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적으로 영화보기
삶은 모든 선택의 결과야,
네 소명이고 네 운명이지
미션임파서블 시리즈의 최종화가 될 수도 있는 <미션임파서블8>이 개봉하였습니다. 이번 편은 지난 모든 시리즈 중 최고의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3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의 영화를 2번이나 감상할 정도였습니다.
시리즈의 첫 회에서 앳된 얼굴의 미남 톰 크루즈는 어느덧 중년(우리 나이로 노년)의 배우가 되었습니다. 그의 미션임파서블 시리즈 영화와 함께 나이 드신 분들은 "몇 탄 때는 내가 뭐 했더라?" 하며 추억을 끄집어내시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용기
이번 작품이 시리즈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인터뷰도 있었지만 영화의 내용으로 봐서는 후속 편이 나와도 전혀 무리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마지막 엔딩장면과 루터의 유언 때문입니다. 우선 루터는 유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은 아직 너를 필요로 해". 또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레이스가 에단에게 드라이브를 넘겨주고 친구들도 군중 속으로 사라집니다. 얼마든지 이야기는 다시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톰 크루즈의 <탑건>과 <스피드>도 후속편이 준비 중이라고 하니 미션 시리즈가 꼭 마지막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미션임파서블>의 팬으로서 후속편이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톰 크루즈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말입니다.
그들 앞에 닥친 위협은
이번 영화가 이렇게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단순히 액션 장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주인공 에단 헌트가 보여준 자신을 내던져 지구를 구하려는 끝없는 도전과 희생정신 때문이었습니다. 잠수함에 들어가는 장면이나 비행기에 매달린 장면에서도 그는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습니다. 반드시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목표의식만 있습니다.
소중한 이들을 위해 어디든 간다
에단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이유는 이렇습니다.
"소중한 이들과 얼굴도 모르는 이들을 위해"
즉 모든 인류와 살아있는 생명을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불굴의 의지와 희생정신입니다. 다른 영화에서도 이런 정신으로 무장한 히어로들이 출연하는 경우가 많지만 에단 헌트의 말은 진지한 고백처럼 우리에게 와닿습니다.
제 생각에 이것은 톰 크루즈가 시리즈를 거듭하며 우리와 오랫동안 감성적으로 연결된 친근함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배우에게서 느끼는 친근함과 신뢰감이 영화에서도 감정이입에 중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루터의 에단을 향한 신뢰
제가 영화를 보며 생각했던 부분은 역시 신학적 해석이었습니다. 영화신학자 로버트 존스톤Robert K. Johnston은 영적인 영화에는 그리스도를 닮은 주인공이 등장한다고 말합니다. 세상을 구하는 영웅의 이야기, 자신을 희생해서 타인을 살리는 주인공 에단의 모습은 이미 '그리스도를 닮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적인 영화의 도식 그대로입니다.
비록 액션 첩보영화이지만 에단 헌트가 보여준 것은 인류를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이것은 초능력을 가진 마블류의 히어로와 다르게 우리에게 공감을 줍니다. 제목부터가 <파이널 레코닝>(최후의 심판)인 이 영화에는 성경적 상징으로 볼 만한 장치와 상징들이 많이 등장하였습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며
사탄의 정체
우선 '엔티티'라는 인공지능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엔티티는 세상의 모든 가상세계를 통제할 수 있게 진화된 악성 인공지능으로 인류를 파멸시키려 합니다. 엔티티는 엄청난 연산 능력으로 인간의 모든 행동과 생각까지 예상하고 통제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가짜 뉴스를 양산해 사람들의 생각을 오염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사탄의 세력이 인간을 타락시키고 멸망시키는 과정과도 유사합니다. 이제 사탄은 공중에서 자리를 옮겨 가상세계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가상세계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습니다. 영적 싸움은 이제 가상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십자가에 답이 있다
사탄의 시험
그런데 엔티티와 에단이 만나는 장면에서 엔티티는 그리스도를 시험하는 마귀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엔티티는 모든 세상의 권력을 자신이 가지고 있으며 자신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며 에단의 정신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이는 마귀가 자신에게 경배하면 세상권세를 주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시험이 에단에게 3번 다가오는 것도 의미 있습니다. 처음에는 가브리엘, 두 번째는 엔티티, 세 번째는 가장 가까운 그레이스에게서였습니다. 물론 에단은 이런 시험들을 단호히 물리칩니다.
구원의 십자가
그런데 엔티티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포드코바 단말기'를 여는 열쇠가 필요했습니다. 여기에서 '십자가 모양의 열쇠'가 등장합니다. 열쇠 모양이 왜 굳이 '십자가' 모양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오래도록 서양문화와 종교의 중요한 상징이었기 때문에 채택되었을 것입니다. 이 십자가 열쇠로만 인류 구원의 장비를 열 수 있다는 점은 '십자가로만 구원받는 은혜'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소중한 이들을 위해
죽으심과 부활
또 더 나아가서 이 십자가를 가지고 죽음의 심해에 들어가는 것은 주인공 에단 헌트의 몫입니다. 에단은 그곳에서 자신이 죽을 수도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 열쇠를 가지고 그곳에 기꺼이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임무를 완수한 후 죽음 직전까지 가게 됩니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며칠 후 감압기에서 깨어납니다. 이 또한 고래에게 삼켜진 요나의 상징입니다. 게다가 '골고다와 십자가 그리고 부활'의 완벽한 도식이기도 합니다.
어두운 심해는 고난을 상징한다
믿음이 필요하다
미국의 대통령은 엔티티에 맞서기 위해 핵을 발사해야 하는 상황에 몰립니다. 이는 지구의 종말을 뜻합니다. 이때 정부 각료는 에단 헌트를 불러야 한다고 말합니다.
"세상을 멸망에서 구하기 위해서는 그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를 믿어야만 합니다. IMF의 동료들은 에단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에단의 능력과 정직함, 희생정신을 믿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그를 믿지 않지만 그는 언제나 옳은 일을 했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
에단 헌트라는 인물의 시작도 그렇습니다. 그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을 선고받은 인물입니다. 하지만 사형 대신에 IMF를 위해 일하는 것으로 사면됩니다. IMF는 Impossible Mission Force의 약자로 불가능한 임무를 수행하는 조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 없는 자로서 세상의 모든 죄를 지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인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이사야53:3)
이외에도 성경적 상징들을 많이 찾아낼 수 있지만 중요한 것만 정리했습니다. 이렇게 에단 헌트의 서사와 인류의 위기라는 설정은 사실상 성경적인 세계관과 흡사합니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분들은 많이 계십니다. 이들 모두가 보이지 않는 IMF라고 생각합니다.
죽음의 심연 속에서
루터는 이런 유언을 남깁니다.
"... 우리 내면의 선함은 남을 위해 베푸는 우리의 선행으로 드러나. 우리는 같은 운명과 같은 미래를 공유해. 그리고 미래는 우리의 무한한 선택이 모여 이루는 결과지. 우리가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러한 미래는 친절, 신뢰, 상호 이해를 기반으로 만들어져. 우리는 보이지 않는 빛을 향해 의심 없이 나아가겠지,..."
루터의 유언은 인류가 나아가야 할 상호 신뢰의 세계를 비전으로 보여줍니다.
자신의 소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우리의 선택의 결과들이 모인 총합입니다. 우리는 어떤 선택들을 하고 있을까요? 선을 쌓은 사람은 천국에 보화를 쌓고 악을 쌓은 사람은 훗날 그것의 결과를 마주할 것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에단은 엔티티를 담은 드라이브를 가지고 사라집니다. 성경에서도 악은 봉인되지만 마지막 날에 다시 일어나 최후의 전쟁을 벌입니다. 과연 엔티티도 다시 봉인을 뚫고 나타날지도 궁금합니다.
삶을 향한 질주
에단 헌트의 달리기 장면은 언제 봐도 멋지고 감동적입니다. 그의 달리기가 계속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장 8,9,10절)
*톰 크루즈는 사이언톨로지와 관련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신학적 해석은 감상자의 자유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