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의 종교적 원형
배우 최민식의 매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었던 드라마중 하나가 <카지노>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드라마의 세번째 시즌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카지노> 두번째 시즌의 마지막 장면은 큰 충격과 아쉬움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시즌2에서의 마지막 엔딩을 보면서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기시감을 느끼는 장면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최후의 식사와 그 후에 일어난 사건 때문입니다. 자신의 최후를 예감한 사람의 마지막 식사는 언제나 큰 울림을 줍니다. 미국에서는 사형수가 사형되기 직전에는 자신이 원하는 식사메뉴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식사라는 행위가 얼마나 삶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말해줍니다.
당신은 누구와 식사를 합니까? 당신이 식사를 함께하는 사람이 있는지 누구와 함께 하는지는 당신이 누구인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혼자 식사하는 일이 많다면 당신은 고립된 생활을 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늘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한다면 당신은 관계지향적인 사람일 수 있습니다. 가족이 있는 사람은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때가 많을 것입니다. 가족을 식구食口라고도 하는 것을 보면 가족은 함께 먹는 사람인 것입니다. 스포츠팀에서 선수가 소속을 옮기면 새로운 팀에서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고 표현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드라마 속 차무식이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장면에서 다가올 불행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여기는 감독의 의도와 별개로 시청자의 해석이 들어가야 하는 부분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차무식이 자신의 식구라고 여기는 이들을 식사자리로 초대했다는 것은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기 위해 단합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차무식은 쫓기고 있고 생명의 위기를 느끼고 있었기에 동료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후배라고 믿는 사람들을 자신의 식사자리로 초청한 것입니다. 적어도 설정은 그렇습니다. 지난날들의 섭섭함들을 위로하고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기 위한 이 자리는 차무식에게는 새로운 출발을 위한 자리였을지는 몰라도 이 드라마의 전체 시퀀스에선 최후의 결말이 되고 맙니다.
차무식 자신은 원하지 않은 일이었겠지만 이 엔딩은 한 시대의 마감과 새로운 출발의 경계가 되고 맙니다. 이들은 비록 불법적인 일을 하는 무뢰한들이지만 한 가족과도 같은 모습으로 살아왔습니다. 이들의 끈끈한 관계는 차무식이라는 보스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부하들의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뒤를 봐주고 위기를 해결해 주는 절대적인 보스의 모습은 마치 전형적인 아버지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드라마에서 차무식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동생들은 진심으로 돌보아 줍니다. 이런 모습은 가족의 모든 생계를 혼자 책임지셨던 우리들의 아버지들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차무식의 조직은 가족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신이 책임져야 했던 부하들 또한 자신의 가족과도 같이 그를 믿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식사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마지막 식사에 대한 이야기는 ‘최후의 만찬’이라고 하는 종교적이지만 모든 인류에게 기억되는 원형적 이미지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마지막 식사에 자신의 가장 가까운 12제자를 초청해 발을 씻겨주고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주는 성경의 기사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 공동체를 책임지는 보스와도 같은 모습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그 보스를 배신하는 밀고자가 존재하는 것도 또한 이 원형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차무식이 자신의 부하들을 얼마나 믿었는지는 드라마의 결말 부분에서 정팔에 의해 피살당하면서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믿는 만큼 부하들도 자신을 따라 줄 거라는 순진한 그의 생각은 비참한 최후를 불러들입니다. 카지노에서 이러한 마지막 결말 부분의 유사한 설정은 예수의 최후의 만찬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떠올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차무식이 범죄자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면서 그를 응원하고 공감했던 이유는 그가 하는 일의 불법성을 판단해서가 아니라 그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모습에서였을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지 않고 많은 파이를 만들어서 부하들에게도 돌려주려고 노력하는 모습, 그들의 곤란을 모른척하지 않고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해결해 주는 모습에서 진정한 지도자의 원형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이 모습을 기독교적으로 해석해 본다면 당연히 우리는 종교적 스승의 모형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의 인간을 대하는 태도에서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본다면 차무식의 최후의 만찬은 자신의 모든 사역을 마무리하고, 자신의 가장 믿었던 부하에게 배신을 당하며, 자신의 유산들을 그들에게 맡겨주는 자리가 됩니다. 차무식에게서 나타난 이러한 오래된 비극적인 이야기의 원형이 우리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많은 시청자들도 이 이야기가 이렇게 끝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즌3가 제작이 된다면 차무식은 시즌2의 결말에 의해서 등장할 수 없게 됩니다.
차무식이 없는 카지노를 생각할 수 없다면, 우리는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만들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차무식이 마치 예수와 같이 부활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우리는 인기 있는 드라마들에서 주인공들이 다시 살아나는 장면들을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그렇기에 가능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부활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차무식은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은 것처럼 연출을 한 것입니다. 왜 그래야 할까요? 그 이유는 차무식이 처한 상황에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는 빅보스 다니엘의 노여움을 사서 쫓기는 몸이 되었습니다. 또 형사 오승훈의 집요한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김소정과 친구 필립의 죽음에 분노를 느끼는 상구의 배신도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상구와 오승훈이 나눈 대화를 듣고 차무식이 의심하는 장면만 떠올려도 차무식은 상구의 배신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리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차무식은 정팔의 큰 위기들을 막아준 사람입니다. 차무식은 정팔이 어떤 그릇의 사람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마지막에 그에게 비밀금고 심부름을 시키는 것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상식적으로도 정팔이 차무식의 카리스마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스토리전개는 어렵습니다.
결국 우리는 차무식이 이 모든 최후의 만찬을 계획하고 적들을 불러 모아 한번에 없애버리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존과 배신자 상구와 경찰들을 한 곳에 불러 모아 그들끼리 싸우게 하고 자신은 정팔이 미리 준비한 공포탄에 죽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모든 적들의 추적을 따돌리고 잠적할 수 있는 거대한 마스터플랜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에피소드 부분에서의 정팔의 등장조차도 차무식을 대리하는 바지사장으로 행세하는 정팔이의 모습으로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오승훈이 기자에게 차무식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라고 해서 그 후일담을 감춰둔 이유까지도 말입니다.
저의 이런 해석은 드라마 속 최후의 만찬의 종교적 이미지들을 떠올리다가 "그렇다면 차무식의 부활은 어떻게 연출해야 될까?"라는 개인적 상상에서 출발한 것일 뿐입니다. 이상은 어떻게 되든 시즌3에서도 차무식의 모습을 간절히 보고 싶은 시청자의 개인적 바람이었습니다.
시즌3에서는 차무식이 어딘가에서 자신의 패밀리들을 이끌고 새로운 일들을 도모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때는 차무식이 조금 더 좋은 사업들을 했으면 더 좋겠습니다.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