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
4년 전, 안과에서 황반 변성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당장 치료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영양제를 복용하며 암슬러 격자 자가 테스트를 하라는 권유를 받았지요. 처음엔 긴장감 속에 영양제를 꼬박 꼬박 챙기고 자가 테스트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몇 달간 특별한 이상이 없자 점차 소홀해지더군요.
그러던 작년 가을, 안경을 새로 맞추러 갔다가 검안사로부터 왼쪽 눈에 이상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서둘러 암슬러 격자를 확인했더니 격자가 엄청 일그러져 보이지 않겠습니까. 급히 안과를 찾았더니, 왼쪽 눈은 습성, 오른쪽은 건성 황반 변성이라 진단 내리더군요. 건성에서 시작해 습성으로 악화되는 병이라는데, 방치한 제 자신이 원망스러웠고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왼쪽 눈은 즉시 주사 치료에 들어갔습니다. 한 달 간격으로 세 차례 맞는 일정이었고, 지난주에 마지막 주사를 맞았답니다. 안구에 직접 놓는 주사였기에, 치과보다 훨씬 긴장되고 고통스러웠지요. 바늘이 눈을 찌를 때는 번갯불이 번쩍였고, 주사제가 창문에 빗물 번지듯 흘러내리는 모습이 보여 몹시 불안했습니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긴장과 두려움도 더 커졌습니다.
하지만 오늘, 시력이 90% 정도 회복됐다는 진단을 듣고 나니 그 모든 고통이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후속 치료는 내년 2월 재평가 후, 3~4개월 간격으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주기 간격이 더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스마트폰과 컴퓨터 사용을 줄이고, 자외선 차단 안경도 새로 맞췄습니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 하듯, 눈은 단순한 감각 기관이 아니라 생명을 지키고 세상을 인식하며 소통하는 창입니다.
얼마 전 주말 드라마 '다리미 패밀리'에서 시력을 잃은 주인공이 개안 수술에 8억 원이 든다는 대사가 나왔지요. 사실 여부를 떠나 그만큼 눈은 대체 불가능한 기관이라는 뜻일 겁니다.
심청전에서 심청이 아버지의 개안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이야기 역시, 효심 외에도 눈을 뜨는 일이 생명과 바꿀 만큼 소중하다는 상징으로도 읽히지요.
한편, 주사 치료를 받을 때마다 잠실까지 왕복 두 시간씩 버스를 타고 다녔습니다. 치료 후에는 눈이 아파 늘 감은 채로 왔는데, 눈을 감고 있으니 버스 엔진 소리에 집중하게 되고,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습니다.
처음 주사 맞고 오던 날, 가장 오래도록 어머니를 추억했습니다. 어머니는 생전에 뇌졸중 후유증으로 고생하셨고, 말년엔 낙상도 잦았습니다. 병증과 노화로 시력이 나빠져 그랬을 텐데, 한 번도 안과에 모시고 간 적이 없었지요. 이제서야 어머니의 그 불편함을 짐작하다니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다음으로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병이 더 악화되어 실명에 이를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러면 사물을 왜곡해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일상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겠지요. 걷기, 식사, 운전, 글쓰기—모든 것이 불가능해지는 상황. 거리에서 본 시각장애인의 모습에 내 모습이 자꾸 겹쳐 보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설마 그렇게까지 되겠어' 하고 애써 위안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골똘히 생각한 것은 ‘심안’, 즉 마음의 눈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심안이란 사람과 세상을 보는 안목입니다. 이 눈이 병들면 사물을 왜곡해서 보거나, 사람을 의심하고 도덕적 판단을 못하게 됩니다. 본질보다 브랜드 로고나 가격표에 가치를 두는 소비 습관, 빠르고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세태도 심안의 병증이라 볼 수 있습니다.
서울에 살 때는 병원이 집 앞이라 5분이면 다녀왔지만, 지금은 왕복 두 시간이 걸립니다. 불편하고 시간도 아깝지만, 이 길고 느린 시간 덕분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느림이 주는 성찰의 시간이, 빠름보다 더 값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심안이 병들면 타인을 의심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도 무너져 늘 불안 속에 살게 됩니다. 또한, 심안은 양심의 눈이기도 한데, 이 눈이 감기면 거짓과 죄스러운 행동도 서슴지 않게 됩니다.
심안을 병들게 하는 원인은 이기심, 과욕, 상처로 인한 트라우마 등일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상처를 돌아보고, 객관화하며 치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 역지사지의 마음, 감사와 용서의 태도는 심안을 맑게 하고 건강하게 살찌우는 자양분이 됩니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 한다면, '인생이 천 냥이면 심안이 구백 냥'이라 하겠습니다. 특히, 돈이나 권력, 명예를 보는 심안이 병들지 않아야 합니다. 돈과 권력의 노예가 되고, 명예라는 겉치레에 매여 자아를 잃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으로 가득한 사회 역시 크나큰 고통의 소용돌이 속에 허덕이게 될 것입니다.
건강한 눈과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이웃을 살피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이 글을 읽는 지금, 당신의 두 눈은 안녕하신가요?
그리고 당신의 심안은, 지금 무엇을 향해 열려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