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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이온 May 07. 2021

포스트 니체와 포스트 포스트 모더니즘

모더니즘과 니체의 화해를 위해서

1. "포스트" 모더니즘

 포스트 모더니즘. 아마 독자 여러분들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사상조류입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그 자체로 근대철학의 반항아임과 동시에 인류를 근대성의 억압로부터 해방시켜주고자 노력했다는 의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모더니즘으로 대표되는 근대철학조류는 인간의 이성을 극도로 발달시킨다면 인류를 위한 최고의 이상국가를 건설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만, 그들이 실험했던 일련의 시도들은 양차 세계대전과 끔찍한 인권유린, 냉전체제와 핵전쟁의 위협을 낳아버렸습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됐던 걸까요? 이러한 모더니즘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포스트 모더니즘이 태어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포스트 모더니즘을 적절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이름에도 딸려있는 "모더니즘"이라는 개념을 확실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모더니즘을 이해해야 모더니즘을 달고 있는 개념인 "포스트 모더니즘"도 이해할 수 있겠죠. 자, 그러면 모더니즘이 무엇이길래 인류는 모더니즘의 그 너머를 향한 여정을 시작했으며, 종국적으로는 길을 잃은 채 지금까지 방황하고 말았을까요?

 이걸 여러분들에게 어떻게 이해시켜드릴지 꽤 오랜 고민을 했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철학에서 배우는 전문용어를 빌려 독자 여러분들에게 설명하는 시도란 생각보다 무의미할 수밖에 없을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독자 여러분들께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을 이해시켜드리기 위해서 제 나름대로 비유적인 소설을 하나 만들어봤습니다.

 어떤 강대하고 풍요로운 모더니즘 왕국이 있었습니다. 모더니즘 왕국은 산업혁명과 수많은 근대적 지식인들의 정치개혁 덕분에 오랜 시간동안 엄청난 정치적, 경제적, 나아가 군사적 발전을 이룩하며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더니즘 왕국의 발전에 감탄해하며 모더니즘 왕국의 질서에 편입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이렇듯 강대한 모더니즘 왕국을 통치하던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이성 국왕입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이성 국왕의 통치만이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한 국가를 탄생시킬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모더니즘 왕국을 다스리는 이성 국왕은 자신의 넘쳐흐르는 재력과 정치력, 군사력을 활용해서 더 강한 국력과 영광을 쟁취하고자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곧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이성 국왕은 모더니즘 왕국 주민들에게 "국민으로서 국가에 충성하라!"고 명령하며 젊은이들을 대거 징병해 전쟁터로 끌고 갔습니다. 또한 전쟁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여성들을 공장과 농장으로 징발했고, "효율성이 최우선이다! 비효율적인 사고, 문화, 전통은 모두 불법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이성 국왕의 야심은 더 많은 사람들을 고통받게 만들었습니다. 니체를 비롯한 일부 극소수의 철학자들은 이성 국왕의 이러한 야심과 폭정을 비판하고자 노력했지만, 그럴 때마다 이성 국왕은 "불온사상을 가진 놈들! 저 놈들은 정신이상자들이다!" 라고 소리지르며 철학자들을 사회에서 소외시켜버립니다. 심지어 모더니즘 왕국에 거주하고 있던 수많은 소수민족들은 조국과 민족의 발전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으며, 심지어 국가의 자원을 축내기까지 한다고 비판하며 모조리 가스실로 끌고 가서 학살을 저질렀습니다.

 결국 모더니즘 왕국의 주민들은 이성 국왕의 지극히 효율적이고, 애국적이고, 대단히 이성적이기까지 했던 통치가 모더니즘 왕국을 위해 도움이 되는건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일은 사필귀정이라 했던가요. 결국 이성 국왕의 모더니즘 왕국은 전쟁에서 패배했고 이성 국왕은 국민들을 버려두고 혼자 도망쳤습니다. 모더니즘 왕국에 거주하던 수많은 주민들은 앞으로 모더니즘 왕국을 어떻게 이끌어 가야할지 머리를 싸매며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몇몇이 "모더니즘 왕국의 이후를 이야기하자!"라고 제안했으며, 이러한 이야기는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대안적 방향성을 낳았습니다.




2. 모더니즘 - 전체를 위한 부분, 자본주의, 과학

(1) 모더니즘 - 근대성이란?

비유는 여기까지 했으니 이제부터 서양 현대사를 짚으며 저 비유를 설명해보겠습니다. 모더니즘이 본격적으로 발생한 계기는 역시 프랑스 혁명입니다. 프랑스 혁명은 기존에 "자연적으로" 형성됐던 봉건적이고 자연발생적인 사회질서를 뒤엎고, 아예 시작부터 "이성에 기초하여 인공적으로" 사회를 재구성하고자 노력했던 사건입니다. 결국 프랑스 국왕이었던 루이 16세는 혁명가들에 의해 목이 날아갔고, 프랑스는 유럽에서는 최초로 공화국을 개척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왕의 모가지를 날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도대체 어떤 사고체계를 토대로 삼아서 국가를 인공적으로 정초하고, 그 위에서 사회를 발전시킬지를 본격적으로 논의해야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한 순간에 박살난 왕국의 토대 위에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노력했던 수백가지 이념과 사상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마치 전국 각지에 있던 사상가들이 주나라가 망한 뒤의 천하를 구하기 위해 제자백가를 양성하기 시작했던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프랑스혁명 당시에 등장했던 사상과 이념들은 너무나도 다양해서 일일이 정리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입니다. 대표적으로는 자유주의, 사회주의, 왕정복고주의, 보나파르트주의, 자유주의적 독재정치(자코뱅주의), 유사 파시즘이 있었습니다만 저 각기 사상들 내부에서 조차 독립된 사고체계를 가진 철학자들이 엄청나게 많았기에 이곳에서 다 언급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게 왠걸!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등장한 포스트 모더니즘 사상가들에 따르면 저렇게 다양하다고 생각했던 사상들이 사실은 "근대성"이라는 키워드로 묶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미 저 당시를 살아가던 선구적인 철학자 한 명이 이러한 근대성 담론을 대담하게, 또한 너무나도 급진적으로 지적하고는 있었으니, 그 사람의 이름은 니체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상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했던 "근대성"이 무엇이었을까요? 이는 크게 세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전체주의입니다. 근대성은 국민, 구성원, 개인은 국가, 사회, 이념이라는 거대한 전체를 위해 봉사해야하는 의무가 있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둘째, 자본주의 입니다. 자본주의는 가치를 효율성으로, 좋은 인간의 모습을 유능한 인간이라는 모습으로 환원해버리고 그 무엇이든 효율적이지 않은 방법은 외면해버렸고, 유능하지 못한 사람들도 사회에서 소외시켰습니다. 셋째, 과학입니다. 과학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감성을 제거했습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가치들도 진화론으로 환원되어 설명되기 시작했고,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도 지극히 물질적인 감각에 갇혀버립니다.

 이러한 가치들의 사례를 설명하기 위해서 대표적으로 두 가지 사례를 가져왔습니다. 첫째는 나폴레옹의 보나파르트주의, 둘째는 나치즘입니다.


(2) 보나파르트주의의 역설 - 유능하다고 전부는 아니더라

 보나파르트주의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추종하는 사상입니다. 정말이지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고 통일적으로 정리하는게 불가능한 사상입니다. 보나파르트주의는 근대성이 만들어낸 일종의 프랑켄슈타인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대통령이 오르며, 또한 황제로 즉위하며 자신이 죽을 때까지 고수했던 한 가지 원칙이 있었습니다. 바로 "능력주의" 사회만이 인류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발상이었습니다. 기존에는 귀족, 왕족들이 혈연에 의거해서 권력을 얻고 있었지만 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집권하게 되면 이런 모든 봉건적인 행정체계를 모조리 개혁하고 오로지 "능력"으로만 사람들을 등용해서 쓰겠다는 겁니다. 마치 삼국지 주인공 조조의 "유재시거"를 보는듯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폴레옹의 이러한 사상을 납득합니다. 그야 당연히 능력이 있는 사람이 큰 권력을 가지고 그만큼 보상을 가져야만 할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나폴레옹은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들 중에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거침없이 승진시켜주고, 보상도 주고, 근대국가로서는 거의 최초로 훈장이라는 것을 지급하여 "국민영웅"이라는 명예도 줍니다.

 하지만 이러한 보나파르트주의는 여러가지 역설을 낳습니다. 쉽게 말해서 인성이 글러먹었는데 능력만 뛰어나서 높은 자리에 차지해가지고 자기들끼리 해쳐먹으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이 처음 나폴레옹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켜줬던 맥락이 있었습니다. 당시 공화국이 된 프랑스는 왕의 모가지를 쳤기 때문에 유럽의 모든 국가들(영국, 프로이센, 스페인, 이탈리아 국가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 러시아 등)로부터 전쟁이 선포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왕이 죽었으니 프랑스 왕국의 정예부대나 정규군은 모두 해산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공화국 프랑스는 조잡하게 무장한 민병대가 유럽 왕정의 최정예부대와 전쟁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초기에는 브룬즈 빅 전투처럼 뽀록으로 몇번 승리하긴 했습니다만, 이러한 승리도 오래가지 못할게 불보듯 뻔했습니다. 다시 말해, "프랑스 혁명 정신이 유럽 왕정의 폭정에 의해 말살될 국가안보위기"가 발생한 겁니다. 하지만 그때 혜성처럼 등장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이집트 원정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뛰어난 장군이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입니다. 나폴레옹은 당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며 스스로 "프랑스 혁명정신의 수호자"가 되겠다고 자처하며 대통령에 당선되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프랑스를 방어하는데 성공하고, 심지어 그의 천재적인 군사재능을 토대로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을 정복하는데도 성공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합니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정복사업과 권력유지를 위해 "능력이 매우 뛰어난" 인사들을 대거 등용했습니다. 국민들도 그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습니다. 나폴레옹이 정말로 프랑스혁명정신을 수호했고 공화정을 지켰으니까요. 하지만 이게 왠걸, 나폴레옹이 유럽 거의 전역을 정복하고 나니 자신의 유능한 참모들과 함께 황제가 되겠다는 음모를 꾸민 겁니다. 결국 나폴레옹은 모든 프랑스국민의 기대를 배신하고 스스로 황제로 즉위하는 만행을 저질러 프랑스 공화국의 역사상 도저히 용납이 안되는 패악질을 저지릅니다. 당시 나폴레옹으로부터 큰 배신감을 느낀 수많은 철학자들은 스스로 펜을 내려놓거나 자결하기도 했습니다.

 보나파르트주의의 역설은 여기에서 발생합니다. 능력이 뛰어나면 뭐하고 국가를 효율적으로 다스리면 뭐하나, 인성이 개차반인 놈들이 자기들끼리 해쳐먹을 궁리만 하면 아무 소용없는데!


 (2) 나치즘 - 전체를 위한 부분, 효율성이 전부,

 히틀러가 노벨평화상을 받을 뻔했던 이유

 나치즘도 여러분들이 악명만 보고 들어 그렇지 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의 상황을 보면 독일인들 입장에서는 유일한 대안으로 보였을 수 있습니다. 너무 길게 설명해도 좀 난처할 수 있으니 짧게 만 설명해봅시다. 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은 정치, 경제, 문화 모두 개박살이 난 상황이었습니다. 경제는 1) 현 한화로 2경 300조에 달하는 전쟁배상금을 물었고 2) 엎친데 덮친 격으로 경제 대공황까지 터졌으니 독일경제는 말 그대로 답이 없었습니다. 전국 공장의 50퍼센트가 문을 닫았고 실업률이 40퍼센트, 자료에 따라서는 60퍼센트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사과 하나를 사기 위해 지폐더미를 가지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치는 어땠느냐, 1) 독일 국왕 빌헬름이 퇴위한 이후 들어선 공화국 의회는 자본주의자, 사회주의자, 봉건주의자로 나뉘어 치고박고 싸우며 국가경제를 위해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으며 2) 뮌헨 등 각 대도시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이 실제로 일어나는 극심한 혼란을 겪었습니다(물론 모두 실패했지만). 여러분이라면 이러한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었을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히틀러는 집권한지 약 5년만에 이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버립니다(...). 히틀러의 매력은 이념을 따지지 않는 무조건적으로 효율적인 국가정책입니다. 자본주의적 방식이든 사회주의적 방식이든 지역갈등, 경제문제, 정치갈등을 "가장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만 있으면 나라 정치체제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모두 사용해버린 겁니다. 그의 명언으로 이런게 있습니다. "게르만 민족의 고통 앞에 자본가도 없고 노동자도 없다.". 독일경제는 다시 회복했고, 당시 나치독일은 이미 세계경제 2~3위로 다시 회복해서 전세계 최강국 중 하나가 됐으며,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하여 당시 독일에 잔존하고 있던 "모든" 실업자들을 군인으로 고용함으로 인해 지금 시대에도 보기 힘든 "완전고용시대"를 이룩합니다(...). 이 시대에 군사력은 잠깐 영국까지 제치고 세계 1위를 달성하기도 했고, 당시 독일 최강의 기술력은 소련이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나 쓰이던 단발성 라이플과 말을 사용할 때 자동소총과 탱크를 만들게 했습니다.

 독일은 이러한 "지극히 효율적이고, 전체를 위해 국민 개개인이 희생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국가위난을 모두 해결함과 동시에 유럽 거의 전부를 석권하는 영광을 쟁취하기도 했습니다만 그 대가는 너무나도 혹독했습니다. 부분은 전체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미명 하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징병되어 스탈린그라드에서 헛되이 죽었습니다. 소수자였던 유대인들은 국가 전체의 통합이라는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끔찍한 학살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독일인들은 전혀 거리낌이 없이 나치즘을 추종했습니다. 아무튼 히틀러는 독일의 모든 문제점을 해결함과 동시에 독일을 더욱 발전시키기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독일인들이 치러야 했던 도덕적 대가는 너무나도 컸습니다.

 이하 보나파르트주의와 나치즘은 근대성이 만들어낸 끔찍한 프랑켄슈타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능력주의에 매몰된 보나파르트주의는 자유주의와 군사독재를 결합시킨 괴물이 되었고 나치즘 역시 효율성과 전체주의에 빠져버렸기에 결과적으로는 대동소이 합니다. 근대성은 전체를 위한 부분, 가치 있는 것은 곧 효율적인 것, 좋은 사람은 유능한 사람, 국가를 위해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무의미한 것 등 "이성"의 폭력들을 자행했습니다.




3. 포스트 모더니즘의 선구자, 니체

(1) 니체의 의의, 상식의 철학

 그런데 니체는 이러한 모더니즘의 근대성들이 장차 인류를 고통스럽게 만드리라는 점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니체가 당시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근대철학, 즉 이성에 입각한 철학에 빠져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예언자처럼 홀로 근대성의 냉혹함을 포착하고 묵묵히 포스트 모더니즘을 외치고 있었다는 점 입니다.

 니체 철학은 난해하기로 악명높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천재로 불렸고 대단히 젊은 나이에 교수로 임용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말년에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바람에 글을 난해하게 쓸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니체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숨길 수 없었던 그의 탁월한 필력이 여러 면모에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니체가 진정한 실존의 자유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또한 논리적으로도 치밀하게 고민했기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봤을 법한 아이디어를 끝까지 고민해서 완전히 정리하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 니체는 이러한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듯 합니다. 여기서 짧게 니체의 사상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 니체,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묻다

 여러분은 자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야 그 누구한테도 터치받지 않고 내 스스로 살아가는 모든 가치들이 자유일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유를 고민할 때는 언제나 도덕에 입각한 이의제기가 뒤따라옵니다. '무조건적인 자유는 사회에 혼란을 가져올 뿐이야! 어느정도의 제한은 반드시필요해!'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인간이 완전히 자유롭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까? 그리고 니체는 말합니다. '저런 도덕 같은거 다 모르겠고! 그 어떠한 실존의 제약과 한계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자유로워야지 진정한 자유라고 하지 않겠어!?'

 물론 저도 이런 생각을 해보긴 했습니다. 하지만 차마 실제로 저렇게 떠벌리고 다니거나, 정말로 저러한 사고를 가지고 인생을 살아보는 시도를 해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네 그렇습니다. 니체는 대단히 용감하게 저러한 생각을 자신의 글로 정리해나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니체의 용감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저 글로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예 인생까지도 저렇게 살았던 겁니다(!). 세상 어떤 철학자도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는 있지만 지행합일을 이루며 실제로 행동까지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니체 지인들의 증언에만 따르면 니체는 청결에 신경을 쓰지 않아 체취가 심했다고도 하고, 식분증(자신의 변을 먹는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며, 심지어 채찍을 맞는 말을 보며 불쌍하다고 껴안기도 했다고 합니다. 최소한 이러한 행적들만 보면 니체는 확실히 사회에서 금지하거나 비난하는 행위들을 자주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니체의 반사회적 행위들을 니체의 사상에 입각해서 본다면, 사실 니체는 당시를 살았던 그 어떤 사람들보다 자유로운 사람이었으리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니체의 행위들이 니체 스스로 생각한 이성적 판단에 의거해서 이루어졌는지, 아니면 니체의 정신질환 때문에 이루어졌는지는 상관없이 아무튼 니체는 자신의 사상에 충실하게 살았던 것 입니다.


(3) 니체의 역설

 하지만 니체의 삶은 그 스스로 큰 역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확실히 니체는 지행합일을 통해 자신의 사상에 충실하게 살았으며, 당시를 살아가는 그 누구보다 실존적으로 자유롭게 생활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의 인생 자체는 대단히 불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평생 여자친구를 사귀지 못했고, 고백하거나 청혼하는 족족 차이기를 면치 못했습니다. 또한 정신질환 때문에 당시로서는 가장 명예로운 직업 중 하나였던 교수직도 오래 수행하지 못해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습니다. 그의 친구들 조차도 니체와 함께하기를 꺼리기 일쑤였으며(사실 이런 친구가 주변에 있다면 내 스스로도 힘들 것 같긴 합니다...) 마지막은 비참하게도 홀로 남은 정신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4. 포스트 포스트 모더니즘

 그리고 니체의 역설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치명적인 한계와도 대단히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그래, 근대성과 이성의 폭력을 넘어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은 대단히 좋습니다. 그 어떤 소수인종도 나치독일 정권에서 살기를 원치는 않을 것이며, 우리는 학력 좋고 머리 좋다고 잘난체 하는 자들을 보고 재수없다고 욕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근대성을 해체하기만 한다고 대안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크게 실존주의, 구조주의 등 대단히 다양한 방향성을 가지고 발전했습니다. 특히 구조주의는 후기 구조주의로 발전하며 인간이 합리성을 토대로 쌓아올린 대단히 다양한 지식체계들도 철저하게 해부하고 해체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인류는 이렇게 모든 것을 해체하고 나니 인간의 지식에 남는 것도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야 말았습니다. 스타크레프트 2에서 제라툴이 말했듯이 "장막을 들추고 그 안을 들여다봤지만, 그곳엔 오직 망각뿐이었어.". 그렇게 현대 철학은 길을 잃은 채 대안찾기에만 수십년을 쏟아버렸습니다. 과연 우리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대안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근대성의 한계와 포스트 모더니즘의 한계를 모조리 극복할 수 있는 사고체계란 과연 무엇일까요? 전적으로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에게 달린 문제입니다.


 그리고 저는 분석역사학이 그에 대한 대안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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