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발리여행(9-2)

25년 7월 25일

by moonconmong
20250725_120805.jpg 멘장안 애니멀포인트

비행기에서 내려 발리 땅을 밟으니 벌써 여행 둘째 날. 돈 인출하고 화장실 다녀오니 가이드가 때마침 왓츠앱으로 연락이 왔다. 그래서 바로 만나 로비나로 이동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3-4시간을 차를 타고 가서 새벽 5시에 미친 사람들처럼 바다에 뛰어드는 게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오늘 가지 않으면, 다른 날 새벽 2-3시에 일어나서 가야 하는데, 그러면 더 힘들 것 같았고, 그러면 가지 말지 왜 가? 할 수 있지만, 또 안 보면 서운할 것 같고. 이러다 보니 결국 극기훈련이 된다.


발리 공항에서 로비나까지 3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면서 미친 듯이 잤지만, 차에서 자니 자도 자도 피곤하다. 새벽 4시 넘어 로비나에 도착했지만, 여전히 헤드뱅잉을 하면서 졸고 있느라 5시 30분 정도까지 자버렸다. 원래 오전 5시에는 배를 타고 나가야 좋은 자리를 선점할 수 있다고 했는데, 결국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배를 타니 오전 6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곳이 있는데 이곳이 레스토랑이다 보니 레스토랑을 이용하지 않는 손님들에게는 약간의 돈을 받고 있었다. 깔끔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급한 사람이 우물을 파는 거지. 드디어 배를 탔다. 체감상으로는 10-20분 정도 배를 탄 것 같다. 돌고래가 출몰하는 쪽 바다로 가면 배들이 정말 빽빽하게 옹기종기 모여져 있다. 그러다 보니 돌고래보다 배를 탄 사람들이 더 많다.


20250725_063852.jpg 로비나 돌고래 떼를 보기 위한 배들


돌고래 떼가 점프를 하면 갑자기 배들이 부아앙~ 하면서 이동한다. 여기서 나오면 부아앙~ 저기서 나오면 부아앙~ 벌떼같이 달려드는 통에 돌고래 떼가 수영하는 길을 막기도 하다 보니 돌고래는 더 금방 사라졌다. 돌고래들도 피곤해 보인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바다 위에서만 점프하는 모습을 보는 게 살짝 아쉬워 결국 새벽 바다에 들어갔다. 생각보다 차갑지 않아서 안도했지만, 배에 계단처럼 붙어있는 막대를 잡고 물속을 바라본다. 새벽에 준비하다 보니 스노클링 대롱도 준비하지 못하고 안티포그도 못 발랐더니 마스크에 계속 성에가 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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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조건 속에서도 보겠다고 열심히 고개를 들이밀었지만 결국 돌고래 떼가 근처에 오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찰나, 갑자기 다리와 발이 너무 따갑고 간지러워서 도무지 버틸 수가 없어서 급하게 올라왔다. 올라와서 보니 해파리가 잔뜩 쏴서 다리와 발이 붉그족족했다. 양다리가 다 그래서 '아 따가워 아 따가워~ 이놈의 다리'를 연발하다 다른 배들이 섬으로 하나둘씩 돌아가는 걸 본 후, 우리도 돌아가기로 했다.

20250725_064255.jpg 로비나 선라이즈

하도 따가워서 챗GPT를 돌려보니 무서운 이야기만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깨끗한 물로 씻어내는 게 전부라 어떻게 해야 하나 했는데 다행히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나아져서 아침이나 먹으러 가기로 했다. 깔끔해 보이는 작은 식당으로 가이드가 우리를 안내했고 우리는 아메리칸 브랙퍼스트를 먹었다. 발리식 커피가 같이 나왔는데 다 마시고 나니 아래 검은색 커피가루가 그대로 있는 게 아닌가? 이게 뭔가~ 했더니, 발리식 커피는 곱게 간 커피가루를 컵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시는 방식이라 커피가루가 그대로 남아있는 게 특징이라는 데 아메리카노에 익숙한 내게는 마실수록 텁텁한 게 답답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배가 고프니 그럭저럭 먹고 멘장안으로 이동했다.


20250725_110224.jpg 원숭이 물병 도둑

로비나에서 멘장안을 가는 데도 또 3시간 정도가 걸린다. 발리가 제주도의 3배 면적이라는 게 이제야 실감이 간다. 차는 열심히 달리고 내 머리는 또다시 헤드뱅잉 하고 젖은 몸 상태에서 대충 샤워하고 차를 타고 가니 더 졸린 듯하다. 드디어 멘장안에 도착했다. 맹그로브 숲이 둘러싸고 있고 원숭이가 맹그로브 숲이 제집인 냥 요리조리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물을 마시려고 물병을 손에 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원숭이가 물병을 확 낚아채갔다. 너무 순식간의 일이라 놀라서 쳐다보는데 물을 마시려는 건 아니고 물병을 가지고 장난치려고 했던 것 같다. 발리의 원숭이들은 가끔씩은 물기도 한다는 데 조심해야겠다.


20250725_112545.jpg 우리만의 프라이빗 보트

보트들이 주~욱 세워져 있는데 우리는 그중 가장 허름한, 그래도 우리만의 프라이빗 보트를 타고 가이드와 스노클링을 나간다. 두 번의 스노클링과 두 번의 스노클링 사이에 점심이 제공되는 일정이다. 첫 번째 스노클링은 맹그로브 포인트. 약 45분 정도를 핀질을 해가며 스노클링을 하는데 파도는 잔잔하고 조류를 타고 가니 힘들지 않지만, 잠을 잘 못 자서 그런지 몸은 기진맥진. 세부에서 스쿠버다이빙하면서 봤던 그런 바다 환경에서 가이드 따라 스노클링을 하는 기분이다. 그래도 아침에 제대로 못 본 돌고래 대신 첫 번째 스노클링에서는 블랙팁 상어를 봤다. 스노클링으로는 보기 힘든 놈인데 운이 좋았다.

멘장안이 산호가 예쁘기로 유명한데 역시 틀린 말은 아니었다. 위에서 봐도 잘 형성된 산호가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었다. 스노클링을 하다 보니 프리다이빙을 하는 그룹도 보이고 스노클링, 스쿠버다이빙으로 유명한 곳이기는 한가 보다. 작은 열대어들 보는 재미도 있고. 45분 가까이 스노클링을 하니 초6인 둘째 아들이 조금 힘들어했지만, 그래도 잘 버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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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이 살고 있는 애니멀 포인트에서 점심을 먹는다. 무인도 섬인데, 이렇게 스노클링을 한 후, 중간에 휴식을 취하거나 점심을 먹는 용도로 사람들이 들렀다가는 곳이다. '멘장안'이 '사슴'이라는 뜻인데 여기 있는 사슴들 덕에 멘장안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이 작은, 열 걸음 가면 끝나는 손바닥만 한 작은 섬에 사슴 2~3마리가 산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이 척박한 곳에서 무엇을 먹으며 살아갈까. 발리에 한국인들이 많지만 특이하게도 멘장안에서 점심 먹을 때는 다 비키니를 입은 서양인들만 보인다. 나만 덕지덕지 가린 느낌이라 지금이라도 벗어야 하나? 란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화장실은 살짝 가보고 싶었지만 안 봐도 상태를 알 것 같아서 밥도 조금 먹었다. 밥은 스노클링 진행해 주는 가이드가 준비한 도시락이고 메뉴는 앞으로의 여행에서 거의 매일 맛볼 볶음밥이다.

20250725_121651.jpg 사슴 여기 있어요!

식사 후, 애니멀포인트에 앉아있으니 세부나 말레이시아, 더 오래전으로 올라가면 호주에서 다이빙 나갔다가 또는 스노클링 후 중간에 쉬었던 섬들과 분위기가 굉장히 비슷하다. 사슴만 제외하면. 하얗고 고운 모래, 작렬하는 태양, 주위에 보이는 투명한 바다 이제야 내가 여행온 게 실감이 났다. 그런데 막상 태양은 이글이글 타오르지만 막상 있다 보니 추워서 두 번째 스노클링은 좀 짧게 진행하기로 한다.


시야가 안 좋아서 원래 들어가려던 터틀포인트에서 ellgarden으로 들어갔는데 거기도 시야는 평소대비 좋지 않지만 커틀피쉬(CuttleFish)와 거북이를 2마리나 봤으니 그래도 이번 목표는 성공! 멘장안에서 대충 물 샤워 후, 바투르로 이동하는데 4시간이나 걸린다. 오늘은 거의 차를 10시간이나 타버렸다. 그래도 가야지.

IMG_6179.JPG 멘장안 거북이

저녁 무렵에 바투르에 도착했는데 바투르산이 있다 보니 전체적으로 고지대인데 내가 잡은 숙소는 정말 높은 곳에 있다 보니 좁은 2차선 도로를 계속 달리는데 니 차선, 내 차선 구분 없이 서로 추월하느라 정신이 없다. 게다가 안개가 잔뜩 껴서 영화 <로스트 히이웨이>를 찍을 판인데 추월까지 하니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을까, 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짙은 안개로 엄청나게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숙소 근처에 가게가 없다고 해서 들어가기 전에 맥주를 사려고 마트에 들렀는데 마트에서 맥주를 안 팔았다. 역시 이슬람교. 발리는 힌두교가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슬람 문화 영향권에 있다 보니 작은 마트에서는 술을 안 팔았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맞은편에 판다길래 가보니 완전 동네 구멍가게 같은 곳에서 빈땅 500mm를 40루피아에 팔고 있었다. 두 병 사서 숙소에 체크인했다.


낼은 우리가 다시 바투르에서 우붓을 가야 해서 오늘 왔던 가이드한테 혹시 시간 되는지 물어보니 가능하다고 해서 가격을 물어보니 가이드가 '헌드레드'라고 말했다. 그런데 보통 바투르-우붓은 택시를 타도 300루피아 정도는 나오는 곳이라 나는 혼자 '싸우전드'로 생각했고 내가 비싸다고, 500루피아를 제안하니 가이드가 바로 오케이를 외쳤다. 뭔가 싸했다~ 왜 이렇게 바로 흥정이 되지? 그래서 이상하다 했는데 옆에 있던 신랑이 가이드가 '헌드레드'라고 했다고 하는 거다. 음... 그런데 그렇게 쌀 수가 없거든. 곰곰이 생각해 보니 '포 헌드레드'라고 한 게 아닐까? 하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 나 호구당한 거네. 400루피아 달라는 사람한테 500을 준다고 했으니 땡큐! 를 외쳤지. 찜찜했지만, 다행인 건지, 불행인 건지 다음 날 이 가이드는 노쇼를 했다. 그래서 결국 택시를 부른 건 안 비밀.


우리가 투숙한 바투르 마운틴 뷰 호텔은 이름이 the kayuan으로 바뀌었지만, 구글에 검색을 해도 여전히 옛날 이름이 계속 검색이 된다. 그러다보니 사진은 같은 두 개의 호텔이 검색되어 혼란을 주는 데 이름은 달라도 다 실제 있는 호텔이니 너무 걱정 마시길. 바투르 마운틴 뷰 호텔은 가족이 운영하는 호텔인데 방 개수가 10개 정도 되는 작은 호텔이다. 방개수는 작은 반면, 방 크기는 어마어마하게 커서 전체적인 호텔부지는 꽤 넓다. 처음 지었을 때는 뷰도 좋고 시설도 좋았겠지만, 이제는 너무 낡았고 리모델링은 못하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방 상태는 아쉬웠다. 방 2개를 예약했는데 가파른 계단을 걸어 내려가야해서 고민하는 찰나 다행히 짐을 가져다 주었다. 방 2개를 안내해주는데 방 하나의 문이 잘 안 닫혀서 결국 다른 방을 안내받았다. 배정받은 우리 방은 문에 금이 가있고 미닫이 문인데 한쪽으로 닫으면 다른 한쪽이 열리고 걸레인지, 수건인지 모를 수건을 주는 등 전반적으로 시설이 노후화되었다.


그래도 피곤하고 배고프고 게다가 48시간만에 방에 눕다보니 그저 감지덕지했다. 빨리 저녁을 먹고 쉬기위해 호텔 식당에서 저녁을 주문했는데 나시고렝, 치킨버거, 치킨케밥 등 나름 메뉴는 서양식부터 인도네시아식까지 다양해서 가지가지 주문했는데 30분은 더 기다린 듯 싶다. 게다가 맛도… 그래도 이미 기대가 없었던 터라 대충 때우고 방으로 들어왔다. 젖은 장비를 정리하고 샤워를 하니 거의 10시였다. 이 호텔에는 에어컨이 없는데 지대가 높다보니 신기하게 안더웠다.


자기 전에 시원한 맥주 한잔하고 자려했건만. 예상외로 호텔에 냉장고가 없어서 미지근한 맥주라도 마시려고 하는데 신랑이 오프너가 없다며 맥주 두 병을 세워서 따려다 호텔 바닥을 맥주탕으로 만들었다. 역시, 오늘의 일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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