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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이야기

by 임지성


결혼 후 빠짐없이 하는 일 중 하나는 밥 짓는 일입니다. 가급적 집에서 따뜻한 밥을 해주고 싶은 욕심에 밥은 집에서 해 먹자 다짐했던 일인데 어느덧 습관이 됐습니다. 결혼 전 아내 지인들께 인사할 때도 밥은 제가 하겠노라고 호기롭게 얘기했던 적이 있었는데 다행히 아직까지 잘 지켜지고 있네요.


단순한 밥이라도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쌀이 있어야 하고, 물이 있어야 합니다. 검은콩, 귀리, 보리, 렌틸콩 같은 잡곡도 필요하고, 때에 따라서는 밤과 같은 특별한 토핑도 곁들이게 되죠. 밥 짓는데 쌀밥은 29분, 고온으로는 38분, 잡곡밥은 45분. 밥 종류에 따라 만들어지는 시간은 제각각입니다. 흰쌀밥만 먹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흰쌀 비율에 따라 밥 짓는 모드는 달라집니다. 흰쌀이 많이 들어가 있으면 백미 모드, 잡곡이 많이 들어가 있으면 잡곡모드를 활용합니다. 전기밥솥은 각각의 모드에 맞게 자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밥에 들어가는 재료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쌀입니다. 보통 백미라고 하는 것이죠. 백미로만 밥을 지으면 그것만큼 맛있는 건 없습니다. 따끈한 흰쌀밥에는 무엇이든 어울립니다. 겉절이 김치도 좋고, 김장김치도 좋고, 김도 좋습니다. 고추 참치도 좋고, 계란 프라이도 맛있습니다. 된장국이나 김치찌개는 더 맛있습니다. 간단한 밑반찬도 잘 어울리죠. 그러나 백미만을 먹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혈당을 급격히 올리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임신 전 당뇨로 고생을 했기 때문에 더 조심합니다. 그래서 흰쌀밥은 김장 같은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잡곡이 많이 들어간 밥을 먹습니다.


백미 다음으로 많이 들어가는 재료는 뭘까요? 어쩌면 쌀보다 더 많이 들어가는 재료일지도 모르겠네요. 그것은 바로 물입니다. 생각해 보면 쌀보다 몇 배는 더 필요한 것이 바로 물일 겁니다. 쌀을 씻어야 하고, 밥이 되기 위해서 일정 양의 물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수증기로 사라지지만 딱딱한 쌀을 부드럽게 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죠.

쌀을 씻을 때 처음 물은 반드시 정수된 물을 사용합니다.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요. 바싹 건조가 된 쌀알은 처음 수분을 만나면 상당 부분을 흡수합니다. 이 물이 만약 수돗물이라면 수돗물을 마시는 셈이 될 테니까 쌀알과 처음 만나는 물은 이왕이면 정수된 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밥을 끓으면 그 물이 그 물이다, 뭐 그렇게 까지 밥을 짓느냐는 의견도 있을 수 있겠지만 소위 말하는 마중물을 깨끗한 정수물로 했을 때 밥맛이 더 좋은 거 같아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증빙된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경험상 밥맛이 더 좋다고 개인적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조심한다고 하는데도 아내의 공복혈당이 오르락내리락합니다. 당뇨는 늘 조심스럽습니다.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고 몇 가지 시도를 했습니다.


먼저 현미 먹기입니다. 정확하게는 현미만 먹기입니다. 흰쌀에 들어있는 탄수화물이 혈당을 급격히 높인다고 하니 체내 흡수가 상대적으로 느린 현미를 먹기로 한 것입니다. 현미는 도정이 덜 된 상태의 쌀입니다. 그래서 색이 노르스름합니다. 식감은 까끌까끌해서 먹기가 조금 불편한 단점이 있습니다. 오래 씹어야 합니다. 가격도 일반 백미보다 조금 더 비쌉니다. 밥 짓는 방법은 동일한데 시간이 좀 더 걸립니다. 도정이 덜 된 쌀을 익히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해서 그런가 봅니다. 현미를 먹고 혈당을 재보았는데 유의미한 변화가 없습니다. 드라마틱하진 않아도 조금이라도 개선된 부분이 있다면 유지해 볼만 한데 그렇지가 않네요. 당뇨 관련 다른 자료를 더 찾아봤습니다.


두 번째는 콩기름 찬밥입니다. 콩기름 찬밥을 만드는 방법은 쉽습니다. 백미로 밥을 지을 때 콩기름 한 숟가락을 첨가해서 밥을 짓는 겁니다. 밥이 다 되면 열기를 식혀서 냉장에 4시간 이상 보관해서 먹거나 냉동에 보관하고. 먹는 방법입니다. 콩기름으로 코팅된 쌀알이 체내 흡수를 늦춰서 인슐린 분비를 조절한다는 방식인데 현미만 먹는 경우보다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급격한 혈당 상승을 막아주는 것 같습니다. 현재도 이런 방식으로 밥을 해 먹습니다. 아침에 밥을 해 놓으면 이틀 정도는 먹을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탄수화물 끊기입니다. 채소와 단백질만을 먹는 식생활인데요. 밥을 하지 않아서 좋고, 먹기에 부담이 없어서 좋긴 한데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힘이 나질 않습니다. 배가 고픈 개념과는 조금 다른 거 같습니다. 힘이 안 나고 어지럽기도 합니다. 탄수화물을 끊는 방식을 바로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건강하려다 건강을 잃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네 번째는 아침 식사 변화입니다. 평소 아침 식사는 간단하게 빵을 먹거나 바나나를 먹었었는데 야채 위주 식단으로 바꿨습니다. 사과, 당근, 양배추, 삶은 계란, 아몬드와 호두는 필수로 들어가고 부가적인 채소들을 곁들이는 방식입니다. 브로콜리, 고구마, 삶은 감자, 파프리카, 샐러리, 봄동 등 신선한 식재료가 있으면 추가해서 먹는 방식입니다. 아내가 얼마 전 피검사를 했는데 공복 혈당이 정상으로 나오는 등 유의미한 결과를 봤습니다. 이 방식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우리 집 상황에 맞는 밥을 찾은 셈입니다.


다섯 번째는 음식 섭취 방법 변화입니다. 쌀류, 즉 탄수화물을 가장 마지막에 먹는 것입니다. 야채를 먹고 단백질을 먹고 과일을 먹고 마지막에 탄수화물을 먹는 방법입니다. 음식 섭취 순서만 바뀌었을 뿐인데 효과는 분명했습니다. 이 방법도 우리 집에 어울리는 방식입니다.


정리하면 ‘야채위주의 아침식사를 하고 밥은 콩기름 찬밥으로 짓고, 탄수화물은 가장 마지막에 먹는다.‘입니다. 복잡한 것 같지만 그렇게 복잡하진 않습니다. 번거로운 건 있지만 당뇨에 어느 정도 효과를 봤기 때문에 우리 집 상황에 맞는 식단이라 생각합니다. 다행인 것은 아이도 잘 따라와 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반찬은 같이 먹지 못하는 음식이 많은데 기본 베이스인 밥은 한 번에 끝낼 수 있으니 만족합니다.



전기밥솥 수명이 다해가고 있습니다. 솥의 압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증기 배출할 때 증기가 많지 않고, 밥알도 예전처럼 기름지지 않습니다. 여기서 선택을 해야 하는데 압력밥솥으로 가느냐, 새로운 전기밥솥을 사느냐입니다. 우선 창고에 있는 압력 밥솥으로 밥 짓기를 시도해 봐야겠습니다. 압력 밥솥은 스텐(스댕)이니 맘껏 설거지해도 되겠죠? 이제 밥 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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