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마지막 도박은 사랑하기
"도박하는 모든 사람은 불확실한 것을 얻기 위해서 확실한 것에 돈을 건다."
지난번 리뷰한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에는 우주여행을 떠나기 전 총책임자 에바에게 "신을 믿나요?" 라고 질문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안 믿는 것보다는 이득이니까요" 라고 에바는 대답합니다. 신을 믿는다는 것은 결코 무모한 것이 아니라는 계산이 거기에 들어있습니다. 이것을 '파스칼의 도박'이라고 합니다.
파스칼에 따르면, 신이 존재할 확률이 비록 아주 낮더라도 그 보상이 '무한대'라면, 기댓값은 항상 '신을 믿는 쪽'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즉, 수학적으로 볼 때 '믿음'이라는 투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보상이 무한대이므로, 신이 존재하는지와 상관없이 믿는 것이 합리적인 '도박'이라는 것입니다. 에바 역시 성공 여부를 알 수 없는 이 프로젝트에서 신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좀 더 높은 확률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파스칼의 도박은 단순히 종교적 신념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4가지 경우의 수를 보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종교적 의무를 다하는 성실한 삶을 의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반드시 '이웃사랑'을 수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마태복음12:31에는 예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계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도박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나에게 큰 유익을 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 그레이스가 외계 지성체인 로키(Rocky)와 처음 소통하며 서로의 문명과 믿음에 대해 나누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 장면을 파스칼의 도박과 연결하면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해석이 가능합니다.
1. 생존을 위한 '최선의 확률적 선택'
파스칼의 도박이 '신의 존재를 가정하는 것이 기댓값이 높다'는 계산적 논리라면, 그레이스의 상황은 '외계인을 신뢰하는 것이 생존의 기댓값이 높다'는 실존적 도박과 같습니다. 즉, 파스칼의 관점이 신이 존재할지 모르는 우주에서 신을 믿는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레이스의 관점에서는 적대적일지 모르는 외계 생명체(로키)를 '친구'로 믿고 협력하는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그레이스에게 로키는 신과 같은 전지전능한 존재는 아니지만, 자신의 생존과 인류의 구원을 결정짓는 '알 수 없는 타자'입니다. 만약 그레이스가 로키를 불신하고 경계했다면 인류는 멸망했을 것입니다. 결국 그레이스는 '타자를 믿고 협력하는 것'이 '고립되어 죽는 것'보다 생존 확률이 높다는 논리적 도박을 감행한 셈입니다.
파스칼의 도박에서 '무한한 보상(천국)'을 얻기 위해 약간의 불확실성을 감수했듯, 그레이스는 '인류 구원'이라는 무한한 가치를 위해 로키라는 존재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모험을 선택했습니다.
2. 도구적 합리성을 넘어선 '공감'
파스칼의 도박에 대한 가장 큰 비판 중 하나는 "믿음은 계산이 아니라 진심이어야 한다"라는 점입니다. 소설 속 그레이스 또한 처음에는 과학적이고 계산적인 태도로 로키를 대하지만, 점차 그와 우정을 쌓으며 계산을 넘어선 '진심 어린 신뢰'에 도달합니다.
파스칼의 도박이 차가운 수학적 도구라면,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그 차가운 확률 계산 끝에서 만난 '우정'이 어떻게 인간과 우주의 타자들을 구원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즉, 그레이스에게 "신을 믿느냐"는 질문은, "너는 너의 논리를 넘어 타자를 위해 너의 전부를 걸 수 있느냐"라는 질문으로 재해석됩니다.
그레이스는 신이라는 추상적 대상 대신 '눈앞의 외계인'이라는 구체적 타자에게 자신의 생존을 베팅했습니다. 파스칼의 도박이 이론적인 사유 실험이라면,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그 도박이 실제로 실행되었을 때 어떤 감동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문학적 실험이라고 재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마태복음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