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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가지 않은 길
Jul 24. 2023
한국은 천지가 꽁꽁 얼어붙었을 12월 말. 해진 뒤의 사막은 제법 선선했다. 무길과 필성은 1975년 마지막 주말에 사막의 모래언덕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돈을 은행에만 넣어두면 멍청한 짓이겠지?”
필성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렇지. 은행 이자가 인플레를 당할 수 있나? 버는 것 못지않게 잘 굴리는 것도 중요해.”
재테크는 무길이 가장 신경 쓰는 문제였다.
“앞으로 부동산값이 어떻게 될까?”
“중동에서 들어가는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으니 올라갈 수밖에 없어. 대출을 받아서라도 집을 사두는 게 좋을 거야.”
“은행 놈들이 우리 같은 노가다에게 대출을 해주나?”
“그야 그렇군.”
“여기서 4년은 썩어야 비벼볼 수가 있어. 자네는 직장이 든든하니 대출받기가 그리 어렵지 않겠지? 언제쯤 집을 살 생각인가?”
“아니, 나는 우리 회사 주식에 투자했어. 우리 사주라고.”
“주식 투자? 그거 위험한 거 아니야? 내가 아는 사람은 주식 투자에 실패해 집을 날렸다고 하던데.”
“그건 다른 얘기야. 그 사람은 ‘시세 차익을 얻으려고’ 주식을 샀겠지만, 나는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주식을 샀거든.”
“자네가 사업을 한다고?”
“간접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는 거지. 누구나 어느 기업의 주식을 취득하면 주주, 즉 그 기업의 주인이 될 수 있어. 내가 우리 회사 주식 1%를 보유하고 있으니까 국제개발 1%는 내 회사란 말일세.”
주식이 무엇이며, 주주가 되면 어떤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 사주에 관한 설명을 듣고 난 필성이 말했다.
“무슨 말인지 대충은 알 것 같으이. 그럼 지금처럼 암반을 만나 공사가 어려워지면, 자네에게는 그게 단지 회사 일로만 끝나는 게 아니로군.”
“그렇지. 회사가 흥하면 내 재산도 불어나고, 회사 일이 잘 안 되면 내 재산도 줄어드는 거야. 그러니까 주식은 같은 주식이지만, 자네가 말한 사람은 ‘투기’를 한 거고, 나는 ‘투자’를 한 거지.”
"자네는 돈 보는 눈도 나와는 차원이 다르구먼. 그 사람이 하도 주식은 위험한 거라기에 그렇게만 알고 있었지.”
“그건 그렇고 요즘 이상한 일이 있다는군.”
무길이 화제를 돌렸다.
“무슨?”
“밤이면 누가 사막에서 고함을 지르며 울부짖는대.”
“어떤 미친놈인가 보지. 더위에 시달리다 맛이 간 거 아니야? 이젠 지낼만하게 됐으니 정신이 들만도 한데.”
필성이 껄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