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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바 Apr 30. 2021

동양철학 개관

1. 동양철학과 마음의 문제 소개

 동양철학에서는 마음을 대단히 중요한 키워드로 삼고 여러 철학적 논쟁들을 해결해왔습니다. 도가, 유가, 불가, 심지어는 법가까지 통틀어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했죠. 일단 여러분들이 동양철학의 여러 분파가 마음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 했는지를 이해하기 전에, 성리학자들이 마음의 문제를 어떻게 정리하고 해결하려 했는지를 제대로 알아야 나머지 분파의 논쟁들도 이해하기 수월할 겁니다. 사실 이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양철학의 주류는 엄밀히 성리학이었기 때문에 성리학자들을 중심? 타겟?으로 다양한 논쟁들이 펼쳐졌기 때문이죠. 따라서 성리학자들을 중심으로 도가, 불가, 법가 사상들과 벌인 다양한 논쟁들을 알아보는 과정을 통해서만이 마음을 둘러싼 분파들 간의 여러 논쟁들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동양철학사를 이해하기 전에 동양철학자들이 해결하고자 한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알 필요가 있습니다. 서양철학의 역사는 회의주의에 맞서기 위한 긴 여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당시 그리스 사회를 휩쓸던 회의주의에 맞서기 위해 이데아론을 제창하며 철학을 해왔습니다. 다시 말해 지성적인 측면에서의 회의주의가 서양철학의 앙숙이었습니다.

 사실 동양철학도 서양철학과 목표는 비슷합니다. 회의주의에 맞서는 것이죠. 하지만 동양철학이 맞서고자 했던 회의주의의 내용은 서양철학과는 맥락이 살짝 다릅니다. 서양철학의 회의주의는 주로 소피스트 같은 느낌의 회의주의입니다. 다시 말해 서양철학은 진리, 진실을 분명히 밝혀 인간의 지성을 밝히려는 투쟁을 벌여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동양철학의 회의주의는 욕망이 소용돌이 쳐서 천하에 메드맥스의 시대를 초대할 수 있는 회의주의입니다. 다시 말해 동양철학은 메드맥스 시대가 도래하지 않도록 천하에 질서를 가져오도록 노력해온 여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성리학자, 도가 학자, 불교 학자, 법가 학자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정리하자면 동양철학자들은 천하의 혼란을 일으키는 잡설들을 회의주의로 설정하고, 이러한 회의주의에 맞서고자 분연히 일어난 사람들입니다. 수많은 동양철학자들이 이러한 회의주의를 극복하고자 백화쟁방, 즉 수백개의 꽃으로 피어나 천하를 주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춘추전국 시대부터 말이죠. 그리고 마음에 대한 논의도 대단히 핵심적인 키워드로 등장하게 됩니다. 일단 마음을 둘러싼 다양한 논쟁을 살펴보기 전에 성리학자들의 리기론을 간단하게라도 정리해보고 넘어갑시다. 그래야 동양철학에서 바라보는 마음의 대략적 그림을 알 수 있게 됩니다.


2. 리기론 개괄

 리기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태극 -> 이, 기로의 분화 -> 이것이 세상을 움직이는 메커니즘 순으로 파악하는 게 쉬워 보입니다. 최소한 주희 이래로 이어진 성리학자들은 세상을 움직이는 보편적인 법칙이 있어야만 회의주의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보편적인 법칙은 서양철학이나 과학에서 말하는 법칙보다 외연이 넓습니다. 가령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나 만유인력의 법칙 등은 주로 자연의 영역에서만 적용됩니다. 그래놓고 자연법칙을 보편적인 법칙이라고 수용하고 사용합니다.

 하지만 동양철학에서는 이러한 법칙이 보편적인 법칙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비자연 영역까지 포함한 설명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인간의 도덕이나 예술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이러한 자연법칙은 당위나 가치판단의 영역과는 아예 다른 영역에 놓여있습니다. 따라서 성리학자들은 자연법칙이 보편적이지 않다고 주장할 겁니다.

 그렇다면 동양철학자들이 보편적이라고 생각한 법칙은 무엇일까요? 바로 태극입니다. 태극은 법칙의 이름입니다. 가치, 당위, 자연 등 우주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영역을 포함해서 적용되는 보편적인 법칙이기 때문에 서양의 자연과학 법칙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성리학자들은 태극이 없다면 인간의 지식, 나아가 우주의 질서에 커다란 회의주의가 도래해서 메드맥스의 시대가 도래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태극이 원초적이고 초월적인 법칙의 영역에서 개별적인 대상들을 설명하기 위해 한 단계 내려오게 되면 리가 됩니다. 즉 태극과 리의 설명력은 동일하지만, 리는 그저 개별적인 대상들, 다시 말해 기를 설명하는 개념이라는 사소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위에서 말한 “개별적인 대상들”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태극과 리라는 “완벽하게 보편적인 법칙”에 의해 움직이고, 운동하는 대상은 바로 “기”입니다. 다시 말해 동양철학은 법칙과 그 대상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우주의 원리를 설명하고자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철학은 정신과 물질이라는 두 가지로 우주를 설명하려 했습니다. 가령 플라톤은 이데아의 세계라는 정신적 세계와 현실 세계라는 물질적 세계를 구분했습니다. 하지만 동양철학에서는 이러한 구분이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성리학자들은 이데아도 기로 분류했을 겁니다. 대신 이데아를 움직이는 법칙이자 이치, 즉 리는 이데아와 구분되어 존재한다고 생각했겠죠.

 이렇게 간단하게 태극과 리, 기를 설명해봤습니다. 이제 기가 무엇인지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해보겠습니다. 기는 삼국지 시대로 유명한 위진남북조 시대 철학자들을 괴롭히던 주된 개념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는 에너지입니다. 의아합니다. 왜 갑자기 법칙에 의해 움직이는게 물질이 아니라 에너지가 된걸까요?

 간단한 논증을 소개하겠습니다. 물론 수많은 철학자들이 물질이 기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버리면 인간의 마음, 정신, 나아가 국가, 가족, 인의예지 같은 가치개념들, 당위진술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없어집니다. 다시 말해 기는 물질에만 묶여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기는 물질, 비물질적 개념을 모두 포함하는 무언가여야만 합니다. 그래서 기는 물질도 아니고, 당위진술이나 관습, 예절, 국가같은 비물질적 대상도 아닌 “에너지”로 정리됩니다. 다시 말해 에너지인 기가 자연법인 리에 의해 요동치면서 우주만물을 만들게 된다는 사고구조가 완성됩니다.

 기가 세상만물을 창조하는 과정은 사실 이해하기 쉽습니다. 기가 작용하거나 합치거나 분해되거나 움직이는 패턴, 강도에 따라 어떤 기는 물질이 되기도 하고, 비물질이 되기도 하고, 그 물질도 여러 다른 세부적인 물질이 될 뿐입니다. 쉽게 말해 정신, 가치, 당위, 물질을 포함한 우주에 존재하는 수많은 대상들은 결국 에너지가 움직이는 패턴들이 만들어낸 “산출물”일 뿐이며, 기는 영원히 요동칠 것이기 때문에 산출물들도 엄청나게 다양해질 수밖에 없어집니다. 그리고 기가 이렇게 작용하는 원리는 당연히 “리”입니다. 나아가 이러한 사고방식을 송나라에 이르러 “집대성”한 인물이 바로 송나라 철학자 주희입니다. 


3. 리기론과 마음, 성과 정

 이제 리기론으로 마음을 분석해보겠습니다. 성리학자들은 당연히 위 리기론을 가지고 우주의 모든 것을 분석하려 했으니, 마음도 똑같이 분석했을겁니다, 그쵸? 그렇다면 마음도 기의 측면과 리의 측면을 가지고 있을겁니다. 마음의 기의 측면이 정이고, 마음의 리의 측면이 성입니다. 각각 정은 감정, 역정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정이고 성은 본성, 성질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성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마음을 이루고 있는 몸체의 역할을 하는 기는 정입니다. 따라서 정은 기, 즉 에너지이기 때문에 무한히 요동치고 움직입니다. 이러한 무한한 움직임이 인간의 수많은 감정을 만들어 냅니다. 마음의 기, 즉 정이 과도하게 요동치거나 치우치게 되면 분노, 증오, 미움, 탐욕, 정욕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그리고 당연히 마음도 리라는 법칙에 의해 움직이는 대상에 불과합니다. 마음의 법칙은, 당연히 법칙이기 때문에 모든 대상들에게 똑같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기를 움직이는 리는 당연히 인간의 마음을 대상으로는 보편적으로 작용할 것이고, 동물의 마음이라는 기를 움직히는 리는 동물의 마음들 속에서는 보편적으로 작용합니다. 그리고 성리학자들은 인간이 자신의 마음의 기, 즉 정을 잘 통제하지 못한다면 치우치거나 불안정해져 동물의 마음이나 다를 바가 없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리, 즉 성을 파악해서 인간마음의 기, 즉 정을 통제해서 인간본”성”을 회복해야지만 마음이 안정화되고 인간으로 완성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여기까지가 퇴계 이황이 정립해둔 마음의 구도입니다.

 정리하자면 퇴계 이황은 인간의 마음이 리의 측면인 성, 기의 측면인 정으로 나뉘고 인간은 리의 측면인 성을 파악하고 기의 측면인 정을 통제하고 가다듬어 안정화시켜야 인간 다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율곡 이이는 퇴계 이황의 정리에서 한발짝 더 나아갑니다. 율곡의 비판은 이렇습니다. 만약 인간의 마음을 성과 정으로만 나눠버린다면, 마음은 자연에 의해 불가항력적으로 주어진 것에 불과해 인간이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고 통제할 수 없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는 인간의 의지도 포함을 시켜야만 합니다. 따라서 율곡은 마음(심)을 성, 정, 념으로 구분하고 념(의지)를 발휘해 정을 성의 방향으로 유도하고 이끌어야 한다는 체계를 도입합니다. 주희 때부터 시작한 성리학자들의 마음에 대한 논쟁이 거의 99퍼센트는 종결된 셈입니다. 이런 어마무시한 프로젝트가 우리가 등교하며 볼 수 있는 성균관에서 이루어졌던 겁니다(...).


4. 마음을 둘러싼 동양철학자들의 다양한 논의 정리

(1) 관자

 관자는 동양철학의 탈레스 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 기록상으로 등장한 최초의 철학자라고 합니다(요순임금 급의 전설에 가까운 사람들 빼고요!). 관자는 또한 세계 최초로 마음이라는 개념을 철학적 개념으로 사용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관자의 메인 아이디어는 모든 인간의 마음이 똑같다는 발상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왕, 대부, 선비, 백성, 노비의 마음은 그 신분의 귀천을 떠나 모두 똑같고, 그 누가 고통을 느끼든, 행복을 느끼든 동일한 마음에 불과하다는 당시로서는 대단히 혁명적인 주장을 하게 됩니다. 이는 서양의 공리주의적인 발상이라고 할 수 있죠. 천하가 춘추전국시대의 난세로 향하고 있던 당시, 관자는 군주들이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 백성들을 마음대로 이용하고 학살하는 모습을 비판하고자 위 같은 주장을 했으리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관자가 사실상 최초로 마음(心)을 철학적 논의로 도입한 덕분에, 이후 수천년간 마음은 동양철학의 메인 아이디어가 될 수 있었습니다.


(2) 부처

 부처는 인간의 마음이 세상의 수많은 이미지, 허상에 현혹되는 나약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만물은 그 자체로 인간의 마음속에 각인되지는 않습니다. 마음이 스펀지처럼 받아들여야지만 인간이 지식도 얻고 편견도 얻고 사고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부처는 인간이 생각하는 수많은 생각들의 출처가 인간들 스스로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령 세상에 인간이 없었더라면 미움, 행복, 당위도 없었을 겁니다. 심지어 부처는 사물에 대한 판단, 즉 돌에 대한 판단도 인간이 마음에서 만들어낸 것에 불과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돌을 보고 그냥 돌맹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누군가는 조각작품을 만들기 위한 귀중한 재료로 생각할 수도 있겠죠. 즉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는 거의 절대다수의 생각은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낸 것들에 불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대상을 봐도 마음속에서 다른 것을 바라볼 수 있죠.

하지만 이를 반대로 말한다면 인간이 고통에 빠지는 여러 원인들도 사실은 인간의 마음이 스스로 만들어낸 산물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증오, 고통, 편견, 사물에 대한 판단 모두 인간들이 마음속에서 만들도 짜맞춘 것이죠. 만약 인간이 이러한 마음의 속박에서 초탈해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그 순간 인간은 진정한 의미의 자유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3) 노자

 노자 이후에 등장한 도가 학파 사람들은 고대의 히피라고도 할 수 있어 보입니다. 실제로 송나라 도가 학자들은 인류 최초로 대마초를 재배해서 담배처럼 피웠다고 합니다(팩트입니다).... 당시에는 대마초가 아니라 삼이라고 했지만요. 아마 남송지역이 베트남과 가까워 다양한 작물을 재배할 수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아무튼 다시 노자로 돌아와보면, 노자는 무를 모든 존재의 근원으로 생각하는 발상의 전환을 일으킵니다. 노자 이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철학자들은 유(존재, 있음)을 바탕으로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노자는 유 조차도 초월한 보편적인 법칙에 기초한 철학적 사유를 이루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는 물론 춘추전국시대의 난세를 극복하기 위함입니다. 인류가 유에 집착하면 온갖 혼란이 일어나 세상이 메드맥스의 시대를 겪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직관적으로 생각해봅시다. 유를 초월한게 무엇일까요? 우리가 유를 초월한 모종의 개념을 떠올린다면 다시 한번 유에 기초한 사고를 하는 모순을 범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유를 초월한 무언가를 떠올리기 위해서는 유가 아닌 것, 즉 무를 도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노자는 무에서 모든 유의 기초를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노자 역시 회의주의를 극복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모든 지식, 윤리의 기초를 무에서 찾아버리면 인간이 앎을 얻을 수 있는 토대가 사라질테니 말입니다. 따라서 무에 모든 지식의 기초를 두지 않고, 유는 무에서 기원하고, 다시 무는 유에 기초한다는 상호작용의 개념, 즉 태극 비슷한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하나 유의할건 태극이라는 개념은 노자가 만든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태극이라는 단어는 아마 송나라 시대 철학자 주돈이가 체계화해서 전파했다는게 학계의 정설입니다. 

 아무튼 노자는 1) 인간이 자신의 마음과 진리의 근거를 유에서 벗어나 찾고 2) 그를 통해 집착에서 벗어나 마음의 안정을 얻는 방법을 찾음과 동시에 3) 회의주의도 벗어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는 엄청난 업적을 남겼습니다. 유를 초월한 무에서 근거를 찾지만, 유와 무의 무한한 상호작용을 제시해서 회의주의와는 결이 다른 사고를 제안했다는 지점에 초점을 두시면 될 것 같습니다.


(4) 공자

 공자는 우리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고리타분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공자는 그야말로 적극적으로 진취적인 혁명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자의 사회혁명은 한자의 의미를 본인의 생각에 맞춰 바꿔버리는 그야말로 어마무시한 방향성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한번 생각해봅시다. 여러분이 논어를 읽어보면 한번쯤 들었을 생각입니다. 도대체 왜 제자들이 공자에게 “도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본 걸까요? 도라는 글자 내지 언어는 아무튼 당시 사람들이 당연히 아는 상태에서 사용된 단어였을텐데 말입니다. 다시 말해, 왜 다 아는 단어의 의미를 굳이 물어본 걸까요? 이는 바로 공자가 당시 사회를 살아가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용하던 것과 살짝 핀트가 엇나간 방향으로 한자,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공자의 제자들이 보기에, 스승님이 뭔가 이야기를 하시는데 혼자서 핀트가 엇나간 방향으로 언어를 사용하시고, 또 그러한 언어에 맞게 생활을 하고 계시니 공자에게 그가 생각하고 있던 단어, 언어의 의미를 계속해서 물어본 것 입니다. 그렇게 공자가 아예 뜻을 바꿔버린 단어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군자”와 “소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 군자의 의미는 군주, 왕의 의미였고 소인의 의미는 백성 내지 노비의 의미였습니다. 다시 말해 둘은 거의 100퍼센트 신분계급의 뉘앙스를 가지고 있는 단어였습니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군자 같은 사람”을 이야기할 때 왕 같은 사람을 표현하기 위해 군자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인품이 좋거나 인자한 사람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죠. 소인도 마찬가집니다. “이런 소인배 녀석!”이라는 말은 속 좁거나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을 지칭하기 위해서 사용됩니다. 그렇다면 고대인들이 사용하던 군자와 소인배의 의미는 누구에 의해서 변화한걸까요? 바로 공자입니다.

 공자는 당시 중국사회를 지배하던 “한자”의 주술적인 능력을 믿은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말해 언어의 의미가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시대를 바꿀 수 있다고 믿은 것이죠. 그래서 공자는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종결시키고 도덕적인 인간들을 많이 만들기 위해 당시까지 지배층이 사용하던 한자의 의미를 도덕적 인간상으로 바꿔서 사용,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죽을 때 까지 말이죠. 그리고 그렇게 공자가 죽을 때 까지 수행한 도덕적인 언어 창조 내지 개조 프로젝트는 그 제자들이 이어받아 한나라 시대에 크게 융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공자는 군자로 대표되는 지배층을 “혈연과 신분 기초한 왕족 내지 귀족”이라는 의미에서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간”으로 바꿔버리고, 소인으로 대표되는 피지배계층을 “혈연과 신분에 기초한 노비 내지 백성”이라는 의미에서 “도덕적으로 열등하고 이기적이고 성격도 나쁜 사람”으로 바꿔버린 겁니다. 

 그리고 공자가 춘추전국시대를 통틀어 시도한 “단어 의미 바꾸기 프로젝트”는 그야말로 핵폭탄과 같은 효과를 낳습니다. 공자는 지배계급의 의미 자체를 신분에서 인성으로 바꿔버렸고, 이렇게 지배계급, 선한 인간 본성, 심지어 우주의 질서와 하늘의 법칙에 대해 달리 생각하기 시작한 동아시아 인들은 맹자, 순자, 심지어 주자와 율곡 이이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논쟁으로 이어집니다. 공자는 그야말로 정치, 도덕, 학문, 인간의 생활양식, 심지어 언어의 의미 변화에까지 영향을 미치치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모든 곳에 영향을 미쳐버립니다.


(5) 다산 정약용

 다산 정약용의 철학은 동앙철학 전체에서 대단히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 생각해봤을 아이디어를 정확히 짚어서 체계적인 철학을 정립했다는 업적이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의 성리학은 그야말로 “상제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의 문제의식을 정리해보자면, 공자와 맹자는 태극을 말한 적도 없고 리와 기를 언급한 적도 없는데 주희가 혼자서 뇌피셜로 끄적여 성인의 말씀을 곡해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산 정약용은 논어와 대학, 중용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하늘(天)의 개념을 재해석해서 태극을 전제하지 않은 성리학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합니다. 한문학자였던 다산 정약용은 동양인들이 하늘의 의미를 자연적인 하늘의 의미 보다는 유일신 내지 인격인이라는 의미로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정확히 짚어냅니다. 따라서 정약용은 하늘의 인격신적인 측면을 재해석해서 상제(上帝)의 개념을 도출하고, 태극의 자리에 상제를 앉힙니다. 그렇게 된다면 자연법칙은 상제 내지 하나님이 되어버리고, 그가 창조한 모든 기, 피조물들이 하나님이라는 절대적인 원리에 의해 움직이고 구성되는 그림이 탄생합니다.

 언뜻 대단히 크리스트교적인 생각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리학과 대단히 잘 융합되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다산 정약용의 철학은 동양철학사에서 뜬금없이 혼종처럼 불쑥 튀어나왔기에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사실 거의 반세기나 지속됐던 성리학사에 등장한 수많은 성리학자들 중에서 이러한 생각을 한 사람이 아예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약용이 당시 조선이 왔던 카톨릭 신자들로부터 유일신 사상에 감명받아 상제론을 제창했다는 학설이 대단히 설득력있게 퍼져 있다고 합니다.

 정약용에 따르면 마음 성, 정은 하나님의 마음인 성, 인간의 마음인 정으로 구성됩니다. 따라서인간은 자신의 육신에 의해 유발되는 정을 극복해서 하나님 – 상제가 부여한 성을 회복해야지만 도덕적으로 완성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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