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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이야기 두 번째

by 임지성

밥 할 때 고민스러운 부분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밥의 양인데요. 얼마큼 밥을 해야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게 식사를 할 수 있을지가 늘 관건입니다. 밥 이야기 첫 번째에도 말씀드렸지만, 저희는 밥을 냉동해서 먹기 때문에 해동해야 하는 양을 정하는 것도 일이지요. 한번 냉동한 밥을 데운 후 다시 냉동하면 절대로 안되거든요. 혹자는 밥을 많이 해서 남으면 냉동에 넣지 뭐, 밥 좀 적으면 어때. 다른 간식 좀 먹지 뭐. 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실제로 그렇게 딱 맞게 소비되지는 않더라고요. 밥을 준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쌀 한 톨도 남기고 싶은 생각이 없답니다. 어렸을 때 쌀은 소중하니까, 농사짓는 분들 고생하시니까 밥그릇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어야 한다는 이유보다는 음식물 쓰레기가 늘어나는 게 마냥 좋진 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 모아놔야죠, 버리러 가야죠, 추운 날이나 더운 날이다 밖으로 왔다 갔다 귀찮습니다.


밥 양을 결정하는 주원인으로는 단연코 아이 식사량입니다. 유치원에서 간식을 많이 먹고 오는 경우나 밥 먹기 전 주전부리를 하는 경우는 확실히 밥 먹는 양이 적습니다. 반면 열심히 뛰고 놀다 왔는데 우연찮게 밥때가 맞으면 어른 먹는 양을 먹기로 해요. 세심하게 관찰하지 않으면 밥 양 조절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거기에 반찬 종류에 따라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이 나오면 많이 먹고, 좋아하지 않으면 남게 되는 거죠. 그런데 또 다른 변수는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이 그때그때 다르다는 겁니다. 지난번 맛있게 먹은 돈가스를 오늘 해주면 먹지 않을 때도 있고, 마땅한 반찬이 없어 냉동칸에 있는 소고기를 조금 구워주면 왜 더 없냐고 성화를 부리기 일쑤죠. 밥을 먹이기도 힘든데, 밥 양을 조절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입니다.


밥이 모자라면 다른 대안을 빨리 찾아야 합니다. 과일도 좋고, 아이스크림도 좋고, 우유도 좋고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다른 대체재를 찾아서 끊김 없이 제공해줘야 합니다. 어른도 그렇잖아요? 고기를 먹다가 흐름이 끊기면 많이 먹지도 못하고 조금 지나 배가 고픈 것처럼, 저녁을 먹던 아이가 흐름이 끊기면 마찬가지로 뒤돌아서서 밥 달라고 하니까 흐름을 끊지 않도록 준비해야만 합니다.

반면, 밥을 남기는 경우는 아이와 본격적인 실랑이가 시작됐다고 보면 맞습니다.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고 싶은 부모 마음과 절대 입에 음식을 넣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진 아이간 팽팽한 기싸움이 계속됩니다. 어느 날은 아빠가 이기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아들이 이기기도 합니다. 아빠가 이기면 밥을 다 먹였다고 뿌듯함을 느끼죠. 아이가 이기는 날은 애매하게 밥이 남습니다. 과연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까요.


음식을 먹는 문화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제 자기가 먹던 숟가락으로 찌개를 같이 공유해서 먹는 문화는 사라졌고, 각자 먹을 만큼 떠서 먹게 되었습니다. 어떤 음식점에서는 각자 반찬이 나오고 개인별로 먹을 수 있게 위생도 강화되었죠. 가정에서도 각자 식판으로 밥을 먹는다는 글을 본 것 같은데 많이 그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 어렸을 때만 해도 할머니가 손주 먹인다고 밥을 씹어서 먹여줬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누군가의 입에 있던 음식을 먹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인 겁니다. 그때는 그게 사랑이었고 큰 거부감은 없었습니다.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고요.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했죠. 아무도 아이에게 밥을 씹어서 먹여주지 않습니다. 그랬다간 난리가 납니다. 아이가 먹던 음식을 부모가 대신 먹지도 않아요.


가만 보니 밥이 또 애매하게 남았습니다. 아이가 먹던 밥입니다. 음식물 쓰레기로 처리하기도 애매하고, 남겨서 다시 아이에게 주고 싶지도 않습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숟가락을 듭니다. 깨끗이 먹습니다. 맛은 있네요. 이래서 집안일하는 사람이 살이 찌나 봅니다. 그리고 오늘도 고민합니다. 밥을 얼마큼 준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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