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국이란 무엇인가> 한국의 미래와 상상력

새로운 언어를 구축해야하는 시대

by CaleB
고통스럽더라도 기꺼이 그 고통을 감내하고 싶어지는 새로운 분투,
그 분투를 독려할 새로운 비전이 필요한 게 아닐까.



Insight

지금은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필요한 시대이다. 사회적 갈등이 극심하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함께 공유하고 인정할 만한 가치가 없다는 증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통합이란 그 구성원 전체가 인정하고 받아들일만한 가치관이나 신념이 존재할 때 가능하다. 물론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전체주의이기에 문제가 있겠지만 하나의 큰 흐름을 이야기하는 것뿐이다.


책 <한국이란 무엇인가>는 이런 지점에서 중요한 포인트를 잘 지적한 책이라고 본다. 저자는 비상계엄으로 터져 나온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한국'이란 도대체 무엇인지를 사색한다. 한국과 한국인의 과거, 현재, 미래를 이야기한다. 저자가 지적하는 것은 무엇보다 한국을 설명하는 언어의 빈곤함이다. 이 빈곤함이란 말은 결국 상상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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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설명하는 과거의 여러 설명들은 오래된 문법이거나 외부로부터 가져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식민지 경험이 남긴 외부적 개념, 냉전과 산업화 시대의 낡은 문법, 민주화 이후 굳어진 도식적 이념이다. 하지만 한국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고 그것을 설명하는 방법은 시대에 따라 바뀌어 왔다. 그러므로 오늘날 한국을 설명하는 언어가 필요하고 그것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인식이라고 보인다.


홍익인간과 웅녀의 이야기는 한국인의 원형에 관한 신화이다. 신화는 진실의 상징화이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 곰이 사람으로 태어나는 과정을 인내한 이야기는 한국인이 살아온 과정을 잘 설명한 부분이다. 불교와 유교의 시대를 거쳐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정을 인내하며 살아온 우리들은 동전의 양면인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엮어야 할 하나의 테제를 구성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지혜로운 이들이 계엄과 같은 무지한 방법이 아니라 정교하고도 꾸준한 노력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은 혁명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혁명을 끝내야 하는지에 대한 정의와 합의가 부족하다. 결국 곰처럼 꾸준한 인내로 모든 공동체가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하는 것, 그것이 지금 한국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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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이사야43:19) 이스라엘 민족에게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관념은 그 시대를 반영했습니다. 그러나 그 비전만은 확고합니다. 지금은 이 시대에 대한 통찰과 함께 방향을 제시한 예언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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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과거-

나는 무엇보다 한국을 이해해온 언어의 실패라고 생각한다. 계엄 시도 이후 많은 이가 앞다투어 미래를 위한 제언을 내놓았다. ... 21세기의 한국은 정치의 실패이자, 헌정의 실패이자, 법치의 실패이자,,,,한국을 이해해온 방식의 실패이기도 하다. 안이한 언어와 게으른 상상력에 의존해온 기존 이해 방식의 실패다. 이제 한국을 다시 생각할 때가 왔다. 한국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다시 숙고할 때가 왔다. 한국을 이해할 언어를 새롭게 발명할 때가 왔다. 13-15


환인의 서자 환웅이 하늘 아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욕망하였다. 아버지가 자식의 뜻을 알고서 삼위태백 지역을 내려다보니, '홍익인간' 할 만하였다. 이처럼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겠다는 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하늘 신의 목소리다... 이처럼 한국의 정체성에는 아주 일찍부터 이주, 식민, 제국의 시선이 깊게 드리워져 있다. 25


오해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단군신화의 인간관은 홍익인간이 아니다. 홍익인간은 좋은 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 정도의 일반적인 언술에 가깝다. 단군신화의 진짜 인간관은 웅녀에게 응축되어 있다. 바로 문명화를 위해 기꺼이 고난을 감수하는 인간, 미래의 새로운 자신을 위해 오랫동안 인내할 수 있는 인간, 변화를 위해 자기 통제를 해내는 인간이 바로 그것이다. 32


현재-

1980년대 한국의 문민화와 민주화는 광주 민주 항쟁의 희생을 정치적 동력 삼아 전개되었다. 그 이후 약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쿠데타 세력과 마찬가지로 민주화 세력마저도 심미적, 도덕적,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21세기 한국 정치가 멈추어선 자리다. 140


2016년 촛불시위는 정말 '혁명'이었을까? 그것이 정말 혁명이었다면, 촛불 혁명이 약속한 세상은 정녕 도래했을까? 혁명은 일어났으나 혁명이 약속한 세상이 오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외친다. 혁명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혁명을 어떻게 끝내야 하는지를 모르기에, 사람들은 그렇게 외칠 뿐이라고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는 말한 적이 있다. 157


미래-

...그렇게 사는 게 합리적이었기에, 그렇게 사는 한국인이 탄생했고, 그런 한국인이 다수가 되었을 때 그런 한국 사회가 출현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지금과 다르게 사는 게 합리적이라고 느껴질 때 비로소 미래의 한국인이 출현하고, 그런 한국인이 다수가 될 때 한국의 새로운 미래가 출현하겠지. 그렇다면 개혁가는 강제나 계몽보다는 합리성의 조건을 바꾸는 데 더 부심해야 하지 않을까. 내게 돈이 많다면 강제나 계몽보다는 합리성을 재정의 하는 데 쓰겠다. 지금과 달리 행동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느껴지게끔 삶의 조건을 조정하는 데 쓰겠다. 248


학문적 자유란 발전이냐 정체냐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냐 전근대냐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규정된 선택지 자체를 내팽개치는 것이다..... 아도르노는 주어진 선택지나 이야기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편끼리 놀아나지 않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패거리 의식은 심각한 자해행위다. 자기 심장에 박힌 치명적인 칼이다. 253,254


뜬금없는 계엄 시도를 통해 공동체의 밥상을 엎은 지금, 한국의 보수 우익에게도 마침내 자살의 기회가 왔다. 어떤 마무리를 할 것인가,,, 그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자신을 버릴 수 있을까. 중병에 걸린 자신을 버림으로써 공동체를 재건할 수 있을까. 277.278


에필로그-

고통이란 친구가 위험하다고 해서 쾌락만 벗하면 결국 권태라는 또 다른 위험한 친구가 찾아온다... 한국이라는 사회가 시시각각으로 분해되어가는 오늘날, 고통스럽더라도 기꺼이 그 고통을 감내하고 싶어지는 새로운 분투, 그 분투를 독려할 새로운 비전이 필요한 게 아닐까. 그 분투 속에서 한국은 기꺼이 살고 싶은 곳으로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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