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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가지 않은 길 Nov 11. 2024

무면허 인명사고

연재소설

    간선 도로 공사가 끝나면 골목을 거쳐 각 가정에 수도관을 연결하는 하우스 컨넥션에 들어간다.

  하우스 컨넥션 첫날. 오전 작업을 마친 정 공구장이 밝은 낮으로 사무실에 들어섰다.

     

  마침 최소장이 사무실에 나와 있었다.

  “그래, 아무 일 없이 잘 치렀나?”

  마치 신혼 첫날밤을 지낸 신부를 맞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워낙 폐쇄적인 나라다 보니 옥내 작업에 적잖이 신경이 써지던 터였다.

  “아주 호의적이더군요. 과일과 음료도 준비해 놓고, 가정부가 나와 필요한 건 없느냐고 묻기도 하고요.”

  정 공구장이 소파에 몸을 실으며 말했다.

  “아, 그랬어. 한시름 덜었구먼. 자기네 위한 일인데 홀대할 리가 있나. 노파심에서 괜한 걱정을 했던 거지.”

  모처럼 최 소장이 웃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하우스 컨넥션은 작년 9월에 들어갔어야 할 작업이었다. 해를 넘기고야 착수했으니, 그의 마음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그나저나 계량기가 준비되지 않았으니, 이거야 원. 그래, 언제나 입고되겠나?”

  그가 박 차장 쪽으로 얼굴을 돌려 물었다.

  “오전에 다녀왔는데 오후에 또 쫓아가 볼 참입니다. 요새는 밥 먹고 세관 찾아가는 게 주 업무네요.”


  시방서에 수도 계량기는 영국 xxx사 제품을 쓰게 돼 있는데, 납품사의 선적도 늦었지만, 하역이 3개월이나 지연돼 큰 차질이 생겼다. 게다가 세관에서 한 달이나 뜸을 들이고 있어, 있는 대로 박 차장의 애를 태웠다.

      


  

  무길이 저녁 식사 후 샤워하고 나오는데, 부국이 헐레벌떡 뛰어들며 소리쳤다.

  “강형, 큰일 났어, 큰일!!!”

  “아니, 무슨 일인데 그래, 대체?”

  물기를 닦던 무길이 의아한 눈으로 부국을 바라봤다.

  “박, 박 차장이 교통사고를 냈대. 교통사고를!”

  “뭐, 뭐라고?”

  “그것도 사망 사고래.”

  “사망 사고?!”

  무길이 들고 있던 타월을 손에서 떨어뜨렸다.

  “행인을 치었대. 식사하던 직원들이 모두 사무실로 몰려갔어.”

  둘이 부랴부랴 사무실로 달려가니 직원들이 넋이 나간 듯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 후 임 대리가 사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박 차장님이 세관 업무 마감 시간에 쫓겨 속력을 내 달리는데, 반대편 차량이 갑자기 불법유턴을 시도하더랍니다. 그 차를 피하려고 반사적으로 핸들을 틀었는데 그만 행인을 덮쳤다지 뭡니까. 허겁지겁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피해자는 이미 숨이 멎었다네요.”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요?”

  여 과장이 무겁게 입을 뗐다.

  “지금 염 부장님이 자세한 걸 알아보러 관계 부처에 들어가셨어요. 오셔봐야 알겠지만 워낙에 엄격한 나라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드네요.”

  임 대리가 마른침을 삼켰다.      


  ······저녁 8시경. 염 부장이 창백한 얼굴로 돌아와 사우디 당국자들의 얘기를 전했다. 형량에 대해서는 예단할 수 없지만, 다음 세 가지는 확실하게 말해주더라고 했다.   

   

  첫째, 유가족들의 의견이 절대적이다. 그러므로 유가족들과 합의가 잘 이루어져야 하는데, 외국인이니 상당히 많은 블러드 머니(blood money, 가해자가 피해자 유족에게 주는 위자료)를 요구할 것이다.    

 

  둘째, 어떤 경우이든 태형은 불가피하다.

  블러드 머니 얘기가 나오는 거로 보아, 일단 극형을 면할 수 있어 천만다행이지만, 태형이 불가피하다는 말에 직원들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셋째, 미망인의 요구가 있을 시, 출국을 못 하고 이 나라에 남아 유가족의 생계 문제를 책임져야 한다.      

  이 말에 직원들은 너무 황당해 서로 얼굴만 쳐다봤다. B 건설사 얘기를 들은 바는 있지만, 막상 당사자가 되니, 그만할 말을 잃었다.


  곧 염 부장의 부언이 뒤따랐다.

  “당국자의 말에 의하면, 아랍 국가 특유의 관습이라고 합니다. 아랍 국에서는 사회 구조상 여성들이 경제 활동을 할 수 없으므로, 가장이 사망할 경우, 가해자가 유가족 부양을 책임지게 하는 것이라고 말이죠.”     




  박 차장은 하루아침에 지옥으로 떨어졌다. 걸핏하면 끌려나가 태형을 받는데, 채찍을 맞고 나면 그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지 종일 신음과 헛소리를 하고, 밤에는 눈을 감았나 싶으면 이내 경기를 하고 깨어나 하얗게 밤을 지새웠다.


  면회 온 동료들에게‘제발 독약을 넣어 달라.’고 간청해, 듣는 이들의 가슴이 미어지게 했다.     

  회사가 ‘형이 확정되기도 전에 어떻게 태형을 가할 수 있느냐?’고 관계 기관에 항의하니, 당국자가 ‘구치소에서 불법적으로 행해지는 악습으로, 단속하고 있지만, 쉽게 근절되지 않아 골치를 앓고 있다.’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형 집행에 들어가면, 그보다 더한 태형을 감수해야 하니 망극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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