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감각 키우기2

- '여기'에 대하여

by 봄솔
출처 예지몽 네이버블로그

어떤 가수는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고 노래한다. 미래에서 오늘을 바라보면 분명 가장 젊은 순간일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서 보면 오늘은 또 가장 늙은 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오늘을 ‘젊다’고 느끼는 이유는 단순하다. 앞으로 더 나아갈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믿음, 그 희망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때문이다. 나는 이 ‘가능성을 느끼는 마음’을 행복을 키우는 첫 번째 방법으로 삼고 있다. 우리가 서 있는 오늘을 밝히는 것은 나이의 절대치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부터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감각이기 때문이다.


행복의 두 번째 방법은 장소를 대하는 태도에 있다. 사람은 종종 이국의 낭만이나 먼 곳의 이상향을 상상하며 살지만, 어디만을 바라보다 보면 정작 발 딛고 있는 ‘여기’를 잃어버리기 쉽다. 마음의 갈증은 그렇게 끝없이 자라난다. 동화 『파랑새』의 남매가 그랬듯 행복은 멀리 있는 신비가 아니라 가까운 친숙함 속에 숨을 쉬고 있고, ‘아나빠나사띠’ 명상이 가르치듯 들숨과 날숨이라는 가장 단순한 호흡에도 평화는 깃들어 있다. 동화도, 명상도 결국 같은 이야기를 전한다. 우리가 찾는 행복은 이미 우리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 끝에 나는 내가 서 있는 ‘여기’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춘천 외곽 신북읍, 소양강댐 아래 자리한 작은 마을. 앞에는 잔잔히 흐르는 강이 있고, 뒤로는 마적산이 병풍처럼 서 있다. 회색 건물이 앞을 막던 도시의 풍경과 달리, 이곳에서는 계절마다 선명한 솔숲이 시야를 열어 주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낮에는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눈을 맑게 하고, 밤이면 별빛이 머리 위에서 소곤거린다. 계절이 바뀌면 꿩, 소쩍새, 풀벌레가 차례로 등장해 소리를 나누니 귀는 늘 새롭다.


이 마을에서의 생활은 자연이 주는 감각적 선물들로 가득하다. 소양강변을 걷다 보면 “아, 여긴 숨을 쉴 수 있는 곳이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강가의 바람은 묵은 생각을 밀어내고, 전망대에서 외치는 ‘야호’는 산령의 속삭임처럼 메아리로 돌아온다. 마을 주변의 논밭은 작은 텃밭이 되어 3월부터 11월까지 생명의 변화를 보여 준다. 싹이 오르고 잎이 넓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떤 시보다 감동적이고, 들꽃이 피어나는 순간은 작은 미술관이 문을 여는 듯하다.


일상의 리듬도 이곳에서는 자연스럽다. 집에서 몇 걸음만 옮기면 마적산과 빙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고, 소양강댐으로 향하는 길도 열린다. 마적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마음을 환하게 비우고, 빙산 초입의 소나무 숲은 넉넉한 품으로 사람을 맞아준다. 지칠 때면 가마골 생태공원에서 한참을 머문다. 나무와 물의 고요함 속에서 마음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온다.


여기서 양구, 인제, 속초로 이어지는 길은 계절마다 새로운 얼굴을 보여 준다. 터널을 지날 때마다 바뀌는 풍경은 한 장면씩 넘겨지는 파노라마 같다. 예전에는 속초나 설악산을 떠올리면 고속도로 정체가 먼저 떠올랐지만, 지금은 그곳에 닿기까지의 여정 자체가 여행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 되었다.


물론 ‘여기’가 완벽해서 이런 감정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겨울은 춥고 길며, 생활 편의시설은 멀다. 문화생활의 선택지도 그리 넉넉지 않다. 때로는 어울릴 사람이 마땅치 않아 외로움이 스며들기도 한다. 다른 지역을 떠올리며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다. 하지만 어느 곳을 상상하더라도, 이 마을이 선물하는 자연의 호사와 고요함을 그대로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어느 곳을 선택하든 장점과 아쉬움은 함께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어디’를 바라보며 지금의 ‘여기’를 놓칠 것인가,
아니면 눈앞의 ‘여기’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누리며 살 것인가.

마음의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같은 풍경도 다른 빛을 품는다. 지리적 위치와 상관없이,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자리가 삶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는 오늘, 내가 서 있는 이 ‘여기’를 사랑하기로 했다. 마음에 꽃이 피는 순간, 소양강댐의 벚꽃길은 더 환해 보일 것이고, 마음 맞는 이와 함께 바라본 설악의 설경은 어떤 먼 산의 설경보다 더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언제나, 지금 여기에서 조용히 우리와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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