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이전에 존재하는 선물
내일의 너도 다시 사랑할거야
교회의 한 청년이 이 영화를 보고 감동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차에 OTT에 올라온 것을 발견하고 감상하게 된 영화입니다. 영화의 스토리는 특별한 경우에서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러브스토리를 다룬 영화에서 불치의 병이나 기억상실증을 소재로 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불가항력적으로 이별을 경험해야 하는 상황때문입니다. 그런 커플들이 아무탈 없이 함께 살게 되었다면 끝까지 그런 사랑을 간직하고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인생에서 누구나 이별을 한번쯤은 경험해 봅니다. 그런 이유때문에 이별의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추억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보편적인 소재임에 틀림없습니다.
<오세이사>역시 불치의 병을 앓는 두 주인공이 등장하기에 이런 소재의 영화중에서도 아주 극단적인 경우입니다. 매일마다 기억을 잃어버리는 서윤과 시한부인생을 살고 있는 재원의 만남이 그것입니다. 영화의 서두에서는 서윤의 사연이 부각됩니다. 서윤은 잠을 자고 일어나면 기억을 모두 잃기 때문에 모든 것을 메모해두어야만 하는, 남자친구를 사귀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비극적인 조건에 놓여 있 니다.
이런 서윤앞에 재원이라는 친구가 생깁니다. 재원은 서윤에게 최선을 다하지만 서윤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윤은 재원을 기억하기 위해 매일마다 재원에 대한 이야기를 메모해둡니다. 재원 또한 서윤을 사랑하기 위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서윤을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하지만 재원은 불치의 병으로 인해 끝까지 서윤을 지켜주지 못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흔적을 없애버립니다.
비극적인 이야기이지만 남주인공의 희생적인 사랑은 특히 여성들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오는 듯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속에서 자신을 희생해 인류를 구원한 이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은혜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과 완벽히 일치합니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기억하지 못하면 그 일은 없었던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뉴스에서 국회에 나온 증인들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는 말로 회피하는 경우를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부러 애써 기억을 되살리지 않더라도 어떤 사건은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우리의 삶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억이 있든 없든 한번 일어난 일은 실재로 현존하는 것입니다.
서윤은 완벽히 지워져 버린 재원에 대한 기억속에서도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것은 재원으로부터 받은 사랑이 이미 서윤안에 내재화된 흔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매우 유사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잊고 지내더라도 우리는 이미 그 은혜를 통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던 알지 못하던 하나님의 사랑은 인식이전에 존재하는 선물입니다.
이 모습은 자기희생적 사랑의 전형적인 구조를 보여줍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을 내어주되 드러나지 않는 사랑, 곧 십자가적 사랑의 은유로 읽을 수 있습니다. 결국 <오세이사> 기억이나 지식의 유무와 관계없이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총안에 살아가는 존재라는 주제에 대한 강한 유비를 가진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상실 속에서 희망을, 망각 속에서 기억을, 유한 속에서 영원을 발견하는 사이존재의 모순적 현실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불완전하지만 그럼에도 사랑안에서 완전해집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5:8)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전에,기억하기 전에, 심지어 깨닫지 못할 때에도 은혜는 이미 우리를 향해 사건으로 일어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