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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가지 않은 길 Jul 16. 2023

심란한 생일 파티

글로벌 건설사의 무덤

  박 차장 생일이라 자재부 직원들이 모두 그의 숙소에 모였다. 숙소 안에 설치된 붙박이 나무 탁자 위에는 각종 외제 과자와 음료수가 올라앉았다. 한국에서는 사장님 댁에서나 볼 수 있는 귀한 먹거리였지만, 이곳에서는 아무 때나 부담 없이 맛볼 수 있었다.

  그보다는 자재 창고에서 간식용 귤을 비밀리에 숙성해 빗은 과일주가 vip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욕 많이 먹는 사람은 오래 산다니까, 박 차장님은 만수무강하실 거야.”

  여 과장의 제의로 일동이 건배를 외쳤다.

  “박 차장님의 만·수·무·강을 위하여!”    

 

  잔을 비운 박 차장이 새로운 소식을 전했다.

  “까티프 상하수도 프로젝트를 시공하던 이탈리아 xxx사가 결국 두 손 들었다는군. 사우디에서 3개 공사를 시공 중이었는데 모두 포기하고는, 그 여파로 회사가 휘청거린대요.”

  “중동이 글로벌 건설업체들의 무덤이라는 말이 실감 나네요.”

  누군가 말했다.

  “xxx사가 중동에 남아 있는 마지막 서구업체였다니, 이제 아라비아반도는 한국업체들이 접수한 거야.”

  박 차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근데 우리 공사는 어떻게 돼가고 있는 건가요?”

  무길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박 차장 생각을 듣고 싶었다.

  “글쎄, 강사장은 늘 회사 걱정이라니까.”

  신대리가 때를 놓치지 않고 꼬집었다. 동료들이 우리 사주를 많이 보유한 무길에게 ‘강사장’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다들 알고 있잖아. 각오는 하고 왔지만, 말이 쉽지. 숨쉬기도 버거운 곳에서 건설공사라니, 사람이 할 노릇이냐고. ”

  박 차장이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놈의 모래바람은, 원, 그렇게 사납고, 모래밭 천지에 암반은 왜 그렇게 많으냔 말이야.

  공사도 공사지만 자재비가 감당이 안 돼. 오일쇼크로 세계적으로 물가가 폭등한 데다가, 수입에만 의존하는 나라다 보니 사우디 건자재가는 천정부지로 솟고 있으니. 경리부장 말에 의하면 대부분 품목이 예상가의 세 배에 달한대요.

  5,000만 불 이익을 목표로 시작했는데, 이익은커녕 막대한 손실을 감수할 판이니 기막힐 노릇이지. 게다가 지체 보상도 면키 어려울 거고. 첫 공사라 시행착오는 불가피하지만, 대가가 너무 커요.”

  “나야 월급만 받으면 그만이지만 강사장은 밤잠을 설치겠어.”

  신대리가 또 한 번 무길의 염장을 질렀다.

  그리곤 아차 싶었던지 박 차장과 여 과장의 눈치를 살폈다. 그들도 직책에 따른 우리 사주 배정분이 적지 않을 테니 말이었다.

  말을 쓸어 담느라 그가 급히 말머리를 돌렸다.

  “요즘 소장님 얼굴이 펴지질 않아요.”

  “그러게 말이야. 이 현장 불을 끄고 나면 다른 현장이 말썽이고, 그놈이 조용할 만하면 또 다른 놈이 터지고, 바람 잘 날이 없으니······.”

  박 차장이 담뱃불을 비벼 끄며 말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공사를 포기하겠나? 말도 안되는 소리지."




  “집에 편지들 자주 하시나? 여기 있는 사람들이야 그럴 리 없겠지만 고무신 거꾸로 신는 여자들이 많대요.”

  “고무신을 거꾸로?”

  여 과장의 말에 누군가 반문했다.

  “중동 붐에 제비족들이 제철을 만났다는 거야. 그놈들이 돈 냄새를 여간 잘 맡겠어. 남편 없이 혼자 사는 여자니 작업하기 좋을 거고.”

   “총무부 임대리가 그러는데 어제도 멀쩡히 일 잘하던 기능 사원 하나가 중도 귀국을 신청했대요. 근데 그런 경우는 열이면 열 부인이 바람난 거라는군요.”

  임 대리와 친하게 지내는 배 대리의 말이었다.

  “밤이면 사막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던데.”

  정보통 추기영이 기능사원 사이에 떠도는 소문을 들려줬다.

  “그게 무슨 소리야?”

  부국이 다음 말을 재촉했다.

  “바람결에 들려오는데.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 같기도 하고, 사람이 고함을 지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대.”

  “사막에 짐승은 무슨 짐승. 고함을 치며 울부짖는 사람이라다면?”

  “중도 귀국 신청했다는 그 사람인가 보군. 

  “맞아. 그 사람일 거야. 이역만리에서 어쩔 수는  없고, 밤하늘에 대고 울분을 토하는 거지. 쯧쯧"   

  "정신 바짝 차려야지 잘못하면 모래 밥 먹으며 번 돈으로 그놈들 좋은 일 시키는거야.”    

  "돈 잃고 가정 파탄 나고.”

 한 마디씩 던지지만, 그게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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