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남의 시선으로 내 글 읽기

PART 2 고치고 또 고쳐라

by 집현전 지킴이


퇴고를 할 때는 ‘남의 시선으로 읽기’가 중요하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충분히 알고 있는 소재에 대해 쓰고 있으므로 행간에 생략한 내용도 자동으로 재생해가며 읽는다. 자신의 글을 읽으면 잘못을 찾아내 수정하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어문법을 잘못 알고 있는 경우 특정한 오타만 반복해 쓰는 경우도 있다.

초고를 쓰고 난 다음에 바로 퇴고를 하지 않는 게 좋다. 바로 퇴고를 하면 고치거나 새롭게 더할 내용이 없을뿐더러 글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일단은 며칠 묵혀 두어야 한다. 내가 쓴 초고가 낯설게 보이고, 그러면 마치 남의 글을 읽고 수정하듯 객관적인 입장에서 퇴고를 할 수 있다. 내 글을 남의 글 보듯 해야 한다는 것은 제3의 시선으로 글을 읽어야 한다는 말과 상통한다. 내 글을 읽고 또 보아도 뭐가 잘못돼 있는지 알아채고 수정하기란 쉽지 않다.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글을 다듬어 수정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기가 쓴 글을 제대로 고치려면 일단은 자기 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의식을 갖는 게 쉽지 않고, 또 내가 쓴 글은 흠잡을 데가 없다고 애초에 방어막을 칠 수가 있다. 그렇다고 글을 쓸 때마다 다른 사람에게 퇴고를 부탁할 수는 없다. 남는 것은 자기 글을 제3의 입장에서 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그것은 초고를 작성하고 난 다음에 며칠간 잊어버리고 있다가 그 글을 꺼내 수정하는 것이다. 얼마간 쉬는 동안 뇌에서는 발전적 변화가 일어나고 초고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부족한 부분은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다. 우리 뇌는 고정돼 있지 않고 밤낮으로 활동한다. 심지어 우리가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뇌 속에서는 지식의 융합이 활발히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초고 작성 때 미처 생각지 못했던 내용이 떠오를 수 있고, 보이지 않던 실수들이 찾아지기도 하는 것이다.


글쓰기4.jpg 사진=픽사베이


퇴고는 크게 두 가지로 이뤄진다. 교정과 윤문에 해당하는 문장 다듬기와 글 전체 감독하기다. 전자는 전문가에게 맡길 수 있으나 후자는 글을 다시 써야 하는 문제일 수 있으며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다. 전자와 후자 둘 다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다. 글을 제대로 고치려면 우리 말글에 대한 교양과 함께 다양한 지식이 축적돼 있어야 한다.


글 내용을 곱씹으면서 문장을 이렇게 고쳐 보기도 하고 문장 순서를 바꿔서 문맥 흐름을 좋게 한다든지, 전에 메모해 두었던 감동문구를 자기 글에 인용해 본다든지, 문장이 긴 경우 단문으로 처리한다든지, 중언부언하는 문장은 단순하게 내용을 추려낸다든지 등등, 사실 퇴고 과정에서 신경 써야 할 부분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통 우리가 이야기하는 수정은 오탈자 정도를 손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데,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본인이 쓴 글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새롭게 쓴다는 각오로 퇴고해야 한다. 굳이 한 번 쓴 글을 그렇게까지 손볼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글이란 여러 번 고치면 고칠수록 좋아질 가능성이 높다. ‘밀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글은 고칠수록 고와진다’는 말이 회자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내 글은 남이 절대로 손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 글쓰기에 있어서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태도는 적절치 않다. 출판 편집자가 원고를 교열하는 것은 ‘글 공해’ 없는 좋은 글을 선보이기 위해서다. 열반에 드신 모 스님은 자신의 원고를 편집자가 조금이라도 손댈라치면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물론 그 스님은 스스로 퇴고에 퇴고를 거듭해서 주옥같은 글을 많이 써 왔다. 스님이 쓴 수필집을 읽어보면 심혈을 기울여 쓰고 퇴고한지라 내용이 감명 깊을 뿐만 아니라 문장이 계곡물처럼 청정해 쉽게 읽힌다.


2002년 말에 방송 강의로 유명한 어떤 철학자가 일간지 평기자 생활을 잠시 한 적이 있다. 당시 그분은 기사를 원고지에다 펜으로 썼는데, 편집 직원이 기사를 워드로 입력하고, 교열팀에서 교정작업을 해야 했다. 문제는 기사 교열을 어디까지 해야 하느냐를 두고 철학자와 교열기자 간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언쟁의 결과 내부적으로 유명 철학자의 글은 어지간하면 손을 안 대는 것으로 결론 난 것으로 기억이 된다. 교열팀에서는 독자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 어문법과 교열규칙에 따라 적극적으로 교열했을 뿐인데, 그분은 교열기자의 수정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기엔 체면이 서지 않고 조금 거북했을 법하다.



글을 쓰고 책으로 펴내는 것은 대중들 앞에 상품으로서 내놓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우리말 어법에 맞게 교열한 뒤 출판을 한다. 만약 그런 과정 없이 책을 펴내 첫 페이지부터 오탈자가 눈에 띈다면 그 책의 신뢰도와 가치는 순식간에 떨어질 것이다. 나아가 책 내용마저 독자들로부터 의심을 받을 수 있다. 오탈자가 널브러져 있는 책을 누가 정성들여 읽어보려고 하겠는가.

조금은 다른 방향에서 퇴고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이야기했지만, 결론해서 말하자면 자기 글을 여러 번 곱씹으면서 손을 봐야 한다는 점이다. 초고를 쓰고 난 다음에 바로 손보는 것은 허탕 치는 일이다. 글쓴이가 제3의 시선을 갖기까지 시간을 가져야 한다. 초고를 어느 정도 묵혀 두어야 한다. 읽고 또 읽으며 고치고, ‘이젠 정말 더 이상 고칠 게 없다’고 생각이 들 때에도 다시 또 한 번 보는 심정으로 퇴고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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