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글쓰기의 절반은 퇴고에 할애하라
PART 2 고치고 또 고쳐라
글은 퇴고를 통해 완성된다. 인용은 머릿속에서 꺼내 사용하는 게 아니라 퇴고하면서 알맞는 것을 가져다 쓰는 것이다. 십수 년 전 입사 시험을 치를 때 주어진 주제의 글을 좋게 쓸 수 있었던 것은 습작해둔 글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습작을 많이 해두면 명문구, 명문장을 많이 알게 되고, 이는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된다.
일단 초고가 작성됐다면 얼마 간은 묵혀 두어야 한다. 바로 그 자리에서 퇴고를 한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초고를 쓰는 마음으로 또 다시 글을 보기 때문에 그 글에 대해 더하거나 뺄 것이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 글을 묵혀 두고 잊어버리는 게 낫다. 이는 사실 잊어버렸다기보다 머릿속에서는 작성해 둔 초고를 갖고 어떻게 하면 괜찮은 문장, 마음에 드는 글을 만들 것인가라는 무의식적인 작용이 일어난다. 단지 우리가 그 내면의 작용을 인지하지 못할 뿐 엄청난 속도의 두뇌 회전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글은 초고를 완성하고 나면 그 나머지는 몇 번에 걸친 퇴고 과정에서 완성된다. 일단 글의 씨앗은 뿌려 놓았으니 이젠 잘 가꾸고 다듬어 좋은 품질로 마음에 드는 글로 키워가면 되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바로 어른이 될 수 없듯이 글도 초고 단계에선 완벽한 글이 될 수 없다. 갓난아이가 기고 엎드리고 걷다가 말을 하고 성장하듯이 글도 이게 아닌데 하며 버리기도 하고 조금 부족한 부분은 보충도 하며 발전해 가는 것이다.
글을 왜 날림으로 쓰는가? 글이 펄펄 날린다는 생각, 초고를 써놓고 퇴고를 잘 안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떤 이들은 글을 써놓고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자기 글을 한두 번 더 읽어보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특히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다 보면 오탈자는 부지기수고 숫자도 안 맞는 경우가 발견된다. 이런 경우엔 자기 글에 대한 애착이 없을뿐더러 글쓴이의 기본자세가 안 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본인이 작성한 글에 관심을 기울이고 완성될 때까지 정성을 다해 수정하고 보완해야 한다. 대충 분량만 채우면 된다는 생각에 기본이 안 된 글은 독자들로부터 사랑받지 못할 것이다. 기본을 무시하는 글쓴이는 글에 대한 기본자질을 의심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능력한 사람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농작물에 정성을 쏟아 키우듯이 글쓰기도 이와 같이 해야 하는 게 맞다. 초고를 쓴 후 수많은 퇴고를 거듭하며 땀방울을 쏟아 넣어야 한다. 농부는 농사를 지을 때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을 되새기고 부지런히 논밭을 오가며 정성껏 돌본다. 이와 마찬가지로 퇴고 작업에서도 부지런히 글을 들여다보면서 수정할 곳은 수정하고 보충할 것은 보충하면서 글을 완성해 나가야 한다. 일필휘지하듯 한 번 휘갈겨 놓고 완성된 글인 양 손을 뗀다면 글을 읽는 독자에게 민폐를 끼치게 될 것이다.
자기 글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있어야 좋은 글이 나온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수백 번에 걸쳐 퇴고를 거듭한 끝에 완성했다. 유명 작가도 그럴진대 글쓰기 초심자인 우리가 자신이 쓴 글을 거듭해 퇴고하지 않고 완성됐다며 펜을 놓는다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본인도 관심 있게 읽어보지 않는 글을 남들이 어떻게 관심을 갖고 읽어보겠는가? 내 밭에 심어놓은 농작물을 부지런히 돌보지 않으면서 좋은 수확을 바라는 것은 과욕이다. 정성을 들이지 않은 글을 남들이 좋게 평가해 주기를 바라는 건 헛된 기대를 품는 일이다.
초고를 집중해 단기간에 작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글쓰기의 핵심은 퇴고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한 번 고치고 또 얼마간의 시차를 두고 또 고치고 고치면 글은 매끈하게 다듬어질 것이다. 자신이 느끼기에 어느 정도 완성됐다 싶을 정도로 글을 고치다 보면 그 과정 속에서 글쓰기 실력은 늘어갈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의 글을 읽어봄으로써 독서능력도 향상될 것은 뻔한 이치다.
초고에서 부족한 부분은 다른 책을 읽어 보완할 수 있기에 어쨌든 초고 완성이 돼야 퇴고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 상태에서 퇴고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글을 고친다는 것은 초고는 완성했다는 것이고 보면 초고를 썼다는 것은 글쓰기의 반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나머지 절반은 퇴고 과정에 있다고 하겠다. 글은 퇴고 과정 속에서 글쓴이의 관심과 정성을 먹고 성장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