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성 대형 산불이 내게 준 아픔
우리 집 식탁이 달라진 건 아내가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은 뒤부터다.
“야채는 무제한, 과일은 적당히, 곡물은 조금만.”
의사의 당부 이후, 아침마다 커다란 볼에 야채를 듬뿍 담고 견과와 과일을 조금씩 얹은 뒤, 우유와 요거트를 부어 비벼 먹는 식단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예전에는 따뜻한 밥 냄새가 하루를 열었다면, 이제는 차갑고 맑은 채소의 향이 아침을 채운다. 익숙한 맛보다 건강을 우선한 지 오래다.
그런데 오늘 아침, 그 볼 안에서 뜻밖의 옛 맛이 되살아났다.
단감이었다. 선물로 들어온 감 몇 조각을 아내가 잘라 넣은 것이다.
어릴 적 가장 많이 먹었던 과일이 감이었다. 살구와 감, 그 두 가지만으로 계절을 알았던 시절. 하지만 나이가 들며 감은 자연스레 식탁에서 멀어졌다. 속이 더부룩해 굳이 찾지 않게 된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고향을 떠나면서 감나무와 함께한 시간이 점점 희미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고향 집 마당 가장자리에 거대한 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6·25 전쟁 당시 폭격을 맞아 밑동 일부가 타기도 했지만, 가지는 마당과 담장 너머 이웃집 마당까지 너울거리며 뻗어 있었다. 집집마다 한두 그루씩 감나무를 키웠으니 사실 특별할 것도 없었다. 가을이면 온 마을이 붉은 감빛으로 물들곤 했으니 말이다. 여기 춘천에도 감나무가 없지는 않지만, 고향의 나무들처럼 우람한 기세는 없다. 키도 낮고 가지도 앙상하여 '아, 감나무구나!'하며 감탄하는 게 아니라 '감나무네'하고 아쉬워하게 된다.
고향 집 감나무는 내 어린 시절의 놀이터였다.
가지에 올라앉아 노래도 부르고, 책도 읽고, 하모니카도 불었다. 매미를 잡고, 높은 가지에 몸을 기대 바람에 흔들리며 해먹에 누운 듯한 기분을 즐기기도 했다. 동생들은 나를 부러운 눈으로 올려다보곤 했다.
감나무는 계절마다 다른 간식을 내게 주었다. 감꽃, 땡감, 담은 감, 홍시.
봄이면 떨어진 감꽃을 주워 실에 꿰어 벽에 걸었다. 며칠 지나면 수분이 빠지며 은근한 단맛이 생겼다. 눈깔사탕 하나도 귀하던 시절, 말린 감꽃은 훌륭한 주전부리였다.
여름이면 땡감이 주렁주렁 달렸다. 떫어 바로 먹을 수는 없지만, 낙과를 주워 며칠 삭히면 아린 맛이 빠지고 달착지근해진다. 그 맛을 아는 아이들은 떨어지는 소리를 놓칠 리 없었다. 밤에도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면 윗집 친구 상익이와 나는 경쟁적으로 초롱불을 들고 자갈길을 더듬었다. 주워온 감은 동생들 눈에 띄지 않게 선반 높은 곳에 숨겨 두었다가 며칠 삭힌 뒤 혼자 몰래 먹곤 했다.
가을이 깊어져 학교 운동회가 가까워지면 감이 누렇게 익기 시작한다.
잘 익은 감을 골라 따서 운동회 도시락과 곶감 만들 준비를 했다. 단감이 아니어서 익어도 떫은맛이 남아 있었지만, 감을 항아리에 차곡차곡 넣고 끓인 소금물을 부은 뒤 아랫목에 하룻밤 재우면 아삭하고 달콤한 맛으로 변신했다. 운동회날 점심시간, 삶은 고구마와 함께 먹던 그 맛은 지금도 혀끝에 남아 있다.
늦가을까지 나무에 달려 있는 감은 새빨간 홍시가 된다.
따다가 떨어뜨리면 흙투성이가 되니, 장대 끝에 올가미를 단 도구로 조심스레 따야 했다. 나무 타기에는 자신 있었지만 맨 꼭대기 가지 끝의 감만큼은 끝내 닿지 않아 그냥 두었다. 어른들은 그것을 ‘까치밥’이라 불렀다. 까치를 위한 인심이라고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마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자연의 몫이었을 것이다.
홍시와 곶감은 겨우내 우리 가족의 작은 간식이 되어 주었다.
이런 이야기들을 언젠가 아내에게 들려준 적이 있다.
감꽃을 꿰어 말려 먹고, 낙과를 삭혀 먹던 일, 홍시를 딸 때의 아슬아슬함까지. 그러나 도시에서 자란 아내에게는 마치 오래전 설화처럼 들렸는지,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 모든 장면은 이제 내 기억 속에서만 가까스로 숨 쉬고 있다.
올해 봄, 대형 산불로 고향 집과 감나무가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고향을 지키고 있던 사촌 형이 전화를 걸어왔다. “집이, 교회가… 다 탔다.”
나는 가장 먼저 감나무를 물었다. “우리 집 감나무도…?”
형은 한동안 말이 없더니, “남은 게 없어. 하나도…”라고 힘없이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여름밤 땡감이 떨어지던 ‘툭’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 소리는 귀가 아니라 가슴을 울렸다.
오늘 아침 식탁의 단감 한 조각이, 사라진 그 감나무를 다시 데리고 왔다.
나는 감을 천천히 씹었다. 오래 잊고 있던 옛 맛을 되찾으려 했지만, 단맛보다 먼저 입안에 스며든 것은 잿빛 냄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