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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이온 Apr 30. 2021

미학, 아름다움을 묻다

미와 추는 무엇인가

1. 미학과 미술의 관계 소개

 여러분은 미학이 어떤 학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미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똑부러지게 말하기는 힘들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비전공자로서 감히 대답하기는 힘들지만 최소한 수업에서 배운 내용으로만 말해보자면 아름다움을 분석하는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미학과 미술은 각각 고대 그리스에서 파생됐다고 합니다. 미학은 아르스, 미술은 테크네라는 용어에서 비롯됐습니다. 둘 다 미에 대해 다루는 것 같기는 합니다만, 둘이 어떤 측면에서 다르기에 분화된걸까요? 바로 미학은 지성을 사용하는 철학의 영역이고 미술은 손으로 직접 제작하는 기술의 영역이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물론 이러한 간단한 구분이 미학과 미술을 완벽하게 분석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논의를 위해 이 관점을 끌고 가보겠습니다. 미학은 아름다움을 분석하고 논증해서 인간이 추구해야할 아름다움을 제시하는 분야입니다. 주로 플라톤, 칸트, 헤겔, 심지어 하이데거와 사르트르 등 수많은 철학자들이 수행해온 과제이기도 합니다. 이들 모두 나름의 사고방식으로 아름다움을 분석해냈고 아직까지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들이 구체적으로 남긴 작품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미술은 아름다운 무언가를 창조하거나 만드는 분야입니다. 미술에 뛰어났던 사람들을 소개해보자면 모차르트, 미켈란젤로, 피카소 등을 말할 수 있어 보입니다. 이들은 무언가를 창조하고 만드는데 탁월했습니다. 심지어 모차르트는 노래를 단 한번만 듣고도 교황청이 만든 노래를 카피해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무언가를 창조하는데 탁월했던 이들이 아름다움을 다루는 통일된 사고체계를 구축하지는 못했다는점 역시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그렇다면 궁금증이 하나 생깁니다. 도대체 철학자들은 무엇을 가지고 아름다움을 분석했을까요? 또한 모차르트 – 피카소에 이르는 예술가들은 어떻게 작품을 만들었기에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 수 있었을까요?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이 공유했던 “아름다움”, 쉽게 말해 “미”는 무엇일까요? 이러한 “아름다움”의 문제를 탐구하는게 미학의 핵심으로 보입니다.


2. 미학의 형식적 목표

(1) 아름다움(미) 분석

 미학의 목표는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아름다움의 탐구입니다. 이렇다면 말하면 도대체 무엇을 탐구하는지 애매모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법한 사례를 가져와보겠습니다.


미켈란젤로. <천지창조>


 이 그림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입니다. 과연 이 그림은 아름다운 그림일까요? 아름답다면 어째서 아름다운걸까요? 각각 철학자들의 생각을 간략히 정리해보겠습니다.



플라톤 : 진선미가 서로 삼위일체로 결합됐을 때만이 아름다울 수 있고, 진선미가 서로 분리됐다면 그 무엇이든 추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미켈란젤로의 그림은 허위를 그려냈을 뿐이다. 이는 진(진실)이 아니라 위(거짓)을 그려낸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아름답다고 생각할 여지가 없다.


칸트 : 아름다운 것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아름다움의 형식을 파악해야 한다. 아름다움이란 이성, 실천과 아예 분리된 별도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어떠한 개념판단, 이익, 유용성을 개입하지 않은 채 순수한 아름다음 그 자체를 느낄 수 있어야만 아름다운 대상을 판별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자연미와 부용미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자연미란 그 어떠한 개념화도 포함되지 않은 순수한 아름다움이고, 부용미란 개념, 유용성 등 아름다움 이외의 불순물이 결합된 아름다움이다. 따라서 좀 더 순수하게 아름다운 자연미를 더 아름답다고 판단해야 한다.

  


쇼펜하우어 : 인생이란 삶에의 의지에서 비롯되는 욕구와 고통, 그리고 그 욕구의 만족을 통해 얻어지는 고통의 해소가 반복되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간이 예술작품을 감상하면서 이데아를 관조하게 되면 이러한 고통과 충족의 무의미한 굴레에서 벗어나 일시적 해탈을 맛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예술이란 인생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통로다.



비트겐슈타인 :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은 현실에 속하지 않고 세계(논리적 세계)에 속할 뿐이다. 아름다움이란 인간이 언어세계에서 인위적으로 구성하고 짜맞춘 부산물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어떠한 논의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아름다움에 대해 고민하는 1분 1초가 시간낭비에 불과하니 굳이 시간낭비를 할 필요도 없다.



  이들  철학자 모두 아름다움에 대해 각기 다른 논증을 거쳐서 다른 결론을 도출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조차 수 많은 관점이 존재하고 아직까지 통일된 합의점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미학을 공부하는 것도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아름다움 조차도 이들 여러 철학자들의 생각들과 질적으로 다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3. 현대 미학을 둘러싼 간단한 쟁점 제시

 고대, 중세, 근대, 현대 미학사는 각자마다의 쟁점이 있었습니다. 고대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주로 고민했습니다. 이는 다비드상, 파르테논 신전건축 등의 비율, 수학적인 계산 등을 살펴보면 잘 드러납니다.


(파르테논 신전의 도면. 수학적으로 균형미 있는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중세시대에는 신의 권위를 드러낼 수 있는 미학이 중요했습니다. 그 어떠한 세속적인 욕망이나 아름다움도 개입되지 않은 채 신의 웅장함과 권위를 어떻게 적절하게 담아낼 수 있을지가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아무래도 권위와 중장함을 강조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회화보다 건축미가 발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쾰른 대성당의 전경. 촘촘한 아치로 쌓아올려 압도적인 높이를 자랑하고 있다.)

 근대는 소위 말하는 “이성”에 부합하는 아름다움이 중요했습니다. 칸트는 아름다움의 형식, 헤겔은 정반합적 역사의 발전도식에 부합하는 아름다움을 설파했습니다. 아름다움을 이성에 부합하게 설명해낼지가 핵심 쟁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근대 철학에서 강조한 이성의 가치를 드러낸 미술작품 중 하나.)


 하지만 이들 모든 시도가 현대에 오면 살짝 틀어지게 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경향이 등장했기 때문이죠.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이성, 이념, 자본주의적 소비양식의 폭력에 저항하며 등장한 경향입니다. 미학 역시 포스트모더니즘의 경향을 선구적으로 발전시키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미학이 인류를 이성의 폭력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역할을 수행한 것은 대단히 인상적이고 그 의의도 깊습니다.


몬드리안,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


 그러나 문제는 이들이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이성으로부터 억압받은 아름다움을 해방시키는 것은 좋습니다만, 그렇다면 우리는 아름다움을 이성이 아닌 어떤 것으로 분석해야 할까요? 다시 말하자면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요? 미학을 고민해야만 하는 우리들이 답할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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