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봄솔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거나 반납할 때, 가끔 손 때문에 신경이 쓰일 때가 있어요.

대부분은 바코드를 찍어 처리하지만, 가끔 책 이름을 직접 말하며 찾아달라는 아이들이 있거든요.

그럴 땐 키보드로 도서명을 입력해야 하지요.


오랫동안 글을 써 와서 타자 치는 속도가 느린 편은 아니랍니다.

그런데 자판을 덮을 만큼 큰 손으로 타자를 치는 모습을 아이들이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볼 때가 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시선이 제 손등의 검버섯에 꽂힙니다.

"할아버지가 되면 이런 게 생긴단다."

제가 웃으며 분위기를 풀려고 말하면, 아이들도 "맞아요, 저희 할머니도 그래요." 하며 따라 웃어요.

그러면서도 눈길은 여전히 제 손등에서 떨어질 줄을 모릅니다.

타자치는 손2.JPG

이와 정반대의 장면이 문득 떠오르네요.

예전 어깨 통증으로 진료를 받으러 갔던 정형외과에서의 일입니다.

원장님의 손등은 마치 멍이 든 것처럼 시퍼래 보였어요.

자판 위에 올려진 그 손을 유심히 바라보자, 원장님이 웃으며 말씀하셨어요.

"이거요? 수술을 많이 하다 보니 이렇게 망가져요."

평생을 수술방에서 보내신 분이었고, 잦은 수술로 인해 늘 세정제를 사용하고 무영등에 노출된 결과라고 하셨어요.

손등 빛깔은 흉하게 보였지만, 그 손이 오히려 더 존경스러워 보였지요.


사실 제 손등에 검버섯이 생기기 전까지는 손에 대해 크게 신경 써 본 적이 없었어요.

손톱을 정리하거나, 피부가 너무 건조할 땐 핸드크림을 바르는 정도가 전부였지요.

남자들은 대체로 그런 편이지 않나요?

그런데 여자들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중학교 시절 일이 떠오릅니다.

어느 날 하교하고 집에 들어서는데, 첫째 여동생이 부엌에 앉아 밥상을 닦고 있었어요.

그런데 밥상 위에 자기 손을 얹은 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더라고요.

제가 들어서자 깜짝 놀라며 황급히 손을 감췄어요.

"왜 그래?" 했더니,

"내 손, 예쁘지?" 하며

숨겼던 손을 다시 높이 들어 흔들어 보이며 멋쩍게 웃었지요.

그때 처음 알았어요. 여자아이들이 손에 신경을 쓴다는 걸요.


중학교 때 기차 통학을 했는데, 가끔 옆자리에 여학생이 앉을 때가 있었어요.

대부분 책가방을 무릎 위에 두고, 그 위에 가지런히 손을 얹은 채 앉아 있곤 했지요.

자연스럽게 시선이 손으로 향하게 되더라고요.

얼굴보다 손이 더 희고 예쁜 아이도 있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지요.

부드럽고 포근해 보이는 손이면, 살며시 잡아 보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했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런 생각을 품었던 적이 여러 번 있었지요.

여학생의 손.JPG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여자아이와 사귀었어요.

학기 초부터 친해졌지만, 늦가을이 되도록 손 한 번 못 잡았지요.

어느 토요일 오후, 낙동강 둑길을 함께 걷던 날이 아직도 생생해요.

바람이 제법 쌀쌀했지요. 팔짱을 끼거나 어깨를 감싸 안고 싶었지만, 엄두를 못 냈지요.

그저 손이라도 잡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지요.

어깨를 맞대고 걷다가, 용기를 모아 손끝을 아이 손에 살짝 가까이 댔어요.

몇 번 스치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말했어요.

"손, 시리지?"

조심스럽게 손을 잡았습니다.

그 아이는 "아, 추워" 하며 제 팔을 감싸 안았어요.

기차 안에서 잡고 싶었던 그 손이, 제 손 안에 있었지요.


초등학교 시절에 본, 결코 잊을 수 없는 손 그림도 있어요.

‘일일부독서(一日不讀書) 구중생형극(口中生荊棘)’이라 쓴 족자에 찍혀 있던, 손가락 끝이 없는 손 그림이었지요.

처음엔 왜 손가락 끝이 안 찍혔는지 궁금했어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의병 활동 중, ‘동의단지회’를 결성해 왼손 약지 끝마디를 자르고, 그 피로 태극기에 ‘大韓獨立’이라 썼다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그 손이 얼마나 위대한 손인지 어린 마음에도 깊은 울림이 남았던 기억이 납니다.


일일부독서.JPG


이제 저도 나이가 들어, 손등에 검버섯이 자리 잡고

아이들의 시선에 민감해질 만큼 세월을 느낍니다.

그래도 여전히, 제 손이 어떤 떨림으로 누구의 손을 잡게 될지,

또 어떤 일을 하며 손마디가 굵어져 갈지는 알 수는 없지요.

하지만 분명한 바람 하나는 있습니다.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손, 그런 손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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