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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는 크루와상 Dec 04. 2023

너는 떡볶이 테라피  나는 달리기 테라피

우리 집 어린이는 매일 떡볶이 테라피를 받는다. 학교에 가는 즐거움 중 떡볶이집 방문이 큰 비중을 차지할 만큼 떡볶이를 좋아한다. 아이는 학교에서 친구랑 투닥거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친구랑 신나는 시간을 보낸 하루가 좋을 때, 단원 평가 점수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유독 하늘이 흐린 날, 유난히 하늘이 파랗고 예쁜 날, 축구를 원 없이 못하고 하루가 끝난 날, 축구를 너무 많이 해서 허기진 날, 유난히 피아노가 치기 싫은 날, 피아노가 너무 잘 쳐진 날 등 셀 수 없이 많은 이유로 떡볶이 치료를 받는다. 아이의 말에 따르면 떡볶이 한 컵에 김말이 하나, 오뎅 국물을 앞에 두면 기분이 훨훨 날아갈 것 같다고 한다. 학교 앞 떡볶이집에서 일주일에 몇만 원씩 쓰는 최고 단골 어린이는 떡볶이 힘으로 학교에 다니는 듯하다. 제주로 이사와 전학 온 학교에 단숨에 적응한 것도 학교 앞 분식집 덕이라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사장님께 연말에 감사 인사를 한 번 가야겠다.


내게도 떡볶이 같은 존재가 있었다. 빵과 과자. 점심까지 건강한 음식을 먹고 운동하며 시간을 보내다가도 저녁 먹고 주방을 정리하면 과자 서랍 속 달콤, 짭짤, 바삭한 것들이 나를 부른다. 어서 와 나를 먹고 행복해지라고. 그날의 기분에 딱 맞는 디저트를 먹으면 금세 행복해진다. 행복 뭐 별거야? 오순도순 앉아 과자 먹고 귤 까먹고 그럼 행복이지 한다. 유명한 군것질쟁이였던 나도 마흔이 넘어가니 예전만큼 달콤한 것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먹는 것 말고도 단숨에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있다. 일단 시작하기만 하면 행복해지는 것.


바로 달리기.


한 번에 달릴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나고 이제 어느 정도 거리는 단숨에 즐겁게 달릴 줄 알게 되자 더욱 편안한 마음으로 달리기와 만난다. 달리기 전 얼마나 힘들지 상상하며 망설이는 마음이 없어졌다. 몸이 무거운 날엔 천천히 달리며 몸을 달랠 줄 알게 되었고, 달리기 시작하고 몸이 가뿐해지면 속도를 올려 심장이 터질 듯 달려도 괴롭지 않게 되었다. 운동화 신고 일단 나오면 그날의 행복은 채워지니 달리기야말로 최고의 테라피다.


오일장이 열리는 어느 날, 아이와 함께 장에 가 떡볶이와 호떡을 사서 좋아하는 바다 앞에 자리를 만들었다. 바다를 보며 함께 떡볶이를 먹고 해안도로를 달린 오후. 바다 뒤로 저무는 해를 보며 사는 동안 나를 위로하고 즐겁게 하는 몇 가지만 있어도 충분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 나를 나로 만드는 많은 것들은 오랜 시간 몸에 체득이 되어야 자연스러워진다. 그때부터는 크게 애쓰지 않아도 습관이 된 일들로 편안함의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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