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초고를 쓴 뒤 며칠은 묵혀야 한다

PART 2 고치고 또 고쳐라

by 집현전 지킴이


초고를 단번에 작성했으면 며칠은 묵혀 두는 게 좋다. 글에서 일단 손을 떼고 떠나라. 멀리 여행을 떠나라는 말이 아니라 써놓은 글을 한동안 잊으라는 뜻이다. 몸은 비록 글에서 분리돼 있지만 우리의 뇌는 그렇지 않다. 써놓은 글을 계속해 생각하며 뇌 스스로 어떻게 하면 글을 좋게 완성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뇌 속에 저장된 온갖 배경지식을 활용해 글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만들어 나간다. 그러기에 글을 떠나 있는 며칠 동안 조급해하면 안 된다. 오히려 초고를 묵혀 두는 시간을 갖지 않으면 글이 제대로 숙성되지 않는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작가 스티븐 킹도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비슷한 내용을 언급했다. 킹은 초고를 오래 묵히면 묵힐수록 좋다고 강조한다. 초고에는 글쓴이의 애정이 깃들기 마련이어서 얼마간 거리두기 할 것을 권한다. 한동안 글을 잊고 떠나 있기를 강조한 것이다.

처음부터 글쓰기에 너무 욕심을 내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초고는 가볍게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다는 마음으로 유연하게 힘을 빼고 글을 써야 잘 써진다. 초고를 완벽하게 쓰는 게 아니라 무형의 생각 덩어리들을 밖으로 불러낸다는 생각으로 글쓰기를 해야 초고를 그나마 작성할 수 있다. 초고가 없는데, 질 높은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 마치 씨앗을 뿌리지 않았는데, 튼실한 농작물을 바라는 것과 같다.



스티븐 킹에 따르면, 원고를 묵히고 아예 그런 글이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릴 정도가 되면 자기가 쓴 글이 아니라 남이 쓴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가차 없이 삭제하거나 뒤집어엎기가 쉽다고 한다. 왜냐하면 글쓴이가 사랑하는 표현과 문장을 자기 스스로 버리기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자신의 퇴고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초고를 완성한 뒤 일주일을 쉰다. 그리고 고쳐쓰기에 들어간다. 고쳐 쓰는 작업에도 한두 달의 시간이 걸린다. 1차 고쳐쓰기가 끝난 뒤 다시 일주일을 쉬고 2차 고쳐쓰기에 들어간다.


글쓰기5.jpg 사진=픽사베이


하루키는 작품을 묵히는 과정을 건축의 ‘양생’ 과정과 비슷하다고 설명한다. 양생 후에는 세세한 부분의 철저한 고쳐쓰기에 들어간다. 이후 제3자의 의견을 듣고 지적받은 부분을 중심으로 고쳐 쓴다.


글쓰기의 대가(大家)라고 불리는 유명 작가들이 권하는 글쓰기 비법을 보면 초고를 완성한 뒤 며칠 묵혀 두라고 강조한다. 초고를 완성한 뒤 바로 퇴고 작업에 들어가면 수정할 게 별로 보이지 않는다. 자기 글에 대한 욕심 때문에 과감하게 버리고 보완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글은 고치면 고칠수록 만지면 만질수록 좋아진다. 단 한 번으로 글쓰기에 성공하면 얼마나 좋을까? 어떻게 보면 말과 글, 우리의 생각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말을 그대로 받아적더라도 그것이 완성된 글이 될 수 없는 것은 정해진 글 규범에 맞게 써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무시해 버리면 사회적 약속인 어문 규칙을 따르지 않는 것이기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오탈자 하나, 비문법적 문장 하나, 문장부호 하나 잘못 쓴 게 무슨 대수냐고 할지 모르지만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에 정해진 규칙에 맞게 써야 혼란과 갈등을 방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법률안의 낱말 하나를 가지고도 의미 해석이 달라져 원래 의도했던 법률적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검찰의 수사권 범위를 정하는 법률안에서 낱말 ‘~등’을 사용함으로써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갈등을 초래한 바 있다. 이는 ‘~등’이라는 의미를 법률안 제안자들이 제대로 알지 못했거나 소홀히 여긴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초고를 작성한 다음에 이뤄지는 여러 번 고쳐쓰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런 예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초고를 쓴 뒤에 며칠 잊고 지내라는 말은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절대 아니다. 다른 분야의 책을 읽든지 글을 쓰면 될 일이다. 초고를 쓴 다음에 며칠을 묵혀 두라는 이야기는 뭐랄까, 김치를 담가 어느 정도 익혀야 제맛이 나듯이 글도 며칠 묵혀 두고 퇴고해야 글솜씨가 제대로 배어난다고 할 수 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글쓰기에 너무 조급증을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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