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카프카<돌연한 출발>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

사이존재로서의 카프카

by CaleB


우리에게는 마치 불행처럼 다가오는 책들이 필요해,,,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카프카의 <변신>을 처음 읽은 사람들은 그 내용의 기괴함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함의는 결코 기괴하지 않은 우리네 삶의 실존에 관한 것이다. 필자가 카프카에 매료되었던 것은 <성>을 읽으면서였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상황 속에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성에 내던져진 주인공 K의 처지가 바로 나의 모습이고 현대인의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였다.



끝없는 절차와 기다림 속에 자신을 채용했다는 클람이라는 사람은 마지막까지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실루엣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수많은 규칙들과 이유들은 진실을 가리는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자를 숨막히게 하는 것 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는 수많은 장치들이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규칙에 의해서 이유도 모른 채 순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소송>에서는 주인공이 영문도 모르고 체포되어 유죄가 되어 죽음을 맞는다.


우리 인류가 쌓아 올린 문명들은 과연 인간을 성장하게 했을까? 인류라는 종이 대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던 시대에는 적어도 우리들은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면서 살았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문명은 인류를 강하게 했지만 그 속에서 순응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자들에게는 본연의 자기를 내려놓고 규칙에 순응하는 생활을 해야만 하는 세계인 것이다. 카프카에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이 내던져진 상황과 환경 속에서 이유도 모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미로를 헤맨다. 이런 점에서 카프카가 실존적 작가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으며 그가 삶의 진정한 의미를 탐구하며 고뇌했던 사람임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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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탄생은 체코의 기독교와 유대교가 혼재하는 가정이었다. 출생과 같이 카프카의 작품의 매력은 모호함이다. 이것인지 저것인지 분명하지 않고 이유도 설명할 수 없다. 질문은 금기이다. 여기에서 불안과 초조, 혼돈, 변형이 일어난다. 이런 불완전성과 중간성을 지닌 인간을 '사이존재'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느 것도 분명하지 않은 세계에서 우리는 고통을 겪을 수도 있지만 그 중간과 사이에서 의미를 찾아내야만 한다. 불행히도 카프카와 작품의 주인공들은 실패하고 쓰러졌다. 하지만 우리는 해내야 한다.


<돌연한 출발>은 카프카의 단편과 습작들을 모아놓은 작품집이다. 여기에는 카프카의 작품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볼 수 있게 하는 글들이 꽤 있다. 백미는 시작 부분에 소개한 <오스카 폴락에게 보낸 편지>의 글귀이다. 카프카는 '책을 읽는 것은 고통과 불행'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게다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같아야 한다고 말한다. 행복하기 보다 불행과 같은 책들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책은 우리의 안락한 현실 만족을 넘어서서 삶의 진실, 세계의 비밀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당신은 어떤 책을 읽고 있는가? 행복한 책인가? 불행한 책인가? <법 앞에서>의 문지기는 주인공의 평생 동안 문을 막고 길을 열어주지 않는다. 이 문지기가 문을 걸어 잠그기 전에 당신은 그를 쓰러뜨리고 문 안쪽의 장면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SUMMARY


나는 우리를 깨물고 찌르는, 다만 그런 책들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 우리가 읽는 책이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쳐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책을 읽어야 할까? 네가 편지에 쓰고 있는 것처럼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맙소사, 만약 우리에게 책이 아예 없다 해도, 우리는 행복할 수는 있을 거야. 그리고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그런 책들은, 필요하다면 우리 모두 각자 쓸 수도 있을 거야, 우리에게는 마치 불행처럼 다가오는 책들이 필요해, 우리를 매우 고통스럽게 하는 불행, 우리가 자기 자신보다 더 좋아한 어떤 이의 죽음 같은 불행, 모두가 사라져서 아무도 없는 숲속에 홀로 남겨진 불행, 말하자면 스스로 삶을 끝내야 할 것 같은 불행 말이야.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나는 그렇다고 생각해.

<오스카 폴락에게 보낸 편지, 1904> 33


법法앞에 문지기 한 사람이 서 있다. 시골 사람 하나가 와서 문지기에게 법으로 들어갈게 해 달라고 청한다. 그러나 문지기는, 지금은 입장을 허락할 수 없노라고 말한다. 그 사람은 이리저리 생각해 보다가 그렇다면 나중에는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럴 수는 있지만." 하고 문지가 말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안 된다오." ...

문지기는 이따금씩 간단한 질문을 하는데, 고향이니 그 밖의 여러 가지를 묻지만, 그것은 높은 양반들이 으레 던지곤 하는 관심 없는 질문들이고, 끝에 가서는 언제나 다시금 아직 들여보내 줄 수 없다고 한다. 이번 여행을 위해 이것저것 많이 챙겨 온 그 사람은 문지기를 매수하기 위해 제아무리 값진 것일지라도 지니고 있던 모든 것을 써버린다. 문지기는 주는 대로 다 받으면서도 "받아두기는 하지만, 그건 다 당신이 뭔가 해 볼 수 있는 일을 다 해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받아 주는 거요."라고 말한다...

"여기서는 다른 그 누구도 입장 허가를 받을 수 없었어, 이 입구는 오직 당신만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나는 이제 가서 문을 닫겠소." <법 앞에서>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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