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는 히치콕의 위대한 경력 속에서도 황홀한 빛을 발하던 시기의 작품이다. 현기증,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싸이코로 이어지는 필모는 예술사의 다시는 없을 축복 중 하나였다.
이 영화는 보통 최고의 스파이 영화로 언급되며 실제로도 매우 잘 만들어진 장르영화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또다른 주제가 깔려있으며 히치콕이 그것을 구현한 방식은 (히치콕답게)경이롭다.
이 작품의 밑바닥을 받치는 핵심은 단연코 불안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체성혼란을 겪는 현대인의 실존적 불안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오프닝 이미지는 빌딩의 유리창과 그에 비친 차들이다. 이 유리창들은 같은 크기와 모양을 가졌기에 구별될 수가 없다. 차 역시 소위 찍어내는, 몰개성적이고 규격화된 공산품이지 않은가. 다음에 히치콕은 도시에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찍는다. 그들은 따로 부각되지않는, 미약한 존재감을 지녔으며 그저 군중의 일부일 뿐이다. 명확한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지않은 존재들로 묘사된 것이다. 이렇게 히치콕은 (본인 모습으로 코믹하게 마무리하는 )오프닝부터 영화의 핵심을 보여준다.
주인공 로저 손힐은 광고회사에서 일한다. 광고라는 소재 역시 흥미롭다. 대사 중에 '거짓이 아니라 편리한 과장'이라며 광고를 지칭하는 데 이는 취약한 손힐의 정체성을 감안하면 흥미롭다.
그는 케플란이라고 오해받는데 사실 케플란은 정보국이 창조한 가짜사람이다. 가짜가 진짜를 삼켜버린, 카프카의 부조리와 같은 상황에 로저 손힐은 처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고의 숏은 단연코 손힐이 누명을 쓰는 살해장면이다. 졸지에 살인용의자가 된 손힐이 유엔본부를 나가는 상황을 히치콕은 익스트림롱숏/부감으로 담았다. 이로 인해 로저 손힐은 매우 왜소한 점이 되며 이는 그의 무력한 처지와 약해진 존재감을 표현한다.
그가 기차를 타고 이브와 대화하는 장면은 (당연히)매우 중요하다. 식사를 할 때 처음에는 미디엄/os 샷으로 찍다가 이브가 진실(그가 로저의 정체를 안다는 것, 식사초대를 했다는 것)을 밝힐 때는 클로즈업/싱글샷으로 촬영했다. 미디엄에서 클로즈업으로의 전환은 그 고백이 중요하다는 연출이다. 이는 그 둘 모두에게 결정적인 순간임을 드러낸다. 동시에 os샷에서 싱글샷으로 변하면서 같이 화면에 있던 둘이 분리되었다. 이를 통해 감독은 넌지시 이브에게 다른 비밀이 있음을 암시한다.
다음 장면서 로저 손힐은 담배갑을 보여주며 본인의 이니셜 R.O.T 에서 O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이 대사는 그의 정체성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고백임에 다름없다.O는 중앙이 비어있다는 점서 뛰어난 시각적인 암시다. 그리고 이브는 담배를 피우는데 영화는 옆모습으로 보여준다. 히치콕의 옆얼굴에 대한 강조는 유명하다. 여기서 이브의 옆얼굴은 그녀가 비밀을 가진 사람임을 표현한다.
로저 손힐에게 이 장면이 가지는 다른 의미는 구원의 가능성인데 그는 마마보이에 알콜중독자, 두 번의 이혼 경력을 가진, 일종의 관계무능자이다. 관계에 믿음이 없는 사람이 로저 손힐이다.(이런 주제는 오명과 유사하다.)
그 다음 로저 손힐은 케플란을 만나러 황무지로 간다.
이 동선은 밀집된 공간과 다수의 사람들을 이용했던 이전까지의 연출과 반대로 넓은 공간과 적은 사람을 활용해 다른 방식으로 서스펜스를 창조한다.
동시에 케플란이 없는 사람, 조작된 인물이라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아무 것도 없이 텅비어있는 들판은 훌륭한 비유이다.
그 후 사건을 거쳐 로저 손힐은 진실을 전해듣게된다.
그리고 이브를 위해 작전에 참여하는데 그 순간을 히치콕은 탁월하게 연출했다.
os샷에서 줌으로 클로즈업해 화면에 손힐만 남기며 그 순간 그의 얼굴에 빛이 비친다. 그가 구원받았다는 연출이다. (이와 유사한 연출은 히치콕이 오명서도 사용했다.)
러시모어 산에서 공포탄과 연극을 통해 이브와 손힐은 재회한다.
이 둘의 재회연출은 특별하다. 먼저 차에서 내린 손힐으로부터 카메라는 후진한다. 그러자 화면 오른쪽에 이브가 나타난다. 렌즈는 광각렌즈로 두 인물 사이를 멀어지게 만든다. 그리고 둘 사이에는 숲의 나무들이 있다. 이 나무들은 수직선으로 그 둘 사이를 막는 시각적인 요소이다. 그런 다음 손힐이 먼저 이브에게 다가가고 영화는 이를 수평 트래킹숏으로 찍는다. 다음 이브도 손힐에게 가며 영화는 같은 방식으로 촬영했다. 그렇게 이 둘은 같이 화면에 존재한다.
우여곡절 끝에 손힐은 이브를 구출하기위해 밴댐의 집에 잠입한다. 여기서 보여주는 서스펜스 연출은 그 자체로 교과서로 수없이 반복될 것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비슴듬한 부감샷이 손힐의 시점숏으로 표현된다는 것인데 이전까지 유사한 부감샷을 설정숏이나 약해진 손힐을 표현하는 용도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의미심장하다. -일종의 전복이다-. 동시에 이브에게 정보를 전한 담배갑이 R.O.T 즉 아무 것도 아닌 것이지 않은가. 그것이 그 둘을 구원했다.
이브를 구출한 손힐은 러시모어 산의 조각상들로 숨는데 조각상들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라는 점서 주제와 일치한다. 그리고 감독은 롱숏으로 작은 인물들과 거대한 조각상을 보여주는데 훌륭한 주제표현( 없는 사람은 크고 진짜 사람은 작다.)이면서 뛰어난 서스펜스(이미지 크기의 대비)이다.
그리고 영화는 손을 잡고 끌어올리는 이미지로 편집된 후 기차여행을 떠나는 둘로 끝난다. 여기서 기차와 터널은 명백히 성적인 암시이다.(히치콕도 인터뷰서 트뤼포에게 말했지 않은가) 로저 손힐과 이브 켄달은 구원을 성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