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모더니즘의 관점으로 읽기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첫 두 자유- 이동할 자유와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자유-는 흔히 세 번째 자유, 더 창조적인 자유로 나아가는 일종의 보조 사다리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 사회에 관한 뭔가가 정말로 아주 심오하게 변화했음은 분명하다.
모든 것의 새벽 - 데이비드 그레이버,데이비드 웬그로. 2025, 김영사
Insight
큰 기대를 가지고 읽었던 벽돌책이었다. 이 책이 이렇게 엄청난 분량이 된 것은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여러 자료들을 비교적 자세하게 많은 분량을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일일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는 내용들이지만 저자가 책에 들인 노력을 그만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책의 광고와 같이 획기적인 저작이라기보다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인류사에 대한 상식과 틀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된 이유는 저자가 어떤 대안적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이해를 의심하고 다시 재고하게 하려는 데에 목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의 많은 역사책은 인류 문명을 다음과 같은 단선적 발전 이야기로 설명한다. 수렵채집 → 농업 → 도시 → 국가 → 불평등의 도식이다. 하지만 《모든 것의 새벽》은 이 익숙한 서사를 정면으로 뒤집는다. 인류는 한 방향으로 발전해 온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 실험을 반복해 왔다는 것이다.
즉, 인간은 단순히 “진화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사회를 설계하고 바꾸는 존재이다. 이 책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 온 여러 전제를 질문한다. "농업이 시작되면 반드시 계급이 생기는가?", "도시가 만들어지면 반드시 왕과 국가가 생기는가?",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어서 통제가 필요한가?"가 그것이다.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인류 역사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사회 형태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인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존재였다. 예를 들어 "농업을 하면서도 평등한 사회", "도시를 이루면서도 왕이 없는 사회", "계절마다 정치 체제가 바뀌는 사회" 등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이다.
근대 이후 인간 본성을 설명하는 두 가지 대표적 서사가 있다.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고 폭력적이다 → 국가가 필요하다 (토마스 홉스)
인간은 원래 선하지만 문명이 타락시켰다 (장 자크 루소)
저자에 따르면 이 두 이야기는 모두 신화에 가깝다. 실제 인류학 자료를 보면 인간 사회는 훨씬 복잡하고 창의적이었다.
이 책이 던지는 근본 질문은 "우리는 지금의 사회를 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가?" 이다. 저자는 인간 자유의 핵심을 세 가지 능력으로 설명한다.
떠날 자유
명령을 거부할 자유
새로운 사회를 만들 자유
문제는 현대 사회가 이 자유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라 현대 문명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기도 하다. 물론 일부 사례가 과도하게 일반화되었다는 점은 있지만 인류 역사가 ‘필연’의 이야기라기보다 하나의 ‘가능성’의 이야기였음을 보여주는 책이라 볼 수 있다.
Metamodernism 메타모더니즘의 관점에서 읽기
메타모더니즘(Metamodernism)의 관점에서 읽으면 이 책의 의미가 조금 더 분명해진다. 메타모더니즘은 근대(modernism)와 탈근대(postmodernism) 사이에서 진동(oscillation)하는 사유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하나의 절대적 진리나 거대한 서사를 믿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해체하고 냉소하는 데 머물지도 않는다. 대신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시 시도하는 태도를 취한다. 인류 역사는 하나의 직선이 아니라 수많은 실험과 변형의 역사인것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근대의 거대 서사를 해체한다는 점에서 탈근대적인 성격을 갖게 된다. 즉, 인간 사회는 필연적으로 현재의 모습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다른 길들도 언제나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탈근대적 해체를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는 메타모던적 태도를 보여준다. 메타모더니즘은 역사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근대: 역사는 진보한다
탈근대: 역사는 허구다
메타모던: 역사는 가능성의 공간이다
<모든 것의 새벽>역시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인류 역사는 단 하나의 필연적 경로가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실험들의 축적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사회 역시 유일한 형태가 아니라 하나의 선택일 뿐이게 된다.현실을 비판하면서도 더 나은 가능성을 상상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Spirit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창 1:27)
이 책을 신학적 관점에서 읽는다면 흥미로운 지점이 생긴다. 인류역사를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으로 바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는 점이다. 어떤 의미에서창조성은 인간 존재의 본질이다. 이 책이 강조하는 인간의 특징도 비슷하다. 인간은 제도를 만들고, 공동체를 설계하고, 새로운 삶을 상상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 사회가 더 정의롭고 더 자유로운 방향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믿음은기독교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과 연결될 수 있다. 물론 남미원주민 칸디아롱크의 교회비판은 현실교회의 문제점을 전혀 새로운 비신앙인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해준다. 이는 현실교회와 교리가 세상에 어떻게 비출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지점이다.
Summary
더 정확하고 더 희망적인 세계 역사의 그림을 향해 나아가는 첫걸음은 에덴동산을 완전히 포기하고 수십만년 동안 사람들이 공유했던 사회적 조직 형태라는 개념을 없애는 데서 시작할 지도 모른다. 이상한 일이지만, 이는 흔히 반동적인 움직임으로 간주되곤 한다. 18
그것들을 다시 검토하는 일은 인간의 과거를 오늘날의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충격적인 영향을 미친다. 농경, 재산, 도시, 민주주의, 노예제, 문명 그 자체의 기원 등에 대한 해석도 모두 인간의 과거다. 결국 우리는 각자가 생각하는 진화를 어느 정도는 반영하게 될 책을 쓰기로 했다. 우리가 나눈 대화에서 진정한 돌파구는 루소같은 유럽 사상가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서 그들에게 궁극적인 영감을 준 선주민 사상가들로부터 도출된 관점을 고려하기로 결정한 순간에 나타났다. 43
칸디아롱크: 이보게 형제여 싸우자고 들지 마시게.. 기독교도가 신성한 경전을 믿는 것은 당연하지, 어렸을 때부터 그 이야기를 너무나 많이 들어왔으니까, 그렇기는 해도 그런 편견없이 태어난 웬다트족 같은 사람드에게는 문제를 꼼꼼하게 따져보아 타당성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버리지.... 그런데 그의 말과 달리 세상에는 오륙백 가지 종교가 있고, 모두가 다른데, 당신은 프랑스의 종교만 좋고, 신성하고, 진실하다고 믿는군.... 81
칸디아롱크는 유럽스타일의 징벌적 법은 영원한 천벌이라는 종교적 교리처럼 인간 본성의 그 어떤 내재적 타락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행동을 권장하는 사회적 조직 형태에 의해 강요된다는 입장을 취한다. 라옹탕은 이에 반대한다. 이성이 모든 인간에게 동등하다는 것은 옳지만, 심판과 처벌의 존재 자체가 모두가 이성의 지시를 따를 수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82
그 과정에서 인간의 인지 능력이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있었으리라고 추정할 이유는 없다. 무한하고, 영원하고, 대부분 가상적인 집단 안에서 사는 것은 사실상 인간이 내내 해왔던 일이다... 현대의 고고학은 이런 초기 도시 가운데 권위주의적 지배의 흔적이 있는 경우가 놀랄만큼 적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 그들의 생태는 과거에 믿어지던 것보다 훨씬 더 다양했다. 397
아마 각 사회는 결국 평형 상태에 도달하여 거기에 안주하고 모두가 새로 발견한 여건을 정당화하기 위한 공통의 이데올로기적 골격을 고안해냈을 것이다. 이는 거기에 어떤 종류든 예전의 그때 그 시간 또는 창조의 시간이 실제로 있었음을 의미할 것이다... 두 입장은 모두, 자명하게도, 무척 어리석다. 686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첫 두 자유- 이동할 자유와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자유-는 흔히 세 번째 자유, 더 창조적인 자유로 나아가는 일종의 보조 사다리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 사회에 관한 뭔가가 정말로 아주 심오하게 변화했음은 분명하다. 세가지 기본 자유는 점차 후퇴하여, 현재를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자유에 기초한 사회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일일지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어쩌다가 고착되었는가? 우리는 정말로 얼마나 심하게 고착되었는가? 694
우리는 이미 그 첫발자국을 내딛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이제 다른 모든 측면에서는 엄격한 어떤 연구가 인류사회의 어떤 '원래' 형태가 존재했다는 검토되지 않은 가정에서 출발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더 명확하게 볼 수 있다. 그 본성이 근본적으로 선하거나 악하다는, 불평등과 정치적 인식이 아직 발생하기 전의 시간이 존재했다는, 뭔가가 발생하여 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는, '문명'과 '복잡성'이 항상 인간의 자유를 대가로 얻어진다는, 참여민주주의는 작은 그룹에서는 자연스럽게 실행되지만 도시나 민족국가 같은 것으로 확대될 수는 없다는 가정 등이 그런 출발점이다. 이제 우리는우리 앞에 있는 것이 신화임을 안다. 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