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라는 정원

정원에서 답을 생각하다.

by 낮은자리 수니


겨울의 터널을 막 지나온 정원은 아직 좀 삭막하기는 하지만 건강합니다. 겨울 눈바람을 이겨낸 식물들은 잡초이거나 화초이거나 채소이거나 모두가 강인하여 어지간하면 죽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매년 똑같은 봄맞이에도 정원지기는 특별히 봄에 더 많은 탄성을 지르게 되지요.


월동 화초들의 자리 주변을 정리해 주거나, 잡초를 뽑아내고(아직 뿌리가 깊이 박히지 않은 잡초는 뽑을 만합니다) 새 씨앗을 뿌리거나, 화원에서 벌써 만개하기 시작하는 화초들을 들여오는 걸로 분주해지는 시기입니다. 그리하여 봄의 정원은 사계절 중 어느 계절보다 더 아름답고 풍성하고 건강합니다.


정원지기는 웃자란 나무의 가지를 잘라 수형을 만들기도 하고, 키나 색깔 모양 등을 고려하여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주기도 합니다. 자주 전체의 그림을 상상하며 정원을 지그시 바라보는 시기도 바로 봄입니다.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정원 전체를 그려가는 시기입니다.


그러다 정원의 식물들이 점차 뿌리내리고 땅 맛을 보고 나면서부터는 이제 정원지기의 손을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저 혼자 먼저 쑥 자라 버리는 녀석, 옆으로 세를 뻗어 자리를 넓히는 녀석, 다른 녀석들에 치어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는 녀석, 가만 들여다보면 정원도 하나의 사회입니다. 서로 잘 어울려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치열한 경쟁의 현장이며, 유독 욕심 사납게 자라는 녀석이 있지요. 급기야 지휘자의 지휘를 벗어나기까지 합니다.


내 몸 안에 암이 자라고 있다는 말을 듣고서 생뚱맞게도 정원이 떠올랐습니다. 정원에서 자라던 수많은 식물들. 서로 어울려 향기롭고 아름답기도 하지만, 쉼 없이 경쟁하고 다투며 사계절을 살아가는 정원. 문득 몸 역시 그러하다 싶었습니다. 여러 기관들이 각기 역할대로 건강하게 유기적으로 잘 작동이 되어야 비로소 건강한 몸이 되는 거지요.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보이는 모습 그대로 한 모습이지만, 보이지 않는 장기들, 내시경으로도 보이지 않는 신경과 호르몬들이, 정원의 화초들처럼 제자리에서 각자의 색깔과 특성대로 자라 어우러져야 건강하고 아름답듯이 서로 잘 조화를 이루고 있지요. 보통은.


정원에서 혼자만 무럭무럭 잘 자라는 식물은 위험합니다. 초보 정원지기들이 많이 하는 실수가, 식물의 특성을 모르고 그저 보기 좋아서 몇 뿌리 얻어다 한쪽 귀퉁이에 심었던 꽃이 해가 갈수록 번져서 온 정원을 잠식하게 만들어 버리는 일입니다. 그렇게 저 혼자만 욕심껏 자라는 식물은 주변 식물의 양분을 빼앗고, 볕을 가리고, 심지어 다른 화초들의 자리마저 빼앗아 결국 죽이고 맙니다. 그런 녀석들은 씨앗으로도 번식하고, 뿌리로도 번식을 하여 제거하기도 어렵고, 뿌리 한 마디만 남아 있어도 거기에서 새로운 줄기를 만들어내는 탁월한 능력으로 근절하기가 정말 어려운 존재이지요.


암이 딱 그렇습니다. 몸속 아무 곳에서나 들러붙어 잘 자라고, 혼자서만 너무 잘 자라는 세포. 다른 세포들보다 먼저 양분을 가로채가는 세포. 몸 전체의 조화를 깨트리고, 몸 전체 컨트롤 타워의 지시를 전혀 듣지 않는 제멋대로인 세포, 암은 영락없이 정원의 무법자 화초와 같습니다.


사실 원래 정원이라는 것은 정원지기의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초봄에 자리 잡아 준 곳에서 그대로 자라지 않고 생각보다 웃자라 넘어지는 녀석, 탐스런 꽃을 보고자 하지만 잎만 무성하게 내어놓는 녀석, 너무 빨리 자라서 온통 자리를 차지해 버리는 녀석들로 정원은 흐트러지기 시작하지요. 정원지기의 눈에 애써 가꾸던 정원의 균형이 무너지고, 이제 야생의 들판으로 가고 있는 것처럼, 제멋대로로 보일 때입니다.


그런데 ‘정원이 정원지기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합니다. 생각해 보면 식물들도 다 나름의 특성이 있고, 또 토질도 다 다르니, 토질에 따라 그 특성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조화나, 조형물이 아닌 생물들이 자라는 정원에서 정원지기가 할 수 있는 일은 강제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정원 전체를 조율하는 것뿐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영국식 정원처럼 잘 계획되어 만들어지는 정원도 있지만, ‘타샤의 정원’을 꿈꾸는 정원지기의 경우엔 말이죠.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어울려 제 기능을 잘하다가 한 군데에 문제가 생기면 연달아 다른 곳에서도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곳을 고치려 들면 또 다른 곳에서 문제가 커지고, 그것을 신경 쓰다 보면, 또 저것이 부족하게 되고......


암이 발견되면서 암환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되지만, 사실 암 하나의 문제가 아닌지도 모릅니다. 내 안에서 서서히 보이지 않게 균열이 생기고 서로 원활한 교류를 못하는 상태로 수년을 지내왔을 것입니다.


결국 정원에서 답을 생각합니다. 암만 제거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간만, 위만, 대장만 고친다고 괜찮아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정원을 돌보듯이, 몸을 돌봐야 한다는 겁니다. 몸을 지배하여 처음처럼 고치려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제 역할을 하도록 돕는 일, 너무 혹사하지 않고 균형을 맞추는 일, 그것이 몸이라는 정원을 맡은 정원지기의 몫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