살펴봐달라고 오래도록 신호를 보낸 것처럼, 여러 방법으로 신호를 보내왔습니다.
종아리에 쥐가 나 잠에서 깨어난 밤이면, ‘또 시작이군.’하며 몸을 뒤틀다, 식은땀을 흘리다 깨어나곤 했습니다. 다친 기억도 없는데 양말을 벗으면 발바닥이며, 발등 여기저기 들어있던 멍을 보면서, 도대체 언제 어디에다 부딪힌 거지? 하고 지나쳤지요.
어느 날 세안을 하느라 고개를 숙이는데 주르륵 흘러내려 세면대를 새빨갛게 물들이던 코피. 그걸 보면서도 ‘이상하네, 왜 자꾸 코피가 나나’ 고개만 갸웃하고 말았습니다. 어떤 때는 컴퓨터 자판으로 코피가 뚝뚝 떨어져 기겁을 했던 일도 있었지만, 그저 하던 작업을 마무리하느라 휴지를 뭉쳐 막고는 지나쳤습니다. 그렇게 잠들었던 밤이면 얕아진 잠으로 자주 깨고 아침부터 피로감으로 어깨가 무거웠습니다.
라벤더가 그랬듯이, 내 몸도 수없이 신호를 보내왔었습니다. 그러나 그저 나이 들어서 그렇겠지, 우선 급한 이 일을 마저 마치고 나서, 내일이면 괜찮겠지... 그렇게 넘겨버린 징후들, 그것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 그저 견뎌야 할 일로 여겼습니다. 짐짓 내일이면 괜찮을 거야 하고 외면하면서요.
그날, 대학병원 소화기 내과 선생님께서 “모든 검사 결과들이 간암이라고 합니다.”라고 말했을 때, 내가 암환자가 된 그날, 그래서 저는 몸이 갑자기 배신한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오래 신호를 보내왔는데, 내가 듣지 않았구나. 무시했구나 그런 생각이었지요. 병은 몸이 보내온 첫 신호가 아니라, 끝끝내 외면해 왔던 신호들의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라벤더를 망가뜨린 두더지를 발견하고 나서야, 나는 정원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꽃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꽃이 뿌리내리고 사는 땅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살피는 일이라는 것을요, 땅 위에서는 멀쩡해 보이던 정원도, 땅 속 어딘가가 비어 있으면 뿌리는 뻗어가지 못하고 어느 순간 갑자기 무너집니다. 그때는 이미 너무 늦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정원지 기는 특별한 일이 없어도 정원을 서성입니다. 모두들 안녕한지, 습기는 적당한지, 햇볕은 제대로 들고 있는지, 이파리도 살펴보고 꽃잎도 살펴봅니다. 이상한 징후가 보일 때, 한 번 더 들여다보고, 흙을 파보고, 무엇이 필요한가 꽃의 입장으로 봐야 합니다. 유능한 정원지 기는 일이 벌어지기 전에 그런 것을 점검해야 합니다.
정원에서 대부분의 날에는 아무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아무 일도 없는 날들’을 그저 건너뛰지 않고 살피는 것이 정원지기의 정원을 지키는 방법입니다.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은 병으로 한 번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작은 신호들을 보내고 있었고, 그때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그냥 넘겼습니다. 정원에서 ‘라벤더가 왜 이러지?’ 그러고는 그냥 지나쳤던 순간들처럼 말입니다. 그런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서 어느 날 암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났던 겁니다.
무너지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시든 라벤더 아래에 텅 비어있던 흙처럼. 어쩌면 내 몸도 알아듣지 못하는 신호를 계속 보내며 그렇게 말없이 오래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뚜뚜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