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희를 맞으며 생각해 보는 것들
100세 시대라지만, 70세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여전히 쉽지 않은 고개입니다.
그럼에도 '예부터 드물다.'는 고희에 이르렀으니, 그 자체로 감사한 일이지요.
젊을 땐 늘 앞만 보고 달렸지만, 이제는 지나온 삶을 하나씩 되짚어 보게 됩니다.
웃음이 피어나고 어깨가 펴지는 순간도 있고,
고개가 숙여지고, 긴 한숨이 새어 나오는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라 생각하면,
어느 것 하나 고맙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아울러 여생에 대한 생각도 깊어집니다.
요즘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건강에 대한 것입니다.
젊을 땐 무리해도 금세 회복됐지만, 지금은 무리는 곧 병원 신세로 귀결됩니다.
그래서 조금 천천히 걷더라도 매일 걸으려 하고, 제철 채소로 소박하게 밥상을 차립니다.
밤이면 무거운 마음 내려놓고 깊이 잠드는 법을 배우려 합니다.
예전엔 건강이 내 욕심이라 여겼지만,
이젠 그것이 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시작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설악산 대청봉을 굳이 오르겠다는 친구에겐,
강바람이 시원한 화천 붕어섬 맨발길을 권했습니다.
험한 길에서 다치면 회복이 쉽지 않은 나이,
무모한 도전보다 함께 오래 걷는 삶이 더 소중하니까요.
몸을 돌아보는 일과 함께 사람도 돌아보게 됩니다.
오래된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제자에게 안부를 묻고,
텃밭에서 딴 작물을 이곳저곳으로 보내는 일도 참 설렙니다.
도서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엘리베이터 안의 짧은 인사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 합니다.
예전엔 내가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함께 어울려 사는 삶의 온기를 더 깊이 느낍니다.
서로의 삶이 부딪히며 내는 작은 파동 속에
아직도 내가 살아 있음을, 누구의 이웃으로 존재함을 실감합니다.
나이 들었다고 새로 배우지 못하는 건 아니더군요.
복지센터에서 스마트폰으로 동영상 만드는 법을 배웠습니다.
무디고 굵은 손가락으로 섬세한 작업을 하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손끝에 집중하게 됩니다.
잘하려는 마음보다는,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작은 배움을 통해 잊고 있었던 ‘나’를 만난 것 같기도 합니다.
집사람 영정 동영상을 첫 작품으로 만들어 봤습니다.
언젠가 빈소에 올릴 날을 생각하면 마음 한켠이 저릿하지만,
내 손으로 만든 것이기에 간절한 그리움으로 남을 것입니다.
이제는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쉰이나 예순에는 후회도 많았고,
되돌리고 싶은 시간 앞에서 억지를 부려보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모든 시간이 나를 빚어준 과정이었음을 압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줍니다.
그건 체념이 아니라 수용이지요.
해뜨기 전 하얗게 피어오른 물안개를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 잔,
그 소박한 시작도 오늘 내게 주어진 큰 행복입니다.
이제는 떠날 준비도 해야 할 때입니다.
언젠가 맞이할 날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도 삶의 한 부분이지요.
물건도 마음도 조금씩 정리하며,
내가 남기고 싶은 온기와 향기를 생각해 봅니다.
영혼의 세계를 깊이 상상하진 않습니다.
다만, 이 조그만 지구에서 하루살이처럼 살다 간 존재에게
조물주께서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신다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칠십은 어쩌면 총명한 정신으로 살 수 있는 마지막 시기인지도 모릅니다.
여든, 아흔까지 삶이 이어질지라도
지금 같은 맑은 정신이 남아 있으리란 보장은 없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지나온 날보다
앞으로의 하루하루가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정신이 온전한 동안,
남은 시간을 느긋하게, 깊이 있게, 사랑으로 채워가고 싶습니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나는 그 말의 뜻을 온몸으로 실감합니다.
햇살이 들어오는 아침, 한 잔의 커피 향처럼,
오늘도 천천히, 고요히,
나는 잘 익어가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