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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이온 Jun 20. 2021

윤리학, 선과 악을 묻다

선과 악, 옳고 그름에 대한 학문

 철학에는 대단히 다양한 분야가 존재합니다. 철학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학문의 역사만 따져도 그 깊이와 양을 헤아리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그것이 철학이라면, 몇 가지 대표적인 분야들로 나뉩니다.


 첫째는 형이상학입니다. 형이상학은 존재와 비존재를 탐구하는 분야입니다. 형이상학은 주로 추상화된 보편적 개념을 탐구하려 합니다.

다리가 없는 의자도 의자일까요? 보편적이고 추상화된 의자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형이상학적 고찰입니다.

 둘째는 논리학입니다. 논리학은 참과 거짓을 탐구합니다. 논리학은 주로 올바른 추론 규칙, 형식적인 타당성 그 자체만을 탐구하고자 합니다.


기초논리학에서 배우는 후건부정 규칙


 셋째는 인식론입니다. 인식론은 지식에 대해 탐구합니다. 어떠한 조건을 갖추어야 온전한 지식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름지기 지식이라면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지식이 될 수 있는지를 탐구합니다.


플라톤 이래로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온 지식의 3가지 조건. 지식은 정당화된 참인 믿음으로 정의되어왔다.


 넷째는 신학입니다. 신학은 경건과 불경을 다룹니다. 도대체 인간의 어떤 행동을 경건하다고 볼 수 있을지, 불경스러운 행동은 어째서 불경스러운지, 신과 경건은 어떤 관계에 놓여있는지를 대단히 밀도 있게 탐구합니다.


경건은 무엇이며 불경은 무엇일까요? 어떠한 태도가 신앙에 부합하는 태도이며, 무엇이 신을 만족시킬 수 있는 행동일까요?


 그리고 마지막 다섯째는 이번 글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는 윤리학입니다. 윤리학은 선과 악을 따집니다. 인류의 철학은 동서를 막론하고 윤리학의 시작과 대단히 밀접하게 이어져 있으며, 윤리학에 대한 잘못된 연구, 혹은 윤리학에 대한 소홀한 태도는 인류 역사에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비극을 낳았습니다. 선과 악에 대한 질문은 옳고 그름이 무엇이냐는 질문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으며, 선과 악에 대한 논증은 이후에 전개될 당위 명제를 도출하고 정의론을 구축하는 작업과 밀접하게 이어지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 심도 있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중들을 위해 윤리학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너무 복잡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으니 윤리학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질문인 선과 악에 대한 질문을 소개해드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듯합니다.


 사실 윤리학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은 선과 악에 대한 질문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음과 같은 명제에 대한 판단으로 윤리학을 시작해봅시다.


 "실의에 빠져 있는 친구에게 위로를 해주는 일은 옳다."


 이 문장은 명백히 옳다는 술어로 끝납니다. 따라서 선에 대한 윤리학적 판단을 요구하는 문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의 문장은 어떨까요?



 "살인은 옳지 못하다."


 이 문장 역시 명백히 옳지 못하다는 술어로 끝납니다. 이 문장은 위의 문장과는 달리 악에 대한 윤리학적 판단을 요구하는 문장입니다.


 위에서 말한 옳다와 옳지 않다, 즉 선하다거나 악하다는 말은 그 진술이 벌써 윤리학적 판단을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윤리학이라고 하면 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인류는 문명을 시작한 이래로 윤리에 대한 다양한 사고를 축적해왔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옳음과 옳지 않음을 둘러싼 여러 질문들과 절대 따로 떨어져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루 동안에도 수많은 윤리적 판단을 하게 됩니다. 지하철 역에서 굶주리고 있는 노숙자분께 기부하는 것은 옳은 일일까? 떠돌아다니는 길고양이에게 밥을 사주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일까? 지금 내가 월세를 내기도 벅찬데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지 않는 것은 악한 일일까? 사실 이러한 질문들은 모두 사소해 보이지만 윤리학적 판단을 요구하는 인간의 대단히 기본적이고 경이로운 활동능력 덕분에 제기될 수 있는 물음들입니다.


맹자 그림. 그의 사단칠정론은 공자 이래로 동양의 윤리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큰 통찰을 남겼다.

 

이러한 인간의 윤리적 능력, 맹자의 말을 따르자면 사단칠정, 칸트의 말을 따르자면 이성에서 비롯된 타고난 인간만의 윤리학적 판단능력은 우리 삶에 잠재되어 있는 소소한 물음들을 답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역할을 수행하지만 인류가 혼란한 시기를 겪을 때가 되면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 인간세상이 혼란스러워지면 혼란스러워질수록 악한 행위에 대한 철학적이고 진지한 고찰이 요구됐고, 실제로 춘추전국시대, 2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난세에는 여러 가지 윤리학에 대한 폭발적인 담론들이 발전했습니다. 공자는 인의예지를 중시하는 삶을 옳은 삶으로, 소크라테스는 진리를 추구하는 삶을 옳은 삶으로, 예수는 만인을 사랑하는 삶을 옳은 삶으로 선언하며 윤리학의 화려한 시작을 알렸으며 이들 성인들의 윤리학적 선언은 현대에 이르러 칸트, 롤스, 기타 헤아릴 수도 없는 수많은 위대한 윤리학으로 이어지며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폐허가 된 독일


 위에서 간단한 윤리학적 문장들로 스타트를 끊었으니 이제는 좀 더 심도 있는 문장, 실제로 인류를 오랜 기간 괴롭혀온 윤리학적 문장들을 제시해보겠습니다.


"인종차별은 어째서 옳지 않은가?(어째서 옳지 않은가?라는 질문은 이미 옳지 않음을 전제합니다.)"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일은 옳은가?"


"원자폭탄을 규제함은 옳지 않은가?"


"대마초 규제를 철폐하는 일은 옳은가?"


"인간이 하루 8시간만 노동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


"전쟁에서 민간인을 학살하는 일은 어째서 옳지 않은가?"


"인간이 모든 옳은 행동의 준칙으로 삼아야 하는 보편적인 도덕 법칙이 존재하는가?"


"국가의 발전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것은 옳은가? 옳지 않은가?"


 위에서  "실의에 빠져 있는 친구에게 위로를 해주는 일은 옳다."라는 소소한 윤리적 판단을 요구하는 문장에서 시작했지만,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이렇듯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다양한 윤리적 판단으로 확장됐습니다. 무엇이 옳은 일일까요? 무엇이 옳지 않은 일일까요? 선과 악을 판별하는 기준은 무엇이며 인간이 과연 선과 악을 알 수는 있을까요? 


 그리고 윤리학적 질문인 옳음과 그름, 선과 악에 대한 질문이 확장되면 소위 말하는 정의론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정의론은 정치철학에서 다루는 핵심 질문입니다. 정의론의 핵심 질문이란, 정의와 불의가 무엇인가입니다. 고대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위대한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정치학>보다 먼저 저술한 이유를 설명할 때, 애초에 옳고 그름에 대한 질문이 먼저 해결된 이후에야 정의에 대한 질문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점을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의 제자인 그는 스승의 사고체계와는 반대되는 유명론적 경험주의를 제창했으며, 그의 윤리학은 현대에 이르러 공동체주의로 부활했다.


이렇듯 윤리학적 질문은 그 시작은 사소할지라도 확장될 때는 무궁무진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은 윤리학에 대한 일말의 고찰도 하지 않았던 탓에 다양한 문제들을 만들었습니다. 우생학을 과학으로 정당화하려 했고, 윤리에 대한 일말의 고찰도 없이 인종차별을 정당화하고자 머리를 싸매고 연구에 몰두하기도 했으며, 무분별한 생체실험과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과학에 대한 지식욕은 명백히 윤리학적 질문인 선과 악에 대한 물음을 전제로 해소되어야만 합니다.


 공자와 소크라테스 이래로 체계화되기 시작한 선과 악에 대한 물음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고, 인류가 멸망하는 그 시점까지 쉬지 않고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며 이 글을 보시는 독자분들 스스로도 본인의 삶을 좀 더 선하게 이끌어가기 위해, 나아가 세상을 이루는 구성원으로서 사회를 선하게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할 고민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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