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이자 우리 텃밭 가장자리에 커다란 살구나무가 한 그루 있다. 알이 꽤나 큰 살구가 열리는 나무라, 탐스럽게 익어 떨어지면 이웃들이 하나둘 주워가기도 하고, 우리 가족도 그 열매로 살구잼을 만들곤 했다. 또 여름이면 이곳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좋은 쉼터도 되었다. 작년 가을에 돌아가시긴 했지만 밭 앞집의 할아버지는 여름날 오후엔 으레 이 살구나무 그늘에 앉아 쉬곤 하셨다. 조용히 나무 아래 앉아 멀거니 큰길을 바라보시던 할아버지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문제는 살구나무 그늘이 우리 텃밭 작물 생육에 지장을 준다는 점이다. 햇볕이 모자라 작물들이 잘 자라지 못했다. 처음에는 나무를 통째로 베어낼까도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 이곳을 지켜온 나무를 없애자니 마음이 아팠다. 결국 텃밭 쪽으로 뻗은 큰 둥치 하나를 잘라내기로 했다. 톱날에 잘려 그 큰 둥치가 땅으로 떨어지며 내는 ‘쿵’하는 소리는 마치 나무의 비명 같았다.
이 살구나무는 사십여 년 전에 할아버지의 둘째 아들이 심은 것이라 했다. 나무를 자르기 전에 그에게 농작물 피해에 관해 이야기하며 베어야겠다고 했더니, 자기가 심은 것이 맞지만 남의 땅에 심은 것이니 마음대로 하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무에만 미안했지 다른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전, 오랜만에 만난 할아버지의 첫째 아들과의 대화에서 예상치 못한 감정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는 내가 가지를 자른 이유와 상황은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가능하면 그냥 두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아쉬워했다. 그의 말에는 단순한 아쉬움 이상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는 가지가 잘려 초라해진 살구나무의 모습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의 건장하던 아버지 모습이 아니라, 말년에 병약하여 힘없이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모습과 닮아 보인다는 말에 나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들이 이 텃밭을 경작하던 시절, 살구나무를 집의 상징처럼 여겼다고 한다. 부모님을 뵈러 올 때마다 푸르게 잎을 달고 있는 살구나무를 멀리서 보면, 마치 부모님이 건강하게 잘 계신 것 같은 안도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나무가 한쪽 가지를 잃은 모습으로 남아 있으니, 병상에 계시던 아버지의 모습만 떠오른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후, 나는 단지 나무에 미안한 마음만 가졌던 것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은, 나무를 중심으로 얽혀 있는 사람들의 감정과 추억, 삶의 시간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 더 미안스러웠다. 그 나무는 이들 가족의 삶과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린 존재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잎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것 이상으로, 삶의 기억을 품고 자라는 살아 있는 상징이었던 셈이다.
그 어름에 내 고향 의성에 대형 산불이 났다는 보도가 연일 이어졌다. 나의 유년 시절의 전부였던 교회가 불길에 휩싸이고 5학년 때 소풍으로 처음 가봤던 고찰 고운사도 화마에 휩싸이고 있었다. 그런 건물이 타는 것도 안타까웠지만 동구 밖 팔구 나무, 아직도 옛집을 지키고 있는 감나무, 탱자나무들이 깡그리 타고 있어 더욱 안타까웠다. 타버린 나무들과 함께 내 안에 간직해 온 시간과 추억들, 그리고 우리 가족의 온기가 모두 사라지는 것 같았다.
집사람은 살구나무 둥치를 베어낸 벌을 톡톡히 받는 셈이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했지만 나는 그게 사실처럼 여겨졌다.
* 이 글은 '문학고을' 응모, 당선된 수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