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율법의 사이에서
진실은 회색지대에 있다
최근 인공지능이 각광받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에 의한 유토피아를 이야기하지만 반대로 인공지능이 가져올 디스토피아의 위험성에 대한 두려움도 커져가고 있습니다. 이런 두려움의 대부분은 인공지능이 우리의 직업을 빼앗고 자유를 빼앗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출발합니다. 산업혁명 시기에 기계에 일자리를 빼앗긴 노동자들이 러다이트운동(Luddite)으로 반발한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실제로 지금 많은 일자리가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대체되기 시작하는 추세입니다. 이런 일자리의 대부분은 단순 작업이나 어떤 데이터와 추론의 순서가 정해져 있어 일정한 결과를 낼 수 있는 작업들입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고도화되면서 보다 복잡한 작업과 사고를 필요로 하는 일도 인공지능이 효과적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의사의 진료나 치료같은 작업이나 법정의 재판에 관한 일들입니다. 이미 회계사의 업무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법무 관련 일들도 법적인 절차와 판단을 법과 판례를 통해 진행할 수 있다는 생각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같이 법원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경우 차라리 인공지능으로 판결을 받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의견조차 있습니다.
영화 <노 머시>는 인공지능 재판시스템을 다룬 영화입니다. 가까운 미래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늘어나는 강력 범죄 건수로 인하여 신속한 사법절차를 위한 시스템을 개발합니다. AI가 증거 수집, 판결, 사형까지 모두 처리하는 AI 법정 시스템 '머시'(Mercy)입니다. 머시 시스템은 범죄 현장, 용의자, 증인들의 CCTV, 스마트워치, SNS 등 모든 디지털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용의자가 진범일 가능성을 측정합니다. 고도의 인공지능이기에 신속하게 진범 확률을 측정하고 90분 이내에 사형에 처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크리스 레이븐 형사는 아내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머시에 오르게 됩니다. 영화는 재판을 받는 90분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며 누명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추적하는데 속도감과 반전의 재미가 있습니다. 머시 시스템의 판결을 보면 사실 틀린 것이 없습니다. 명확히 드러난 증거만으로는 크리스가 진범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머시는 오직 증거만을 판단합니다. 거기에는 '왜'?라는 깊이 있는 물음이나 공감이 없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과연 완벽한 정의란 것이 존재할까?"라는 것입니다. 크리스는 머시가 제시한 증거가 일치함을 인정하면서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이런일이 크리스형사에게 일어난 이유는 사법절차의 집행과정에서 피고인의 억울함을 무시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사정을 머시가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모든 일의 시작과 결말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크리스는 머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진실은 회색 지대에 있다". 사실 많은 사건사고의 내면을 보면 언론 등에서 알려준 것과는 다른 많은 사연이 존재합니다. 인간 판사는 때로는 이런 회색 지대를 주목하고 참고하여 판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계인 머시는 그런 것을 보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 사건을 추적하는 인간 크리스와 기계 머시의 차이입니다.
또 한 가지는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추적하는 장면에서의 소름입니다. 머시는 우리의 통화나 SNS 같은 것들을 통해서도 우리를 추적하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우리이 모든 삶이 디지털화된다는 뜻입니다. 디지털은 1과 0으로 이루어진 세계입니다. 여기에 중간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과 삶은 회색의 중간지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더 많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삶을 디지털화할 때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두렵기도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여호와는 중심을 보시느니라”(사무엘상 16:7) 하나님은 일어난 일의 결과보다 그 동기와 이유를 보신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이것은 머시 같은 인공지능의 판단이 되지 못할 부분입니다. 만약에 머시와 같은 시스템이 우리의 행동들을 판단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마치 하나님의 법정 앞에 선 것처럼 모든 일들이 다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점은 기계는 그 결과만 판단하겠지만 하나님은 그 동기를 볼 것이라는 점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가지는 연민과 이해의 감정도 기계는 가질 수 없으리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로마서3:20)
인공지능판사는 일종의 율법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율법안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는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