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넘버원> 일상에 주어진 성찬의 선물

Eucharist의 신학

by CaleB
팔자는 변한다. 알제?

김태용 감독의 영화 <넘버원>(Number One)은 일본 소설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328번 남았습니다』를 원작으로 한 판타지 드라마입니다. 영화의 이야기는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아이의 이미지를 모티브로 합니다. 어린 시절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매일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자라났습니다. 그러다 엄마는 언제까지 나에게 밥을 해주실까? 엄마는 계속 나이 들어 늙고 나는 커가는데 나는 엄마를 먹고 자라는 건가?라는 질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장성해서도 느끼는 부모님은 늙으신 모습 속에서 느끼는 안쓰러움과 미안함의 감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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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런 우리의 숨겨진 감정을 숫자로 표시합니다. 어느 날부터 주인공 하민의 눈에는 밥 먹을 때마다 숫자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을 때마다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식사를 거부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커서는 어머니와 따로 살기로 합니다. 그러던 중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게 되고 어머니와의 만남을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숫자를 이기는 방법을 찾아낸다는 스토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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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식의 사랑을 그린 이 판타지 드라마는 따뜻하고 훈훈한 감동을 줍니다. 누구나 공감할 만한 엄마와 아들의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이 영화에서는 밥을 먹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주인공 배우 최우식이 몇 번이나 밥을 먹었는지도 궁금할 지경입니다. 필자는 이 밥상 장면을 바라보면서 성만찬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신학적인 해석을 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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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영화에서의 숫자는 카이로스(Kairos)와 크로노스(Chronos)의 충돌을 보여줍니다. 영화 속 주인공 하민은 엄마의 집밥을 먹을 때마다 줄어드는 숫자를 봅니다. 이는 두 가지 시간 개념의 충돌을 보여줍니다. 하나는 크로노스로서 물리적 시간을 말합니다. 하나씩 줄어드는 숫자는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죽음을 향해 가는 물리적인 존재임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하민에게 숫자는 카이로스(의미적 시간)로서 이해됩니다. 하민이 엄마의 밥을 거부한다고 해서 엄마가 더 오래 살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민은 엄마를 시간 속에서 놓치지 않기로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흘러가는 시간 속에 엄마를 놓아보내지 않으려는 몸부림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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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성찬 (Eucharist)

그런 하민이 숫자를 보게 됨으로써, 단순히 '밥을 먹는 행위'는 '엄마와 함께하는 마지막 순간'이라는 특별한 의미의 시간으로 변합니다. 신학적으로 이는 찰나의 순간에서 영원을 발견하는 '거룩한 시간'의 회복을 상징합니다. 기독교에서 성찬은 예수의 살과 피를 먹으며 그와 하나가 되는 의식입니다. 영화 속 '엄마의 집밥'은 이 성찬의 일상적 변용이라 볼 수 있습니다. 엄마 은실이 차려내는 밥상은 자신의 생명과 시간을 깎아 자녀를 먹이는 숭고한 희생의 결과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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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민이 밥을 먹을 때마다 숫자가 줄어드는 것은, 엄마의 생명이 하민의 생명으로 전이되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요한복음 6:56)"라는 말씀 속에서 예수그리스도가 자신의 생명을 인류를 위해 내어주는 모습의 원형이 바로 우리의 부모라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는 하나님의 모습은 바로 자녀를 위해 생명을 내어주는 부모에게서 유래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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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행히도 하민은 숫자 하나를 남기고 자각을 합니다. 용기는 운명을 바꿉니다. 숫자가 0이 되면 죽는다는 설정은 결정론적 운명처럼 보이지만, 하민의 행동은 운명론을 넘어선 '자유의지'를 나타냅니다. 처음에 하민은 숫자를 줄이지 않기 위해 밥을 피하지만(운명으로부터의 도망), 결국 남은 횟수를 어떻게 '가치 있게' 보낼 것인가를 선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생각지 못한 기적 같은 선물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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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하민이 깨닫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관계'라는 선물은 소유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아름답게 만들어가느냐의 문제라는 것을 알고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날마다의 밥상이 바로 기적임을 깨닫는다면 이 영화를 볼만한 가치는 충분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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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26:26)

성찬은 나눔이며 생명의 전이입니다. 날마다의 식탁은 바로 부모님의 사랑이며 창조주의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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