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도 낯짝이 있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
작고 하찮은 벼룩조차 부끄러움을 안다면, 사람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런데 돌아보면, 나는 이 말을 부끄럽게도 무너뜨리며 살아온 것만 같습니다.
시인 윤동주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랐고,
잎새에 스치는 바람에도 마음 아파했지만,
나는 하늘을 우러러볼 용기조차 없습니다.
내 존재 자체가 부끄러움의 덩어리처럼 느껴질 때가 많기 때문이지요.
한편, 그 낯 뜨거운 순간들이 나를 조금씩 사람답게 만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은 그중 몇 가지, 지금도 마음 한구석에 남은 기억들을 꺼내보려 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었습니다.
책걸상도 없이 마룻바닥에 앉고, 가방 대신 보자기에 책을 싸 다니던 시절이었지요.
어느 날, 남들보다 조금 늦게 교실에 도착했는데 아이들은 모두 운동장으로 나가 놀고
책보들만 교실 바닥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습니다.
무슨 마음이었는지, 나는 60개가 넘는 책보를 가로 세로줄 맞춰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줄 맞추기가 거의 끝날 무렵 담임선생님께서 들어오셨고,
아주 흡족한 웃음을 띠시고 “참 잘했다”며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참 우쭐했습니다.
하지만 시작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오자
곧 교실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내 책보~~?”
“누가 내 거 여기 던진 거야?”
“이 책보 누구 거야?”
그제야 나는 내가 얼마나 엉뚱한 짓을 한 건지 깨달았습니다.
아이들에겐 각자의 자리가 있었고, 삐뚤삐뚤 놓였지만 나름대로 질서가 있었던 것이지요.
나는 그걸 무시한 채, 나만의 기준으로 ‘정리’를 해버린 겁니다.
무안해하는 내 마음을 읽으시고 선생님께서는 “괜찮다”라고 하셨지만
나는 도무지 아이들 얼굴도 선생님 얼굴도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그 부끄러움은 신발을 아무렇게 벗어두는 집사람에게 한 번도 가지런히 벗어두란 말을 하지 않아
최소한 현관 앞에서 큰소리 나는 적은 없답니다.
내 몸무게가 지금보다 12kg이나 더 나가던 시절,
아이 유치원 운동회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프로그램 중 하나로 ‘부자 함께 달리기’가 있었지요.
출발 신호와 함께 아이 손을 잡고 뛰었는데,
몇 발짝도 가지 못해 중심을 잃고 허청거리다가
그만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몸개그 제대로 보여줬지요.
아이는 꼴찌 한 것 때문인지 아빠 넘어진 게 걱정된 때문인지 앙앙 울어대고
몰려든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은 말로는 다친데 없냐 걱정했지만
입은 웃음을 참을 수 없다는 모양을 짓고 있었지요.
지금도 매일 체중계에 오르고 운동을 쉬지 않은 것은 그날 몸개그 때문이랍니다.
수원에서 영등포까지 운전해 출퇴근하던 시절,
평소 5분씩이면 통과하던 지지대고개와 안양유원지 앞이 도로 공사로
20여분씩 지체하던 때였습니다.
그 짜증스러운 구간을 겨우 벗어나 시흥대로에 진입하면 그 넓은 도로가 주차장 같았지요.
눈치, 순발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한 대라도 추월하려고 야단들이었습니다.
그날 역시 재빨리 옆차선의 빈 틈을 노려 한 대 앞으로 끼어들었는데
마침 적색신호로 바뀌었습니다.
그때 옆 차량의 창문이 열리더니, 한 중년 운전자가 나를 부릅니다.
“선생님!”
내가 '선생'인 줄 아는 사람은 동료 교사이거나 제자뿐일 텐데
동료라면 '장선생!'이지 '선생님'이라 부르진 않을 테고 그렇다면 제자인데 누굴까?
'누구지'하는 표정으로 창문을 내리고 보니
나보다 연배로 보이는 낯선 사람이 웃음 띤 표정으로
차분하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운전 정말 잘하시네요. 그런데 뒷사람이 놀라지 않게 해 주세요.”
짜증내거나 비웃거나 무례하지 않았습니다.
매우 정중하고 차분한 목소리였습니다.
'아, 에'하면서 나는 얼른 창문을 내리고 고개를 돌렸지만
얼굴이 얼마나 화끈거렸는지 모릅니다.
그분과 빨리 멀어지고 싶었지만
앞, 뒤 어디로도 빈틈이 없어 가다 서다 하면서 30여 분동 안
한 번도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나란히 갔답니다.
요즘도 운전을 하면서 가끔 그분 목소리를 기억해 내곤 합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넘어지고, 실수하고, 망신당할 때가 있겠지요.
그 순간은 부끄럽지만 그 부끄러움을 기억하는 동안은
인간다움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낯이 뜨거워지는 순간을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독자들에게 보이는 게 참 부끄럽습니다.
'수준 하고는!'하고 비웃으셔도 달게 받으렵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만이 설 수 있는 자리가
어디엔가 분명 있을 테니까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기는 어려워도,
낯 뜨거운 순간을 품고 사는 일은,
결코 부끄러운 삶이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