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
어느새 아침 첫 숨에 코끝이 찡해지는 계절이 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얇은 긴팔옷을 고르면서도 한낮에는 더운거 아닐까 고민했는데, 갑자기 아이들의 겨울옷과 외투가 작아져버린 건 아닌지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날이 점점 추워지면서 아이들은 신이 난다. 이유는 단순하다. 매일 목욕하라는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씻는게 세상에서 제일 귀찮은 나이임을 안다. 나도 어릴 때 머리감기가 너무 귀찮아서 건조하게 만들면 기름기가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며 떡진 머리를 드라이로 말린 적이 있다. 그걸 뒤에서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이 지금와서야 온전히 이해된다. 아마 나도 매일같이 아이들의 뒤에서 같는 눈빛을 하고 팔짱을 낀 채 서있었을 것이다.
온전히 겨울이 되어 햇빛 아래에서 종일 돌아다녀도 땀 한방울 흐르지 않고 하루종일 집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날이 늘어나면 냄새난다, 더럽다는 협박으로 욕실로 들여보내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밖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뛰어놀다가 손발이 꽁꽁 얼어서 들어올 때면 이때다 싶어 따뜻한 물로 씻으면서 몸을 녹이라고 말해본다. 하지만 옷가지를 하나씩 벗어던지면서 몇 번 깔깔대고 나면 체온이 금새 올라버리는 아이들에게는 의미없는 외침일 뿐이다. 뜨끈한 물을 맞으면서 경직됐던 근육이 사르르 풀리는 그 시원한 느낌을 아이들이 언제쯤 이해하게 될까.
아직은 한여름을 제외하고는 이삼일 정도 안씻어도 땀냄새조차 나지 않는 싱그러운 나이지만, 어느 순간 정수리에 냄새나기 시작하면 시간 없다고 지각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아침마다 허겁지겁 머리를 감고 학교로 뛰어가는 날이 오겠지.
매일 저녁 같은 잔소리를 하면서 빨리 커서 씻는건 알아서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욕실로 끌고 들어간 김에 오랜만에 몸에 비누칠을 해주면서 관찰해보니 어느새 얼굴과 몸의 비율이 제법 사람에 맞춰지고 골격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그러고보면 언제부턴가 말투도 달라져 그 세대의 유머와 코드를 섞어가며 제법 어른 흉내를 내는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냥 귀엽기만 하던 아이들이 어느새 커서 차례로 유치원에 들어가더니, 이제는 함께 손잡고 학교에 등교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언제 철들거냐고 잔소리해놓고는 갑자기 쑥쑥 커버리는게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평생 뽀송하고 말랑한 아이들이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우리 아이, 애들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까지만 자랐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유아기가 저물어가면서 뭐든지 부모와 함께하고 싶어하는 날도 하루하루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에 조급해질 때가 있다. 남은 시간 동안 못하는 것에 대한 잔소리를 멈추고 무엇을 함께하고 또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까 고민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목욕 그까짓거 평생 할텐데 하루 안씻는다고 닦달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치만 양치질은 중요한데. 양치질은 했냐고 소리쳐봤자 아무도 대답을 안하니 또 내가 직접 가줘야지. 그래도 아직은 잔소리라고 생각할지언정 무서워하고 시키는대로 ㅎ따르는 나이니까. 아직까지는 나의 아이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