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녀’, ‘꽃뱀’의 친밀한 진화
‘김치녀’, ‘된장녀’, ‘꽃뱀’…… 201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여성혐오적 단어들이다. 실제로 ‘화성인 바이러스’에서는 ‘된장녀’를 구분하는 기준을 방송했고, ‘개그콘서트’에서는 ‘김치녀’라는 단어를 써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2025년인 지금은 어떨까. 인터넷에는 여전히 보이지만 현실에서 쓰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 말을 하는 순간 여성을 혐오하는 사람으로 보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저런 혐오 단어는 모두 사라졌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거 ‘김치녀’, ‘꽃뱀’ 같이 노골적이었던 혐오 단어가 ‘친밀하게’ 진화했을 뿐이다. ‘퐁퐁남’이라는 단어가 가장 대표적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퐁퐁남’이라는 단어를 ‘재밌는 밈’처럼 인식한다. 유튜브에 ‘퐁퐁남’을 검색하면 이 단어를 활용한 웹드라마나 현직 변호사의 조언 같은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작년에 논란이 되었던 웹툰 ‘이세계 퐁퐁남’도 비슷하다. 제목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작가는 “이미 시중에서 널리 쓰는 말”이라고 해명했다. 이 단어가 얼마나 가볍게 여겨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퐁퐁남’의 의 뜻을 알아보자. 이 단어는 ‘설거지론’이라는 남초 커뮤니티에서 유행했던 근거 없는 이론에서 시작한다. 경제력은 있지만 연애 경험이 적고 순진한 남성이 문란하게 살던 여성과 결혼하여 착취당한다는 의미이다. 이때 남성은 ‘더러운’ 여성을 데려갔으므로 ‘설거지했다’라고 표현되며, ‘퐁퐁남’이라고 조롱당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남성‘도’ 함께 ‘퐁퐁남’이라고 불리며 비난당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마치 여성혐오가 아닌 것처럼 포장된다. 누군가 이를 혐오라고 지적하면 일각에서는 오히려 ‘남성 풍자’라고 반박하기도 한다. 하지만 애초에 남성은 ‘피해자’, 여성은 ‘가해자’라는 틀 안에 가둬놓고 여성혐오가 아니라는 주장은 이해하기 힘들다. 기혼남성에 대한 조롱이 더해진 여성혐오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러한 설정은 어딘가 익숙하다. ‘남성의 돈을 노리는’ 악독한 여성, ‘그것에 속는’ 순진한 남성. 과거 ‘김치녀’, ‘된장녀’, ‘꽃뱀’ 담론과 매우 닮았다. 이는 남성들이 여성을 경계하게 하고, 자신이 ‘피해자’가 될까 두려워하게 만든다. 여성의 경우는 어떨까? 이러한 단어들은 여성 스스로 행동을 검열하게 만든다. 심지어 일부는 다른 ‘김치녀’들을 먼저 비난하는 식으로 자신은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한다. 혐오의 화살이 언제든 자신에게도 향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구분 짓는다.
많은 여성혐오 단어들은 일부 남성들이 여성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잠재적 신붓감’으로 보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세계관’에서는 자신의 짝이 될 ‘개념녀’와, 짝이 되지 못할 ‘김치녀’ 두 가지로만 분류된다. 그들은 자신에게 선택권이 무한히 있다고 착각하며, 자신의 기준에서 어긋난 여성은 모두 ‘탈락’시킨다. 자신의 선택지에 얌전히 있어야 할 여성들이 줄어들자 남성은 분노하고, 곧이어 ‘탈락’한 여성들을 모욕하게 된다. 이는 ‘성녀/창녀 이분법’을 떠올리게 한다. 이 이분법에 따르면 여성은 <순결하고, 남성을 위해 헌신하며, 가정을 지키는 여성인 성녀>와 <문란하고, 남성을 이용하려 들며, 이기적인 창녀>로만 나뉜다. 하지만 여성을 고작 두 가지로 나눌 수는 없다. 순종적인 아내, 착한 어머니를 넘어서 다양한 모습이 공존한다. 그런데 유독 여성만 어떤 틀 안에 가둬지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시선은 여성의 복합적인 면을 무시하고 주체적인 삶을 막는다.
‘퐁퐁남’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결혼을 비하하는 ‘재밌는 밈’이 아니다. 여성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혐오의 반복일 뿐이다. 이러한 단어의 유행은 혐오표현에 관한 지적을 둔감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새로운 형태의 혐오를 만들어내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또한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 모든 여성을 의심하게 만들어서 건강한 관계 형성을 방해한다. 소통과 공감을 어렵게 만들고, 결국 그들 스스로 외롭고 고립된 존재로 만든다. 혐오를 유머로 포장하는 문화는 우리 사회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반복되는 혐오를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신뢰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