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을 무시하는 남성들

“남자친구 있어요” 왜 잘 먹히는 거절일까?

by 빵토

언젠가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내게 번호를 달라고 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완곡하게 거절했다. 그런데 그는 바로 떠나지 않고 시답잖은 질문을 해댔다. “혹시 남자친구가 있어서 그러신가요?”, “어느 방향으로 가세요?”, “정말 안 될까요?” 등등. 고작 몇 분이었지만 대답하기 피곤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나는 일부러 그 사람으로부터 먼 칸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하철에 탄 뒤에도 괜히 주변을 경계하기도 했다.


“남자친구 있어요”, “곧 결혼해요”. 사람들은 ‘번따’ 상황에서 이렇게 거절하라고 조언했다. 그게 상대를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거절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당시 내가 번호 주기를 거절하자 남자친구의 유무를 가장 먼저 물었던 것을 보면 어느 정도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왜 ‘남자친구 있어요’를 효과적인 거절방법으로 공유할까? 남성들은 왜 성가시게 굴다가도 상대에게 ‘남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 쉽게 돌아서는지 의문이 들었다. 바로 앞 상대의 거절은 무시하면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남성의 존재는 존중하는 것 같아 이상하게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남자친구 있어요’라는 말은 남성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거절 방식이다. 이런 유형의 거절은 자신에 대한 직접적인 ‘불호’로 느껴지지도 않고, 자신의 겉모습이나 직업 같은 다른 문제점을 탓하지 않아도 된다. 만약 여성이 “제 스타일이 아니에요”라고 거절한다면 원인이 ‘본인’이 되어 자존심이 상하지만, ‘남자친구 있어요’라고 한다면 거절의 원인은 운 없는 ‘타이밍’이 된다.

이 거절 방법은 겉으로 보면 서로에게 최선으로 보인다. 여성은 부담스러운 상황을 빨리 벗어날 수 있어서 좋고, 남성은 자존심이 상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지점은 '여성이 진심으로 이런 거절을 원하는가?'이다.


'거절'은 여성의 주체성을 보여준다. 그런데 왜 여성은 항상 '완곡하게', '돌려서' 거절하게 되었다. 이는 왜일까? 답은 간단하다. 솔직한 거절이 때로는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일부 남성들은 여성의 거절을 자신에 대한 ‘공격’이나 ‘모욕’으로까지 받아들인다. 실제로 2022년 경찰청 스토킹 범죄 검거 현황을 보면 약 80%가 남성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왜 안 만나줘’라고 검색하면 정말 많은 기사가 쏟아진다. ‘노원 세 모녀 살인사건’, ‘신당역 역무원 살인사건’처럼 교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은 사건도 있다.


로라 베이츠의「인셀 테러」에 등장하는 미국 사례들도 맥락이 비슷하다. 2014년, 22세의 엘리엇 로저는 총 6명을 살해하고 14명에게 상해를 입혔다. 그는 여성에 대한 자신의 불만을 늘어놓고 자신과의 성적 접촉을 거부한 여성들을 처벌할 계획을 설명했다. 자신의 불행과 외로움을 ‘인간 암컷들이 내 안에 있는 가치를 보지 못한’ 탓으로 돌렸다. 이런 사례가 총기가 허용된 나라에서 벌어진 극단적인 사건으로 느껴지는가? 사회가 거절 면역이 없는 남성들을 계속해서 방치한다면 이는 더 이상 남 일이 아니게 될 것이다.


다음과 같은 의문도 따라온다. 그렇다면 왜 남성들은 거절에 면역이 부족할까? 나는 이러한 배경에는 여성을 동등한 주체가 아닌 ‘보상’으로 간주해 온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고 본다.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만 해도, 여성은 마치 ‘성공’하면 당연히 뒤따라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지금 공부하면 미래 아내 얼굴이 바뀐다’와 같은 급훈이 유머로 받아들여졌으며, ‘대기업에 들어가면 예쁜 여자들이 너한테 줄을 설 것이다’라는 식의 말에 불편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이는 오래된 과거가 아니다.


일례로 내가 고등학생 시절, 한 선생님이 나중에 남자가 들이대면 여자는 좀 ‘튕겨야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남자들에게는 정복욕 그런 게 있어서’라고 덧붙였다. 그 발언이 불편해서 지적하자, 선생님은 당황했고 남자애 한 명이 뒤를 돌며 내게 짜증을 냈던 것이 기억난다.

이처럼 왜곡된 인식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 선생님에 따르면 우리는 남성들의 ‘정복’ 대상이다. 여성의 주체성은 그런 식으로 지워졌다. 이러한 가르침이 일상이었으니, 많은 남성이 여성을 ‘소유물’처럼 인식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결과일지도 모른다.


오래전부터 여성들은 ‘나는 이미 다른 남자의 것’임을 알려야만 안전할 수 있었다. ‘아버지 또는 오빠가, 남편 또는 남자친구가 나를 보호하고 있고, 그러니 당신이 나를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라는 메시지를 주어야 남성들은 성가시게 굴지 않았다. 하지만 여성은 그저 남성과 같은 ‘사람’이다. 여성의 거절을 무시하는 이들은 우선 이 당연한 사실을 이해하고 배울 필요가 있다. 나는 누군가의 '보상'이 되기 위해 살아온 게 아니다. 정말로 상대방이 마음에 든다면 상대방의 의견까지 존중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사랑이라고 할 수 없으며, 같은 인격으로서 대우하지 않는 것이다.


언제까지 타인을 빌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할까. 교육, 미디어, 사법 시스템 모두 여성이 싫다고 말하면 그 자체로 끝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분명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받았던 왜곡된 가르침을 나보다 어린 여성들은 받지 않길 바라며, 여성 폭력에 대한 법적 처벌이 지금보다 더 무거워지기를 원한다. 또한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미디어에서도 여성의 거절을 '밀당'으로 인식하게 하는 콘텐츠를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안전을 위해서 ‘남자친구 있어요’라는 말 뒤에 숨겠지만, 언젠가는 나의 거절이 그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밈으로 포장된 여성혐오, 퐁퐁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