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인생의 경로를 거부하기
‘인생 게임’이라는 보드게임이 있다.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이 게임은 1960년에 미국에서 출시된 보드게임계의 스테디셀러로, 방법은 간단하다. 대학부터 시작할지, 직장부터 시작할지 인생 경로를 정하고, 정한 경로에 따라 게임 말을 옮기면 된다. 게임 끝에는 은퇴하고, 집의 가격을 정한 뒤 집을 은행에 판다. 그리고 대출금을 모두 갚은 다음 남은 돈을 세어 돈이 가장 많은 사람이 승자가 된다. 즉, 마지막에 돈이 많은 사람이 인생에서 ‘승리’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이 끝나고 이 보드게임을 친구들과 자주 하곤 했다. 그런데 게임 안에서 대학에 가지 않은 플레이어는 ‘승자’가 될 확률이 굉장히 낮았다. 그래서 게임을 한두 번 진행한 이후, 나는 늘 대학에 가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게임을 같이 한 친구는 “인생 교훈을 여기서 얻네.”라고 말했다.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이 말에는 ‘학자금 대출받아서라도 대학에 가야만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고,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며, 이는 인생의 성공이다.’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당시 대학에 합격했던 나는 게임을 통해 ‘대학에 가는 것은 틀리지 않았다’는 안심이 들었지만, 동시에 왠지 모를 불편한 감정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나에게 대학이란 응당 가야만 하는 곳이었다. 시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어른들이 다 가야 한다고 하니까 가려고 했다. 나의 엄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갈 곳이 없는 기분을 네가 아느냐”며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대학에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엄마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한동안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상태, 즉 ‘백수’로 따가운 시선을 견뎠고, 그래서 대학 진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나 또한 대학 합격 발표가 나기 직전 비슷한 불안감을 느꼈기에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에서 대학에 안 간다는 것은 낭떠러지, 비정상을 의미한다. 과연 한국에서 고등학생으로 살면서 “대학에 가서 해.”라는 말을 안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 무언가 도전해보고 싶다고 하면 모든 일은 대학에 가서도 할 수 있는 일로 취급한다. 반면 입시 공부는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로 여겨진다. 대학에 가기만 한다면 예뻐지고,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고, 모든 게 해결될 거라는 <만물 대학 해결론>. 우리에겐 시행착오도, 도전도 대학 안에서만 허락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대학에 가야 했다. 나는 시골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었고, 여러 가지를 경험해보고 싶었으니까. 고등학생이던 나에게 대학은 떨어져도 밑에서 받쳐주는 ‘안전망’이자 도전이 가능한 공간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왔다고 해서 하고 싶었던 것이 모두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대학은 취업을 향한 징검다리 정도로 느껴졌다. 대학 곳곳에는 취업, 인턴, 대외활동 홍보물이 붙어 있었고, 모두에게 취업에 관한 스트레스를 줬다. 대학에 오면 원하던 공부나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왔는데 또 다른 경쟁을 하라고 부추겼다. 그리고 나는 주어만 다른 똑같은 말을 들었다. ‘취업하고 돈 벌면 그때 해.’…… 그때 무언가 끝나지 않는 굴레가 느껴졌다. 과연 정말로 취업하면 끝이 날까? 다음은 결혼일 것이고, 또 다음은 아이일 것일 게 분명했다. 그리고 또 다음은 투자, 노후 준비…… 나는 경쟁만 하다 죽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졌다. 고등학생 때 대학이 여려 경험의 장소로 다가왔다면 대학생이 되자 나에게 대학이 경쟁의 연장선상으로 느껴졌다. 답답한 것은 이러한 경쟁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사실이었다. 인생에 있어 돈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므로 결국 그 안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를 발견했다.
스펙 과잉의 시대, ‘갓생’의 시대, ‘오운완’의 시대. 요즘 한국 사회를 지칭하는 단어들이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가 개인적으로 조금 숨 막힌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브랜딩 하고, 스펙을 쌓고, 남들보다 뛰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미디어에서는 자기 발하지 않으면 도태될 거라는 불안감을 조성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한심하게 본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신화, 그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잘 못살아도 된다는 합리화. 나는 그 안에서 남들을 따라 열심히 살면 얻을 수 있는 보상이 고작 남들보다 잘 산다는 우월감이라는 것에 우울해졌다. 그런데 그게 정말 내가 원하던 것이 맞나? 돈을 많이 벌면, 성공해서 남들보다 낫다는 우월감을 느끼면 나는 끝내 행복해질 수가 있는 것인가?
나는 가끔 나를 비롯한 사람들이 ‘인생 게임’ 속 플레이어와 같다고 생각한다. 경쟁, 노력, 돈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게임에 참가하는 사람들. 판 위에 플레이어는 자신이 무얼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냥 남들이 다들 같은 경로로 나아가니까, 옆에 대학에 안 간 플레이어는 돈을 잘 못 버니까, 은퇴 후 좋은 집에서 살지 않으면 실패한 삶이니까. ‘성공’ 하기 위해 대학에 가고 정해진 인생의 경로를 따른다. 하지만 진정한 성공이란 대체 뭘까? 게임 판 위에서 우리는 언제까지 경쟁해야 하는 걸까? 우리는 ‘성공’ 하기 위해 모두 ‘인생 게임’에 다 같이 과몰입한 것만 같다. 나는 이제 그 게임판에서 벗어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