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겐’은 왜 조롱으로 쓰일까?
2025년 말, ‘환승연애 4’ 프로그램 출연진 ‘승용’은 ‘에겐남’, ‘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블랙핑크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다른 출연진 ‘민경’의 고민을 잘 상담해 준다는 이유였다. ‘퀸력 넘치는 승용 언니’라는 제목의 유튜브 쇼츠 영상은 140만 조회수를 넘기기도 했다.
하지만 ‘퀸’이라는 별명은 사실상 조롱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승용’의 행동이 ‘여성적’이라며 ‘에겐남’이라고 비아냥댔고, 심지어 일부는 성 정체성이 의심스럽다는 무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나는 당시 그런 반응을 보면서 사람들이 말하는 ‘여성적’인 특징이 무엇인지 의문이 들었다. 또 ‘여성적’ 특징이 부정적으로 소비되는 것이 의아하다고 생각했다.
‘에겐남, 에겐녀, 테토남, 테토녀’. 이는 작년부터 유행한 밈이다. ‘에겐’은 ‘에스트로겐’의 줄임말로, 섬세하고 감정적인 ‘여성스러운’ 이들에게 붙는다. ‘테토’는 ‘테스토스테론’의 줄임말로, 강하고 적극적인 ‘남자다운’ 이들에게 붙는다. 쉽게 말하자면 ‘에겐남’은 여성스러운 남자, ‘테토녀’는 남자 같은 여자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런 이분법은 새롭지 않다. ‘여성스럽다’, ‘남자답다’라는 말은 과거에도 자주 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은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한다는 인식 아래 2010년대 이후 서서히 사라졌다. 그런데 2025년, 포장만 달라진 채 다시 등장한 것이다. 이 밈은 사람을 단 네 가지로 나누어 해석한다. 여성적인 여자, 여성적인 남자, 남성적인 남자, 남성적인 여자. 그런데 사람을 그런 식으로 나눌 수 있을까? 이 밈은 사람들에게 재미로 소비되고 있지만, 그 안에는 혐오적인 맥락이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테토’와 ‘에겐’은 평등한 위치에 있지 않다. 테토남 혹은 테토녀로 불리는 이들은 ‘강함’, ‘주체성’이라는 긍정적인 프레임이 작동한다. 유튜버 ‘권또또’가 ‘테토녀’, ‘수컷녀’라는 별명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채널이 큰 인기를 얻은 것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웹드라마 유튜브 ‘픽고’가 게시한 ‘테토남 특’이라는 썸네일의 영상 역시 주목할 만하다. 여성 사원의 실수를 대신 해결하는 든든한 선임의 모습을 보여주며, ‘테토남’을 긍정적으로 묘사하였다.
반면 에겐남 혹은 에겐녀로 불리는 이들은 ‘감정적’, ‘수동성’이라는 프레임 안에 갇힌다. ‘승용’이 SNS와 유튜브에서 ‘퀸 내 난다’와 같은 말들로 조롱당했던 것이 그 예시이다. 또한 개그우먼 이수지의 유튜브에 올라온 ‘에겐녀 뚜지의 출근 VLOG’에서도 잘 드러난다. ‘에겐녀 뚜지’는 네일아트한 상태에서 키보드 소음을 내 동료에게 피해를 주고, 갑자기 감정이 복받쳐 올라 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에겐녀’는 민폐를 끼치는 존재로 여겨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에겐’이 ‘언제나’ 부정적으로 쓰인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 중에서는 다정한 ‘에겐남’이 이상형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고, 스스로 자신을 ‘에겐녀’라고 부르는 여성들은 부드럽고 섬세한 모습을 긍정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호명의 ‘주체성’이다. 예를 들어 유튜브 채널명을 ‘퀸승용’이라고 지은 ‘승용’은 ‘에겐’이라는 말을 직접 사용함으로써 프레임을 역전시킬 수 있었다. 그는 스스로 ‘퀸’이라고 부르면서 사람들의 조롱까지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이미지를 얻었고, 이는 오히려 독보적인 캐릭터가 되었다.
하지만 이와 달리, ‘타인’에 의해 ‘에겐’이라고 호명되면 조롱과 배제의 맥락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앞서 살펴보았듯, 미디어에서 묘사되는 ‘에겐남’이나 ‘에겐녀’가 주로 민폐 캐릭터나 해결 능력이 없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이 그 증거이다. 결국 누군가는 이 밈을 영리하게 사용해 긍정성을 얻을지 몰라도, ‘여성적’ 특징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모두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에겐’은 언제든 안 좋게 쓰일 가능성이 크다.
일부는 이러한 의견에 반대하며 ‘에겐남’과 ‘테토녀’ 밈이 기존 성별 고정관념을 깬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들은 남자가 섬세할 수 있고, 여자가 강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므로 긍정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살펴보았듯, ‘에겐남’은 ‘남자가 여자처럼 행동하면 우습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테토녀’ 역시 ‘여자답지 않음’을 조건으로 긍정성을 획득한다. 결국 이 밈은 고정관념을 부수지 못하고 강화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이러한 밈을 쓰는 것을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적’ 특징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은 매우 혐오적이기 때문이다. 과거 ‘여성스럽다’, ‘남자답다’라는 말이 서서히 사라졌던 것처럼 이 또한 그럴 필요가 있다. 단어만 바뀌었을 뿐, 여성성을 열등하다고 인식하고 조롱하려는 시도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불평등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러한 밈이 유머로 소비되는 한, 누군가는 계속해서 행동이 ‘여성스러워 보이지 않을지’ 검열하고 위축될 것이다. 이제는 성별 고정관념을 벗어나, 개인에게 있는 다양한 모습을 존중할 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