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없는 은혜와 사랑의 신학
지금도 계산을 하고 있어.
난 이런 사람이야.
그런데 어떻게 아직도 날 사랑해?
영화 <머티리얼리스트>는 한국계 감독 셀린송의 작품으로 잘 알려졌습니다. 지난번 작품인 <패스트라이브즈>에서는 자신의 뿌리에 대한 그리움을 보여주었지만 <머티리얼리스트>는 미국인 뉴요커들의 연예와 결혼을 다룹니다. 제목 그대로 물질주의적 가치관이 팽배한 시대에 어떻게 인간다움을 지켜낼 것인가가 영화의 주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커플매니저로 일하는 루시는 자신의 직업에 충실합니다. 소위 '유니콘'이라 불리는 잘생기고 키 크며 돈 많은 남자를 찾아 매칭해주는 일입니다. 이 세계에서 사랑은 데이터와 확률입니다. 루시 역시 자신이 하는 일에 걸맞은 연애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 같은 감정보다 외모와 물질이 중요하다는 생각 말입니다.
루시가 이런 가치관을 가지게 된 이유는 전 남친이었던 존과의 결별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사랑했지만 가난했던 존과 헤어지고 커플매니저로 일하면서 물질이라는 가치관에 충실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던 중 소위 '유니콘'이랄 수 있는 남성 해리의 대시를 받게 됩니다. 그렇게 잘난 남성이 왜 자기에게 구애하는지 의문을 가지지만 자기도 모르게 해리가 가진 물질적 조건과 외모에 이끌립니다.
그런데 해리와의 연애는 뜻밖의 기억을 소환하는데 사랑했던 전 남자친구 존을 떠올리고 비교하게 되는 겁니다. 왜 자신이 여전히 좋아하고 있는 존을 버리고 이렇게 해리와 연결되는 게 맞는 건지 다시 의문을 품게 되는 것이죠. 그러던 중 우연히 해리의 다리에 있는 수술 자국을 발견하게 되고 해리가 가진 콤플렉스와 자신에게 대시하게 된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즉 해리가 자신을 선택한 것은 자신의 열등감을 채워줄 대상이며 도구라는 사실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인지를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을 찾아 해피엔딩으로 맺는다는 설정은 할리우드 영화의 흔한 구조이지만 이 영화는 그런 과정을 동화적으로 그리기보다는 깊이 있는 내면의식을 탐구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외모와 물질에 숨겨져 있는 허상과 모순을 발견하게 하고 진짜 행복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이들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사랑의 의미보다는 물질적 가치관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실제로 이 영화의 리뷰글들 중에는 물질을 선택하는 것이 더 좋다는 분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루시가 왜 존에게로 돌아왔는지에 대한 성찰은 깊이 있는 사유가 없이는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존재의 본질에 대한 사유입니다.
신학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이유는 우리의 어떤 조건과 행위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사랑이 조건과 행위에 있다면 우리는 전혀 하나님의 조건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선택'에 있습니다. 숨 막히는 투자와 거래의 관계가 아닌 무조건적인 사랑의 선택입니다.
결국 내가 상대를 조건과 거래의 관계로 바라본다면 나 역시 그렇게 계산당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루시가 결국 첫사랑 존에게로 돌아온 이유일 것입니다. 사랑을 계산하는 순간 관계는 불안해지고, 사랑을 선택할 때 비로소 은혜는 시작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